오락가락 행보에 소문만 ‘눈덩이’ 처럼
▲ 정동영 통일부 장관(왼쪽),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 ||
이런 논란의 화살은 피감기관인 통일부에게로 날아왔다. 6자회담이 해결가닥을 보이면서 잔칫집 분위기였던 통일부는 ‘김윤규 사태’ 여파로 졸지에 초상집 분위기로 전락했다. 국감장에서 통일부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는 와중에 정가 일각에선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김윤규 전 부회장에 우호적 스탠스를 취했다’는 시각마저 불거지기도 했다. 정 장관측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지만 그동안 ‘김윤규 사태’에 대한 통일부의 대응을 놓고 나돌던 정동영-김윤규 밀착설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 장관은 지난 9월 남북장관급회담 참석 중 ‘금강산 관광 사업 과정에서 김윤규 전 부회장의 공로가 컸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당시 정 장관은 ‘현대 내부 문제로 사업 차질을 빚은 데 매우 실망했다’는 내용의 말을 덧붙여 현 회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 무렵부터 ‘정 장관이 김윤규 전 부회장을 비호한다’는 소문이 정·재계에 나돌기 시작했다. 여기엔 ‘정 장관의 방북과정에서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 성사 배경에 김윤규 전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따라다녔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의 한 측근은 “(정 장관과) 김 전 부회장은 정 장관이 통일부에 입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이일 뿐”이라며 두 사람 간 ‘밀착설’을 극구 부인한다. 그러나 몇몇 정치권 인사들은 북측과 마찬가지로 정 장관이 김 전 부회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쪽에 무게를 둔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대북송금 특검 과정에서 DJ정부 시절 어렵사리 구축해놓은 국정원 내 대북 핵심라인이 붕괴됐다”며 “그나마 김윤규 전 부회장의 ‘사적 라인’이 믿을 만한 대북채널이었을 것이며 정 장관이 이를 통해 대북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꾀했을 것”이라 평한다.
이번 국정감사 말미에 몇몇 의원들 사이에선 ‘정 장관이 현 회장을 만나 김 전 부회장 구명을 시도했다’는 ‘미확인’ 소문까지 나돌았다. 정 장관의 김 전 부회장을 위한 노력에 더욱 심기가 불편해진 현 회장이 곧바로 김 전 부회장을 ‘확실하게’ 내쳤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다. 물론 정 장관측이나 현대측은 두 사람 간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밝히고 있다. 정동영-현정은 회동설이 이번 국감에서 통일부에 다소 비판적 성향을 보인 의원들 사이에서 불거져 나온 점도 소문의 사실 여부에 물음표가 붙게끔 만든다.
정 장관은 지난 10월10일 김윤규 전 부회장에 대해 “관련 법령에 따라 의법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정 장관은 “현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북사업을 하면서 희생한 것은 존중하지만 현대아산과 북측이 독점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정부가 자동적으로 이 독점권에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혀 현대 외 기업의 대북사업 참여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틀 후인 10월12일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현대의 사업 독점권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0년에 합의한 7대 사업 독점권과 관련해 “합의변경이 논의된 바 없으므로 유효하다”면서 “정부도 이런 당사자 간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는 김 전 부회장과 거리를 두는 반면 현대측에는 다소 온건해진 통일부의 기류를 대변한 것으로 비쳤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 사이에선 이미 사법처리 가능성이 타진되는 김 전 부회장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려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한편 정 장관의 김 전 부회장에 대한 구명 움직임 소문에 대해 정 장관측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정 장관의 한 핵심측근은 “(정 장관과) 김 전 부회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번 만난 것밖에 없다”며 김 전 부회장과 별다른 사적 인연이 없음을 강조했다. 이 인사는 “(정 장관은) 대승적 관점에서 대북사업이 잘 되게 하려는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정 장관이) 남의 회사 경영권 다툼에 개입할 정도로 한가한 분인가”라 반문했다. 정가 일각에서 나도는 정동영-현정은 회동설에 대해서도 “전혀 그런 일 없다”라며 김 전 부회장과 관련한 모든 소문이 ‘낭설’임을 역설했다.
정치권 일각엔 ‘김윤규 전 부회장이 남측의 생존 인물 중 김정일 위원장을 가장 많이 만나본 사람이며 정 장관의 대북행보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것’이란 시각이 자리잡고 있다. 당초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던 정 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이 극적으로 성사된 점이나 이로 인해 정 장관이 대선주자로서의 주가를 높였던 배경에 김 전 부회장의 ‘숨은 공로’가 있을 것이란 관전평이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의 측근인사는 “누군가 (정 장관을) 흠집 내려고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지 모르겠지만 정치권에 그런 헛소문이 나돈다고 해서 정 장관과 김 전 부회장을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밝혔다.
정 장관과 김 전 부회장 관계에 대한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 통일부는 현대-북측 간 중재 역할, 김윤규 전 부회장 공백 메우기, 현대 대북사업 독점권 논란 수습 등 여러 난제를 동시에 껴안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통일부가 잘 수습하면 대권주자인 정 장관이 다시 한번 주가를 높이는 계기가 되겠지만 만약 또다른 구설수가 불거지게 되면 정 장관의 대권행보에 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