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돌 같지 않은 센돌…중국만의 잔치로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결승에서 이세돌 9단(왼쪽)은 중국의 커제에게 2 대 0으로 패했다.
이세돌-커제의 대결은 모처럼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는 승부가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얼마 전부터 세계 타이틀 결승에 올라가는 사람은 주로 이세돌이나 박정환 아니면 김지석이고 가끔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 등이 보이는 정도인데, 중국은 스웨 미위팅 판팅위 탕웨이싱 퉈자시 멍타이링 저우루이양 렌샤오 등등 이름도 헷갈리는, 엇비슷한 실력의 청년들이 국제대회 원형무대에서 흡사 메리-고-라운드처럼 속출하고 있다. 거기에 최근 가세한 청년이 커제다. 우리야 선수 풀이 크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은 숫자는 제법 되지만 대신 우리 이세돌처럼 툭 튀어나오는 선수가 없다.
그래서 세계 타이틀이 걸린 한-중 격돌도 박진감·긴장감이 예전만 못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려고 하는 참인데, 바로 이 장면에서 커제가 등장해 흥미를 돋우는 관전 포인트를 제공한 것. 이세돌은 1983년생으로 30대 초반이다. 커제는 1997년생, 올해 만 열여덟이다. 이세돌은 앞물결의 마지막 세계 타이틀 홀더일 것이다. 커제는 뒷물결의 선봉이다. 과연 이번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세대교체의 어떤 징후 같은 것이 보다 분명해질 것인지, 그게 우선 관심거리였다.
또 하나는 두 사람이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보면 성향이나 기질이 아주 비슷하다는 것. 천재성이 번득이는 자유분방, 신출귀몰, 직설적 화법,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남 눈치 안 보고 등등, “이세돌은 한국의 커제 같고, 커제는 중국의 이세돌 같다”는 것. 상극인 두 사람이 싸우는 것도 흥미진진하지만, 똑같은 둘이 한번 붙는 것을 구경하는 그만 못지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커제의 완봉이자 완승이었다. 이틀 동안 이세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2국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가는 뒷모습이 잠깐 비쳤을 뿐이다. 1국을 이세돌이 놓쳤을 때만 해도 천하의 이세돌이 이처럼 무력하게 퇴장할 줄은 몰랐다. 누구나 결국은 이번 3번기는 누가 이기든 2 대 1로 끝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더구나 커제는 백을 들었을 때 더 잘 둔다고들 하는데, 1국은 커제가 백이었고, 2국은 이세돌이 백이었는데도 말이다.
삼성화재글로벌캠퍼스 검토실에서 1, 2국을 관전했던 국가대표 기사들은 “이세돌9단이 뭔가 중압감을 느꼈던 것인지 행마에 생기가 없었다. 평소 이 9단의 바둑이라고는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몇 번 기회는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그게 정말 기회였는지,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 커제가 잘 둔 것이 3 정도라면 이 9단이 우물쭈물한 것이 7이다. 그게 패인”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커제의 가공할 상승세다. 올해 세계대회 22승2패(승률 91.6%), 한국기사 상대로는 10승1패(90.9%, 1패는 신민준에게 당했다)를 거두었다.
준결승의 다른 쪽 판, 스웨 9단 대 탕웨이싱 9단의 3번기에서는 스웨가 2 대 1, 역전승을 거두었다. 1국은 탕웨이싱이 흑을 들고 스웨의 대마를 잡으며 221수 만에 불계승. 2국은 스웨의 대반격. 50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대마를 쫓기 시작하더니 그걸로 일직선, 109수 만에 판을 끝내며 1 대 1을 만들고, 5일의 3국에서도 흑을 들고 탕웨이싱에게 233수 만에 불계승을 거둔 것.
결승은 중국 잔치가 되었다. 중국 랭킹 1위 커제와 중국 랭킹 2위 스웨. 5년간 이어져오던 한-중 결승전이 무산되었다. 느낌이 좀 ‘싸~’ 하다. 박정환은 실력 최강이지만, 뭔가 상대를 압도해 버리는, 이세돌 같은 카리스마가 좀 부족한 듯하고, 김지석은 바둑판 안팎에서 보여주는 승부의 자세가 좀 다른 것도 같다. 치열한 긴장에 일관성이 없는 느낌이랄까. 쉬엄쉬엄 가는 것이 멀리 오래 가는 방법일 수 있겠으나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애가 탄다. 신진서와 신민준은 아직 소식이 없다.
며칠 전 중국 바둑 팀 총감독 위빈 9단은 한국 바둑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중-한이 5 대 5인데, 어느 나라에서든 또 한 사람의 바둑 천재가 등장한다면 판도는 금방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보니 이게 바로 내심 커제를 염두에 둔 호언장담성 미래예측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외교적으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창하오 9단을 초청해 바둑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중국에서는 어린 바둑 천재들이 앞으로도 줄을 이을지 모르겠다.
올해로 20년을 맞이한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의 총상금 규모는 8억 원이며, 우승상금은 3억 원.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 지난 대회 결승에서는 김지석 9단이 중국의 탕웨이싱 9단을 2 대 0으로 꺾고 자신의 세계대회 첫 우승을 기록했다. 결승 3번기는 12월 8일~10일 중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