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득음의 길…수지표 판소리 귀기울여봐~
영화 <도리화가>에서 여류소리꾼으로 변신한 수지는 판소리 습득을 위해 촬영 도중에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연예계에서는 ‘문소리의 입금이론’에 부합하는 배우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영화가 다루는 소재와 시대적인 배경이 다양해면서 배우들이 소화해야 할 분야도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낯선 언어를 익히거나 몸무게를 늘리고 줄여야 하고, 심할 때는 전문가들의 세계를 마치 실제처럼 능숙하게 소화해야 한다. 배우 설경구는 이런 노력을 두고 “별짓 다하는 배우의 삶”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설경구는 요즘 곡기를 끊었다. 몸의 근육량을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수준’만큼 줄이기 위해서다. 매일 새벽에 한강 둔치를 뛰고 오전에는 트레이너와 유산소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줄넘기에 집중한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감량’에 쏟고 있다. 일반인이라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극한의 다이어트로 이미 10㎏, 그 이상의 몸무게를 줄였다. 최근 설경구를 만난 연예 관계자들은 “목소리를 듣지 않고 외모만 보면 설경구라는 사실을 미처 알아보지 못할 정도”라며 그의 변신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사실 감량과 증량에 관한 한 설경구는 이미 달인 수준이다. 2004년 영화 <역도산>에 출연할 당시 몸무게를 30㎏ 가까이 늘렸고 이듬해 <공공의 적2>에 나서며 한 달 만에 10㎏을 줄여 화제를 뿌렸다. 그런 설경구가 다시 독하게 마음먹은 계기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출연이었다. 설경구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연쇄살인마라는 극단적인 캐릭터를 맡았다. 제작진과 출연 계약을 맺을 당시 원신연 감독은 설경구에게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누구인지 몰라볼 만큼 충격적인 모습으로 변신해 달라”고 주문했던 터였다.
<공공의 적2>에 출연하며 한 달 만에 10㎏ 감량한 설경구. 오른쪽은 강동원의 <검은 사제들> 출연 모습.
배우 강동원은 지금은 거의 사라져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라틴어를 섭렵했다. 고대 언어로 통하는 라틴어는 일부 가톨릭 사제들만 사용할 뿐 대중과 익숙하지 않다. 강동원이 낯선 라틴어의 세계로 뛰어든 이유는 엑소시즘(악령을 좇는 의식)을 다룬 영화 <검은 사제들>의 주인공을 연기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톨릭 신부 역을 맡은 강동원은 대사의 상당 부분을 라틴어로 소화했다. 물론 그 언어를 익히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전문가로부터 라틴어의 억양과 발음 등 기본기를 배웠고 모든 대사를 녹음한 파일을 반복해 들었다. 그렇게 2~3개월이 소요됐다. 강동원은 “가령 ‘알’(R) 발음 하나를 라틴어식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며칠 동안 반복하는 식이었다”며 “워낙 억양이 강한 언어이기 때문에 영화 분위기에 맞춰 순화하는 나름의 편집 작업도 필요했다”고 돌이켰다.
사실 설경구와 강동원은 영화 한 편당 억대의 출연료를 받는 톱스타로 인정받는다. 어느 정도의 흥행을 보장하는 배우들인 만큼 출연료 수준도 1등급에 속한다. 영화 제작비 규모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보통 편당 5억에서 6억 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를 받는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을 완수하려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배우 출연료가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영화 계약을 맺을 때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서로 협의해 명시하고 있다”며 “영화에 필요한 부분을 준비하지 않는 배우가 많아서라기보다는 제작진과 배우 모두 각자의 책임을 다하자는 의미로 세부 사항을 구체적으로 약속한다”고 밝혔다.
흥행 경쟁이 치열해지고, 배우들도 ‘다작’과 ‘변신’을 요구받는 상황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부추긴다. 고액 출연료에 대한 책임감을 떠나,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대중에게 잊히지 않아야 하는 숙명을 가진 배우들로서는 이런 노력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지적이다.
그런 면에서 가수 겸 연기자 수지의 새로운 도전 역시 시선을 끈다. 11월 25일에 개봉하는 영화 <도리화가>의 주인공인 수지는 이 작품의 출연을 결정하고 촬영을 시작해 마칠 때까지 꼬박 1년 동안 판소리에 몰두했다. 걸그룹 미쓰에이 멤버로서 댄스음악에 주력해왔던 그에게 판소리는 완전히 낯선 분야였다. 하지만 영화가 조선시대 후기 여류 판소리 명창의 이야기를 그린 만큼 수지에게 판소리 습득은 지나칠 수 없는 관문이기도 했다.
수지와 함께 영화를 작업한 한 관계자는 “마치 득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고 귀띔했다. 수지는 국립창극단 단원인 박애리 명창을 사사했다. 개인 과외로 시작해 촬영 도중에는 휴대전화 음성 녹음을 통한 ‘무선 교습’도 받았다. 수지는 “기존에 노래하는 발성과 전혀 달라서 내가 내 목소리를 듣기가 거북할 때도 있었다. 전문가 수준의 실력 있는 명창처럼 할 수는 없지만 내 꿈을 위해 끝까지 파고들었다”고 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