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우리집서 연기 피우는 건 아니겠지…’
박원순 시장은 명예훼손죄로 새누리당 지지모임 ‘미래희망 여의도포럼’ 공동대표인 이 씨 등을 고소하고 악성 루머 최초 유포자를 찾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사진제공=서울시
이를 유포한 이는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친목모임 ‘미래희망 여의도포럼’ 공동대표인 이 아무개 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표는 <일요신문>에 “문제의 내용을 작성했고 이를 본 포럼 회원들이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며 대대적인 유포로 번졌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박 시장 부친의 친일 행적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 대표는 지난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초로 올린 것은 아니고 다른 SNS에도 이미 많이 있던 글을 올린 것뿐이다. 누가 최초 작성자인지 수소문을 해봤지만 찾지는 못했다”며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친일파가 미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벌어지는 가운데 야당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친일 행적으로 공세를 벌이기에 여당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역공을 위해 박 시장 부친의 친일 관련 내용을 올렸다”고 말했다.
미래희망 여의도포럼에 대해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과거 명예대표를 맡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야당 측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김무성 대표가 대권주자이다 보니까 명예대표로 추대하려고 했지만 본인이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루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부인 강난희 씨와 오래전부터 별거 중이고 박 시장이 다른 여자와 관계가 있어 대선후보로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루머에는 아들 박주신 씨의 병역비리 의혹과 강난희 씨의 성형중독 의혹 등 가족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 루머의 최초 유포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유포자 중 한 명을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로 지목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이번 찌라시를 퍼뜨린 의원이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의도적인 행동으로 보이며 검찰, 경찰 수사 이후 꼭 밝혀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연합이 악성 루머를 유포했다고 지목한 L 의원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L 의원실에 따르면 의원 본인이 찌라시를 유포한 적은 없거니와 직원 개인이 지인 몇 명에게 보낸 것이 크게 부풀려져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L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찌라시 내용은 박 시장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의 루머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 4월부터 돌았던 내용으로, 국회에 있는 사람이라면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찌라시일 뿐이다”며 “전해 받은 내용이 진짜인지 궁금해서 아무 생각 없이 소수의 지인들에게 보낸 것이지 루머를 전파하고자 하는 악의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다. 사실이 아닌 정보를 보낸 것에는 어느 정도 잘못이 있지만 이렇게 비난을 받게 돼 생각지 못한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10일 서울시와 새정치연합 서울시당 등에 따르면 6일 박 시장은 명예훼손죄로 미래희망 여의도포럼 공동대표 이 씨와 또 다른 이 씨를 고소했고 악성 루머의 최초 유포자를 찾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새정치연합 서울시당에서는 예전부터 계속되는 ‘박원순 때리기’에 반격하기 위해 지난 9월 신경민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박원순 지키기 특별대응팀’을 만들었다. 박 시장 가족사에 대한 악성 루머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특별대응팀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박 시장의 부친은 일제강점기 위안부 모집과 관련된 그 어떤 역할도 수행한 적이 없고, 보국대는 일제가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징발한 강제노동부대였다”며 “박 시장 부부의 별거설, 다른 여성과의 동거설은 반인륜적 언어폭력이자 용서할 수 없는 명예훼손으로 박 시장을 비롯한 그의 가족 모두에게 씻기 힘든 고통과 상처를 주고 있다. 박 시장의 가족들에 대한 공격은 모두 명백한 허위사실이며 악의적인 정치공작”이라고 밝혔다.
또한 “루머 확산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명예총재를 맡았던 미래희망 여의도포럼 및 새누리당 소속 의원실이 동원됐다”며 “박 시장도 유포자들에 대해 고소 등 민형사상 조치를 취했다. 김 대표의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새정치연합 서울시당 관계자는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악성 루머가 돈다는 제보가 서울시로 들어와 알게 됐다. 카카오톡은 폐쇄형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금방 알기가 힘들어 사전에 조치를 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국정감사 전부터 박 시장을 공격하는 행태가 심해지고 조직화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근거가 전혀 없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박 시장이 명예훼손의 피해를 크게 입었다”고 말했다.
여야는 ‘박원순 찌라시’ 근원지와 유포자를 두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제19회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박 시장의 법률대리인인 민병덕 변호사는 “악성 루머 두 가지를 별건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고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가 아직 준비 중인 상황이라 최초 유포자를 찾는 데 수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총선이 다가오면서 박 시장에 대한 정치적 공세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허위사실 유포가 계속되고 있어 예전처럼 취하를 하기보다는 엄중하게 처벌해 명확하게 마무리를 지어야겠다는 박 시장의 언급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관계자는 “미래희망 여의도포럼은 김무성 대표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찌라시와 새누리당은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다”며 “새누리당이 주범이라는 주장은 박 시장이 야권주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당에서 공격하는 것이라는 발상이 아니냐”며 반박했다. 다른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번 찌라시에 대한 수사 결과가 나와야 대응할 수가 있을 텐데 현재로서는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다.
앞서 새정치연합이 밝혔듯 박 시장은 예전부터 악성 루머에 시달려왔다. 여의도 일각에서는 루머의 근원을 여러 가지로 추측하고 있다. 가장 쉽게 새누리당과 그 지지자들이 야권 대권주자인 박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서 루머를 퍼뜨렸을 가능성이 꼽힌다. 실제로 지난 8월 김용태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내년 총선은 박원순 시장과의 싸움”이라고 밝힌 데 이어 국회 국정감사에선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 시장 공격에 화력을 집중하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이 괴담의 배후로 새누리당을 지목한 것은 지난 2012년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난 박 시장의 아들 박주신 씨의 병역 문제를 보수단체와 새누리당이 최근 다시 제기한 데 이어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트위터·페이스북 등의 SNS 상에서 무차별적으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은 “강 변호사가 나와 아들이 병역비리를 자행했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을 피했다는 허위사실을 지속적으로 유포하고 있다”며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은 검찰, 법원 등 국가기관이 일관되게 허위라고 판단한 문제다. 가족의 명예·인격권 침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다”고 말했다.
강훈식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번 악성 루머 공세는 박 시장을 견제하는 세력, 즉 여당의 김무성 대표는 물론 야당의 문재인 대표 지지자들의 소행으로 추측했다. 강 교수는 “이번 악성 루머를 통한 정치적 공세 및 공격은 사실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준이 낮은 것으로 보여 정치권에서 직접적으로 유포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이번 사태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악성 루머를 누가 퍼뜨렸는지보다는 악성 루머에 대한 박 시장의 대응 강도가 세졌다는 점이다”며 “이전부터 박 시장에 대한 루머는 계속 돌았다. 고소하고 수사를 의뢰한 행동은 이전 지방선거 때 관리만 하던 차원에서 훨씬 강경해진 것으로 총선보다는 대선을 유념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승패의 핵심은 서울이다. 후보 개인을 때리기 어렵고 서울시장인 박 시장을 공격해야 보수층의 결집이 가능해진다”며 “새누리당이 대선주자에서도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나 안철수 의원은 이미 식었고, 남아있는 센 대권 주자인 박 시장에게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의도 일각에서는 악성 루머의 근원지는 새누리당이 아닌 친노 진영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친노 진영은 그동안 박 시장을 문 대표의 라이벌로 간주해왔고 대선이 다가오면서 그 견제가 더욱 강해졌다는 것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친노 진영에서는 오래전부터 문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 와중에 박 시장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둘이 필연적으로 대권 대립 구도에 놓이고 있다”며 “누가 악성 루머를 퍼뜨렸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친노 쪽 역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악성 루머의 최초 유포자를 찾는 데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해당 루머가 허위사실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식의 의혹은 더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과연 박 시장이 루머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