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안띄는 ‘작은 조화’ 더 눈에 띄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부친상 빈소를 찾은 한 비박계 의원의 말이다. 유 의원이 ‘전국구’로 부상한 데다, 고인인 유수호 전 의원도 판사 출신으로 대구에서 재선을 지냈다. 지난 11월 7일 오후 별세한 유 전 의원의 대구 경북대병원 빈소는 찾아온 정계·법조계 유명 인사들이 조문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 앞서 의원의 말처럼 ‘최근 가장 큰 판’인 만큼 수많은 뒷얘기를 양산했다. 3일간 빈소에서 벌어진 일을 갈무리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9일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수도권 한 야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히려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반문했다. 이 의원은 “상갓집은 전통적으로 화해의 장이었다. 아무리 원수여도 조문 와서 인사하고 대화하다 보면 풀리는 게 있지 않겠느냐”며 “유승민 의원이 아무리 미워도 부친상에 조화를 안 보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치졸해 보이기까지 하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고인도 재선 의원인데 안 보냈으리라고는 상상 못했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 빈소의 가장 큰 화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조화를 안 보낸 일이었다. 빈소는 조화와 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화가 워낙 많아 놓지 못하고 리본만 따로 떼서 걸어둔 것만 사방 벽을 감을 정도였다. 이 와중에 대통령의 조화가 안 온 사실에 의미 부여를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밝힌 공식적인 입장은 ‘관례상 국회의원의 경조사에 조화를 보내지만 상주 측에서 사양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에 유 의원은 화환을 사양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김현숙 대통령비서실 고용복지수석 등은 조화를 보내 청와대의 해명을 무색케 했다.
친박계 한 인사는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캠프에서 유 의원과 깊은 인연이 있는 이병기 비서실장이 눈에 안 띄게 작은 조화를 보낸 것에서 깊은 애환이 느껴진다”고 했다. 빈소를 찾은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뻔히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유 의원과 미국 위스콘신대 동문에다 친하다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안 수석은 부인을 대신 보내고, 신문기사 마감이 끝난 새벽 1시에 기습 조문을 하고 가는 친박계 의원 모두 청와대 눈치를 본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대부분의 여당 의원들이 ‘눈치 조문’을 한 것에 비해 유 의원과 친분이 두텁거나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오래도록 머물며 빈소를 지켰다. 이렇게 유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은 조문 시간이 길거나 이틀 연속 찾았고, 친박계 의원들은 조문시간이 극히 짧거나 조문 자체를 오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최준필 기자
유 의원도 문상객을 맞는 모습에서 온도차가 느껴졌다. 신박으로 꼽히는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와는 인사만 하고 접객실로 나오지 않은 반면 강석훈, 이종훈 의원 등과는 술잔을 함께 기울이며 지난 추억을 회상했다. 특히 유 의원이 강 의원에게 술을 좀 줄이라는 주문을 하자 강 의원은 “예전 새마을호 타고 지방에 갈 때 기차에 있는 술을 다 마실 정도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유 의원이다”라고 타박했다.
비록 유 의원이 절친한 의원들을 따뜻하게 맞았지만, 그럼에도 비박계 의원들의 마음속에는 ‘20대 총선 물갈이’에 대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한 수도권 의원은 또 다른 의원이 내년 총선을 걱정해주자 “괜찮습니다. 제가 지역구 관리를 열심히 했습니다”라면서도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대구 쪽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특히 지난 8일 윤상현 의원이 조문 와서 ‘대구 물갈이론’을 주장하고 간 것에 대해 반향이 커 보였다. 대구지역 한 의원은 “대구지역이 진짜 물갈이 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총선까지 가봐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다만 아직 총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데 물갈이가 된다, 안 된다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하며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또 다른 새누리당 관계자도 “윤 의원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최고위원도 아니고 당직도 없는데 박근혜 대통령과 친하다는 이유로 완장질 하는 게 꼴불견이다. 더군다나 지금 상갓집 왔는데 그게 할 소리냐”며 강하게 비난했다. 현재 대구 지역이 얼마나 물갈이란 단어에 민감한 상황인지, 현역 의원들이 물갈이 공포를 피부로 얼마나 실감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유승민 부친 유수호 전 의원 비화 개표조작 사건 소신판결…박정희 눈 밖에 나 판사 재임용서 탈락 유승민 의원 선친 유수호 전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대구지역에서 재선을 했다. 유 전 의원은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됐고 지난 1971년 서슬 퍼런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에 4·27 개표조작 사건 피고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또한 같은 해 반정부시위를 주도했던 당시 부산대 총학생회장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을 석방시켜 정권의 눈 밖에 났고 결국 1973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유 전 의원을 생전에 알았던 법조계 인사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조화를 보냈던 것도 유 전 의원과 생전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라며 “유 전 의원이 부장판사 시절 양 대법원장이 서기보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지난 1978년 총선을 앞두고 목효상 전 의원, 문양 변호사 등과 함께 공화당 대구 동남구에 공천 신청을 하며 정계에 입문하려 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지난 1985년 민정당 대구 중·서구 지구당 위원장에 선출되고, 1988년 13대 총선에서 공천을 당선됐다. 14대 총선에서도 당선돼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유 전 의원과 의정활동을 같이 했던 정대철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유 전 의원은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았지만 내가 국회의원을 먼저 시작했다고 선배라고 불러 서로 존칭을 썼다. 둘 다 술을 좋아해 자주 어울렸다. 몇 년 전부터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술과 담배가 독이 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유승민 의원이 유 전 의원의 아들인 것은 2년 전쯤 우연히 알게 됐다. 아들이 참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며 “나도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불화를 겪었을 때 민주당 사람들은 다 외면했는데 유일하게 유 전 의원만 전화를 걸어와 ‘나도 박정희 대통령께 판결로 심기를 거스른 적이 있다’며 위로해준 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도 “유 전 의원은 술을 정말 잘 마셨다. 항상 양폭(양주+맥주)을 텐텐주(스트레이트 잔에 양주를 가득 채우고, 큰 글라스에도 거품 없이 맥주를 가득 채우는 방식)로 꽉 채워서 셀 수 없이 마셨다”고 술과 얽힌 기억을 떠올렸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