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빼고 ‘롯데’ 넣는 값이 고작…배알도 쓸개도 없능교!
부산시가 사직야구장 명칭사용권을 연평균 1억 3300만 원에 롯데 측에 넘기기로 해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부산은 서울과 더불어 국내 프로야구의 양대 빅 마켓이다. 프로야구 출범 당시부터 지금까지 롯데 자이언츠는 이곳을 연고지로 삼고 있다. 팬들도 열성적이다. 자이언츠의 성적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긴 했지만 관중수도 거의 매번 1·2위를 다투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가 안방으로 쓰는 사직야구장은 2만~3만 석 이상의 중·대형 야구장으로 서울 잠실구장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건설됐다. 최초 야구와 럭비·축구 등을 겸용할 수 있는 복합구장으로 지어졌으나 현재는 야구전용구장으로만 쓰이고 있다. 건설된 지 오래되다보니 노후화로 인한 문제점이 하나둘씩 불거지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사직야구장을 두고 부산시와 롯데구단은 현재 명칭사용권(네이밍 라이트)과 관련한 내용을 협의 중이다. 협의는 ‘롯데구단 측이 낡은 조명탑 교체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구장 명칭에 롯데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조명탑 전구를 LED로 교체하는 비용은 20억 원 정도가 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시 말해 롯데구단 측이 20억 원을 조명탑 교체 비용으로 투자하면 사직야구장 명칭에 롯데라는 이름이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또한 부산시는 구장 이름에 ‘부산’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협의가 부산시의 계획대로 진행되면 구장 명칭은 ‘부산롯데구장’이나 ‘부산롯데스타디움’ 등으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이 협의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금액이 아니고 바로 기간이다. 부산시는 롯데 측에 조명탑 교체 비용을 부담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사직야구장 명칭사용권을 15년이나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연평균 1억 3300만 원 정도에 사용권을 롯데 측에 넘기기로 방침을 세운 것이다.
협의 내용을 두고 지역에서는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우선 부산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산시는 10년 전에 비해 프로야구의 인기가 급등했음에도 명칭사용권과 관련한 입장은 오히려 역으로 가고 있다.
지난 2006년 당시 넥센타이어는 부산 사직야구장에 대한 명칭사용권을 얻기 위해 부산시에 5년간 연간 3억 원씩 총 15억 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당시 부산시는 ‘사직야구장 네이밍 라이트 컨설팅’이라는 연구용역 결과를 들어 구장 명칭 사용에 따른 적정 후원액으로 연간 5억 원을 요구했다. 협상은 결국 상호 이견의 폭을 좁히지 못하고 결렬됐다.
특히 2006년 당시는 롯데 자이언츠의 성적이 바닥을 칠 때라 관중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네이밍 라이트에 대한 국내 인식도 낮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연간 5억 원의 구장명칭사용권을 주장한 부산시가 지금에 와서 조명탑 교체 비용 20억 원이 아까워 사직야구장 명칭사용권을 15년간 롯데에 넘기려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가 안 된다는 점이다.
사직야구장 일대 항공촬영 모습. 사진제공=부산시
롯데 측에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롯데는 최근 북항 재개발지역 일대에 새로운 야구장을 짓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부산의 야구팬들을 들뜨게 만든 이 사안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 롯데가 부산시로부터 15년간 20억 원이라는 사직야구장 명칭사용권을 제안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적극적인 모습으로 협의에 나서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향후 15년 이내에는 새로운 야구장을 지을 의사가 없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번 협의와 관련해 부산시 관계자는 “여러 기업들에 명칭사용권을 타진했지만 야구장이라는 한계 때문에 난색을 보였다. 그래서 결국 롯데와 협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명칭사용권과 관련해 공모를 진행할 의사는 없었냐’는 질문에는 “공모 결과를 낙관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의 이러한 설명은 논리가 부족해 보인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네이밍 라이트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과 호응도가 많이 올라간 상태다. 최근 이뤄진 네이밍 라이트의 좋은 예는 바로 인근에서 찾을 수가 있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와 대구삼성라이온스파크가 바로 그 예다. 이 두 구장은 구장을 사용하는 야구단의 모기업이 수백억 원을 구장건설에 투자하면서 명칭사용권 등을 받기로 했다. 아울러 미국 내 MLB 소속 구단들은 네이밍 라이트를 활용해 매년 평균 30억 원가량의 수입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긍정적인 대내외적인 환경 속에서도 부산시는 웬일인지 공모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과거 자신들이 스스로 정한 금액에 비해 터무니없는 헐값으로 구장 명칭사용권을 롯데에다 덜컥 넘기려 하고 있다. 부산시와 롯데 간에 모종의 유착관계가 있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주된 이유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부산 시민단체 연합으로 구성된 ‘좋은 롯데 만들기 부산운동본부’는 지난 11일 ‘밸도 없고 쓸개도 빠진 부산시, 부산의 자존심을 20억 원에 롯데에 팔다’란 부제가 달린 성명을 통해 부산시와 롯데를 싸잡아 비난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부산이 재정적으로 늘 열악하고 청년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와중에도 롯데는 부산시와 부산시민의 고혈을 빨아먹다 못해 부산의 피를 말리고 있다”며 “부산시가 롯데를 위한 행정이 아닌 부산시민을 위한 정책을 펴기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비난의 목소리도 나온다. 부산경실련 이훈전 사무처장은 “한마디로 정말 쪼잔하다. 지금 롯데는 부산시와 20억 원으로 구장 명칭사용권을 논할 때가 아니다”라며 “롯데가 진정 부산 야구와 팬들을 위한다면 조명탑 교체 비용이 아닌 새 야구장 건립에 대한 통 큰 지원과 더불어 이에 대한 운영관리권을 협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