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인의 호위무사 ‘박근혜를 지켜라’
TK 지역에 ‘진박’ 인사들이 대거 출마할 것으로 알려지며 ‘TK 물갈이론’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 7일 대구시 서문시장을 방문,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유승민은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다.”
최근 <일요신문>과 사석에서 만난 핵심 친박 관계자는 TK 물갈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역 정가에선 유승민 의원을 몰아내기 위해 ‘박근혜 키즈’들이 내려온다고 하는데 상황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유 의원은 이미 TK에서 평가가 끝난 인물이다. 아무런 힘을 쓰지 못 한다. 대구 가 봐라. 누가 유 의원을 찍겠다고 하는지. 우리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TK 물갈이는 친박계 총선 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친박계 내부에선 유승민 의원이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청와대를 들이받기 이전부터 TK 지역 의원들 교체설이 나돌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유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며 직격탄을 날린 게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앞서의 친박 관계자는 “유 의원이 설마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유 의원의 처신이 TK 지역 의원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구심을 증폭시킨 것은 맞다. 그 후 본격적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출사표를 던질 인사들에 대한 스크린 작업도 병행됐다”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과 핵심 친박 의원들이 이처럼 TK 지역 ‘리셋’에 나선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다. ‘유승민 죽이기’도 소수이긴 하지만 그 중 하나다. 대부분은 박 대통령 친위세력 구축에 무게를 두고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수록 친박계 불안감은 증폭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퇴임하면 친박이라는 정치 계파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그동안 TK 지역에서 ‘포스트 박근혜’를 찾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대신 ‘박근혜 키즈’를 만드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이들은 TK를 기반으로 박 대통령을 지키고 또 친박계 정치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TK에서 출마할 것으로 점쳐지는 ‘박근혜 키즈’는 대략 15명 안팎이다. 이 중 박 대통령 정치적 고향인 대구만 7~8명이다. “청와대에서 내려 보냈다”라는 한 마디면 당선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청와대로부터 ‘사인’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김상훈 의원 지역구인 대구 서구에는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한국케이블TV협회 회장직을 내려놓고 출전 채비를 하고 있다. 김희국 의원 지역구 대구 중구·남구에는 곽성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출마설이 흘러나온다. 중구·남구는 친박으로 분류되는 이인선 전 경북 정무부지사 차출설이 거론된다.
11월 9일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직을 그만둔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종진 의원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 출마가 유력하다. 곽 전 수석의 경우 청와대에서 나올 때 박 대통령이 안타까워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요직 중용 또는 총선 출마가 일찌감치 점쳐지기도 했다. 권은희 의원 지역구 대구 북구갑은 청와대 출신 인사들 간 경쟁구도다.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과 김종필 전 법무비서관이 출마 의향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친박계 내부에서 ‘교통정리’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지역구다. 윤상직 산업통산부 장관은 대구 수성구을 또는 북구갑 출마설이 나돌고 있다. 11월 8일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고향인 경주와 함께 대구 동구갑을 저울질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친박계 좌장격인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컴백’ 역시 초미의 관심사다. 최 부총리는 경북 경산 청도에 출마할 것이 확실시된다. 정치권 주변에선 12월 중 최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친박계의 차기 대권주자군 중 한 명이기도 한 최 부총리 역할에 따라 향후 계파관계, 대권레이스가 요동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봐야 할 지역구로 꼽힌다. 백승주 전 국방부 차관은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며 경북 구미갑 출마 의사를 밝혔다. 왕보경 전 청와대 연설기록행정관도 같은 지역에 출사표를 던졌다.
친박계가 TK 지역에 최우선적으로 힘을 쏟는 이유는 이곳을 우선 탈환해야만 다른 지역까지도 연쇄적으로 노려볼만 하다는 판단에서다. 2008년 무소속 친박연대가 바람을 일으켰듯이 이번에도 ‘박근혜 마케팅’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TK 지역 공략에 성공해야한다는 것이다.
TK에 이어 친박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곳은 바로 PK다. TK와 함께 여권의 텃밭이긴 하지만 그 정서는 다소 다르다. TK처럼 맹목적인 몰표가 나오는 지역이 아닐뿐더러 비박계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김무성 대표의 정치적 지지기반도 만만치 않다는 평이다. 또 정권을 두 차례나 TK 출신 대통령에게 내줬다는 상대적 박탈감도 적지 않은 곳이다. ‘박근혜’ 이름 하나로만 당선되기는 어려운 지역이라는 얘기다.
PK 공략 선봉은 안대희 전 대법관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부산의 어느 지역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게 안 전 대법관 입장이다. 2004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 대선자금 수사를 이끌며 ‘국민검사’로 불렸던 안 전 대법관은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으며 박 대통령과 연을 맺었다. 2012년 대선 캠프 당시 박 대통령 앞에서 ‘직언’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사로 꼽혔다.
안 전 대법관은 해운대 출마가 유력하지만 야권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차출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안 전 대법관이 당선돼 국회로 들어올 경우 잠룡군 중 한 명으로 급부상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친박이 그토록 찾던 ‘김무성 대항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신뢰가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부산 서구 출마 채비를 갖추고 있다. 선거구 획정 결과에 따라 김무성 대표 지역구인 영도구와 합쳐질 수도 있어 향후 친박과 비박 간 일전이 벌어질 것이란 말이 나오는 지역구이기도 하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부산 연제구에 다시 출마할 것이 확실시된다. 김 장관은 주말에도 일정을 잡지 않고 지역구 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장관 취임 1주년 기념 자리에서 건배사로 ‘3선’을 외치는 등 총선 출마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윤상직 장관은 대구에서의 출마가 여의치 않을 경우 부산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란 말도 있다. 최상화 전 춘추관장은 경남 사천·남해·하동에서 표밭을 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춘추관장 출신들이 모두 내년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친박계의 영남 출마를 놓고 ‘친박 벨트’라고 칭한다. 그런데 여기에 한 곳이 더 추가되면 ‘경부선 라인’이 된다. 바로 서울과 수도권이다. 수도권 지역의 한 친박 의원은 “TK는 말할 것도 없고 PK에서도 박근혜 마케팅은 통한다. 그런데 서울과 수도권은 다르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 새누리당 강세지역도 있고…”라면서 “만약 수도권에서까지 의석을 얻으면 친박계는 영남권을 합쳐 적어도 40석 이상은 확보할 수 있다. 이 경우 박 대통령은 지역 맹주가 아니라 퇴임 후에도 최대 계파 수장 자리를 유지하게 된다. 친박으로선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털어놨다.
서울에선 새누리당 강세지역 서초갑이 화제를 모은다. ‘신박’ 조윤선 전 정무수석과 ‘탈박’ 이혜훈 전 최고위원이 맞붙었기 때문이다. 조 전 수석은 대선 당시 박 대통령 대변인을 맡으며 친박으로 분류됐고 그 이후 여성부 장관과 정무수석을 거쳤다. 박 대통령이 아끼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반면 이혜훈 전 최고위원은 한때 핵심 친박이었지만 지금은 거리가 멀어진 상태로 평가된다.
유일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8개월 만에 사퇴하고 당으로 복귀해 서울 송파을 출마를 준비 중이다. 차기 경제부총리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지만 본인은 지역구 출마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서울 도봉을에서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선동 전 정무비서관은 다시 한 번 이곳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밖에 수도권에선 황우여 부총리가 인천 연수구,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인천 중·동·옹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정부 고위 관료들의 이러한 총선 출마에 대해 정치권에선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다. 현직 대통령과 주류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천룰 싸움을 벌이고 정치적 야합을 일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이를 ‘친박 패권’으로 규정한 뒤 “염치도 없이 불공정 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여당의 영남, 그 중에서 친박 TK 패권은 박근혜 대통령 집권으로 더욱 콘크리트화 됐다. 그 최대 수혜자는 역시 장차관과 수석비서관 등 정부 고관 출신들”이라며 “고관으로 임명돼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이 다시 국회의원으로 임명돼 그 부귀영화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수도권의 야당 현역의원들이 있는 지역에 출마해 정권에 힘을 보태야한다”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