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양쪽 진영 장수들 ‘적과의 동침’ 모색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야권 혁신안을 놓고 치열한 기싸움을 전개 중이다. 사진은 2012년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대통령 후보. 사진제공=문재인
문 대표가 광주 조선대 강연에서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공동 지도체제’를 제안하자, 안 의원은 즉답을 피한 채 장고에 돌입했다. 삼각연대의 다른 축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실상 이를 수용했다. 문·박 연대를 꾀한 뒤 안 의원을 전방위로 포위한 셈이다. 이 연대 방정식의 최종 모습이 문·박이든 문·안·박이든, 향후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불가피하게 됐다. 여기에 천정배 무소속 의원은 창당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며 속도전에 나섰다. 야권발 정계개편의 핵심 축이 한날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략통을 총동원, 디테일한 전략 짜기에 돌입했다. 내년 제20대 총선 6개월을 앞두고 각 진영 ‘호위무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지난 11월 초 여의도 정가에는 괴담 하나가 떠돌았다. 새정치연합이 20대 총선에서 ‘73석(지역구 61석+비례대표 12석)만 확보한다’는 잿빛 전망을 담은 내부 보고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19대 총선(127석)보다 54석, ‘뉴타운 선거’였던 18대 총선(81석)보다 8석 줄어든 수치다. 충격적인 내용이다. 주로 전략통 보좌관들 사이에만 돌던 이 자료는 11월 둘째 주,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일주일여 뒤 보고서는 언론에 공개됐다. 보고서 이름은 ‘20대 총선 획득 가능 의석 시뮬레이션(안)’. 충격적인 73석은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지난 9월 정당 지지도와 18·19대 정당득표율 및 의석수, 당선 가능 최소 정당 지지도 등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 작성 시점은 지난 10월 21일이다.
수도권은 참패다. 서울 10석(19대 총선 30석)을 비롯해 인천·경기 15석(35석), 대전·세종·충청 1석(10석)으로 전망했다. 야권 텃밭인 호남에서도 16석에 그쳤다. 광주·전라 전체 의석수는 30석이다. 문 대표도 보고서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전달받고 충격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비주류 한 관계자는 “100석 붕괴가 현실화될 수 있다”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정의당 관계자도 “개헌 저지선이 무너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며 “제1야당, 소수당을 떠나 범야권 공동 대응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고 우려를 표했다. 논란이 일파만파 확장되자, 친노(친노무현)계와 비노(비노무현)계는 정면충돌했다.
친노계 내부에선 ‘김한길계인 B 의원과 C 의원 측 전략통이 괴문서 유출의 주범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범주류 A 의원이 물꼬를 튼 괴문서가 B 의원과 C 의원 측을 거치면서 완성된 문건의 형태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 괴문서가 문재인 체제를 흔들려는 각 계파 ‘충성파’들이 벌인 일이라는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문재인 체제는 최대 고비를 맞았다. 애초 문 대표 호위무사들은 총 다섯 가지의 안을 놓고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큰 골격은 △‘문·안·박’ 공동 지도체제 △조기 통합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통합 전당대회다. 이 중 앞의 두 가지는 또 다시 문 대표의 대표직 유지와 사퇴로 나뉜다.
문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는 문·안·박 공동 지도체제는 주류와 중도그룹 일부가 찬성하는 안이다. 문 대표가 사퇴하는 문·안·박 공동 지도체제와 문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는 조기 통합 선대위는 비주류 일부와 중도그룹 일부에서 원한다. 문 대표가 사퇴하는 조기 통합 선대위는 비주류 다수가 원한다. 통합 전대는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과 ‘정치혁신을 위한 2020 모임’ 등 비주류 일부가 선호하는 안이다.
일단 문 대표 측은 통합 전대를 배제한 네 가지 안을 놓고 격론에 돌입했다. 최대 목표 지점은 ‘안철수 끌어안기’다. 한국갤럽의 11월 둘째 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 결과, 호남에서 문 대표의 지지율은 5%에 그쳤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9%보다 낮은 수치다. 이 지점이 ‘문재인 단일지도체제’를 문·안·박 공동 지도체제로 전환하는 결정적 분수령이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당 대표직은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문 대표는 최고위원 등 지도부 사퇴와 관련해 “사퇴를 왜 하느냐”라며 정치적 타협을 통한 정면돌파를 시사했다. 주류 일각에선 이들 이외에 대구·경북(TK) 김부겸 전 의원과 안희정 충남지사,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 등을 포함하는 ‘지역+세대 교체형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염두에 뒀지만, 문·안·박 공동 지도체제가 우선이라고 결론 냈다. 다만 천 의원과의 통합을 위해서 호남 몫은 남기기로 했다. 통합 시 ‘천정배’, 불발 시 ‘김상곤’으로 퍼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최근 ‘문·안 연대’를 위한 7인회 핵심으로 떠오른 당 총무본부장 최재성 의원을 비롯해 강기정 김태년 우상호 의원 등이 일정 정도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문·안 연대만이 ‘희망스크럼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최재성 강기정 의원은 정세균계다. 다만 최 의원은 총무본부장을 맡은 뒤 문 대표와 한층 가까워졌다. 현재 친노계와 범주류 및 비노계 사이에서 핵심적인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김태년 의원은 친노 직계로, 문 대표 최측근이다. 우 의원은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생)의 핵심이다. 2012년 총선 때 비노 학살을 단행한 ‘친노 직계+범주류+86그룹’이 20대 총선 공천을 앞두고 사실상 연대한 셈이다. 여기에 지금은 뜸하지만 문 대표의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3철(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전해철 의원·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물론, 복심인 윤 아무개 보좌관도 있다.
비주류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모래알 조직’인 비주류는 문·안 연대를 위한 7인회에 속한 문병호 최원식 정성호 의원과 김한길 의원의 최측근인 민병두 최재천 의원, 박지원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호남그룹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다수가 김한길계다. 다만 정성호 의원은 최근 중도그룹인 ‘통합행동’으로 갈아탔고, 문 의원은 안철수계의 떠오르는 신성이다. 문·안 연대 및 통합 전대 시 ‘안철수 단일후보’ 등의 아이디어로 비주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안 의원 등 비주류 호위무사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비주류 한 의원은 “일단 11월에 우리의 목소리를 최대한 낸 뒤 내년 1월 중순 전까지는 승부를 봐야 한다”며 “문 대표가 비주류 의원을 끌어안고 가지 않을 경우 누가 남아있겠느냐”며 천정배 신당행을 예견하기도 했다. 다른 의원도 “지금의 호남 민심은 심각하다. 새정치연합이 아니면 찍어주겠다는 말까지 한다”며 “이게 현실이다. 여기에 호남 물갈이론 등 비주류 공천 학살이 단행된다면, 떨어진 의원 다수는 천정배 신당 쪽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비주류 의원들이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김원기 상임고문 등 당 원로들과 비공개 회동을 열고 총선 대응 전략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20대 총선 공천권이 핵심이다. 향후 갈등의 뇌관도 이 지점이다. 문 대표는 사퇴 요구를 하는 비주류를 향해 “공천권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지분 나눠먹기는 없다”고 비노계를 ‘구태세력’으로 규정했다. 특히 안 의원의 혁신안을 언급하며 “아주 광범위한 인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했다. 주승용 오영식 최고위원은 “당사자 합의 없이 이런 것을 언급해도 되느냐”라고 반발했다. 박지원 의원도 “국민들은 꼼수로 생각한다”고 평가 절하했다.
비주류 한 관계자는 “문·안·박 공동 지도부 구성 발상 자제가 당헌·당규 위반”이라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중지를 모아 맞대응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제1야당의 내홍은 서막만 올랐을 뿐이다. 아직 중간도 채 오지 않았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