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닫은 정부…‘호남 홀대론’ 부글부글
그동안 대회유치 과정에서 불거진 정부 문서 위조 논란에 대해 정부가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가 공식적인 석상에서 예산 편성 불가 방침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의 예산 지원 불가 방침으로 광주시의 2019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최가 불발 위기에 놓였다. 사진은 남부대 국제수영장으로 이번 대회 주경기장으로 사용하는 계획이 무산돼 임시 수조 설치 비용 등 정부의 예산 지원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기재부의 발언 배경을 두고도 ‘설(說)’이 무성하다. 우선 중앙정부의 ‘광주시 길들이기론’이 나온다. 정부가 수영대회 유치 과정에서 벌어진 문서 위조를 문제 삼는 것은 지난 6월 발효된 ‘국제경기대회지원법 개정안’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행위로 광주시를 길들이기 위해 생트집을 잡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산을 통해 지자체를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와 관련해 광주시가 정부에게 기대고 있는 금액은 대략 총액의 30~40% 선이다. 초기 대회 프로젝트 문서를 보면 총사업비(유치신청시)는 1149억 원으로 책정됐다. 재원은 국비 278억, 시비 371억, 사업수익 500억 원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광주U대회 시설인 남부대국제경기장을 주경기장으로 사용하는 계획이 무산되면서 임시 수조를 설치하는 데만 550억 원 이상이 추가됐다. 정부의 예산지원이 더욱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는 오히려 한 푼도 줄 수 없다면서 ‘광주시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문서 위조를 이유로 한 지원거부도 궁색한 논리라는 지적이다. 박혜자 의원은 “재정보증 서류 조작 논란 당시 정부는 광주가 국가기관을 속인 일종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해석했었다”면서 “하지만 이미 끝난 문제인데다 국회에서 법률까지 제정했는데 이제 와서 그런 발언을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시각에는 현 정부가 예산을 빌미로 광주와 전남을 압박한 과거 전례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 9월 일부 개관한 아시아문화전당도 ‘국가 기관화’를 주장하는 지역 여론에도 불구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산을 내세워 법인화로 밀어붙였다. 또 지난 2013년 남해안 적조 피해를 둘러싸고 황토 살포를 금지한 전남도와 황토 방제를 지시한 해양수산부의 공방에서 해수부는 ‘예산지원 불가’ 카드로 전남도를 압박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13년 문서위조 사건이 터지자마자 “예산지원을 철회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당시 광주시장이었던 강운태 전 시장이 공식 사과를 하면서 일단락됐지만 돈으로 지자체장의 무릎을 꿇린 대표적인 일화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현 정권 들어 중앙 정치권과 정부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호남 기피 분위기가 광주세계수영대회 예산 홀대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지역 정가의 한 인사는 최근 대구의 한 총선 출마 희망자가 출사표에서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 대해 한 정치적 발언을 예로 들었다.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은 지난 15일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 총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정부 여당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본인(유승민)의 독단적 결정으로 새천년민주당에 통 크게 양보하면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광주에 아시아문화전당이 설립되고 매년 800억원의 운영비가 지원되는 등 2026년까지 5조 원 이상의 국민세금이 들어가게 됐다”고 주장했다. 뜬금없이 대구에서 광주 예산을 거론한 밑바탕에는 이 같은 부정적 기류가 일정 부분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유 여하를 떠나 광주시는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광주시는 기재부 2차관의 발언이 알려지자마자 곧바로 진의 파악에 나섰다. 광주시의 현재 공식적인 입장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대회 개최를 위한 예산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내는 “국회에서 통과된 법이 있는데 어떻게 정부가 이럴 수 있나. 정부의 예산 지원이 없다면 대회 유치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속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대회의 정상적인 개최는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당장 올해 안에 구성 예정인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창립이 어려워지는 등 개최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예상 경비는 1200억 원에서 1900억 원으로 증가했다. 국제수영연맹(FINA) 기준에 맞는 수영장을 갖추기 위해서는 500억 원을 추가 투입해야 할 처지다. 광주시는 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 등으로 지난해 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6.59%로 높아졌다. 충분한 국비 지원 없이는 정상적인 대회 운영도 쉽지 않다.
당연히 ‘대회 반납설’도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윤장현 광주시장 역시 지난 2일 열린 공감회의에서 “내년 정부예산에 (수영대회) 46억 원이 반영되지 않아 난관에 봉착해 있다. 추가 반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하면서도 “수영대회는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자력으로 진행하기는 어려운 사업”이라며 반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회 개최를 포기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광주시가 대회를 반납하면 국제수영연맹에 지급한 개최권료 76억 원을 포함해 213억 원의 시민혈세를 날리게 된다. 하지만 더 큰 피해는 국제적인 신인도 하락 및 U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대한 명성이 추락하는 것이다.
광주시 한 관계자는 “시의 공식적인 입장이야 지금까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겠지만 정말로 예산이 확보가 안 되면 그때는 난감해질 것”이라면서 “효과적인 대책을 찾고 있지만 정부가 요지부동이라 그 어떤 방법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