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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의 건설·중공업 기업 변신을 주도한 박용만 회장은 이번 면세점 사업 도전 역시 진두지휘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게다가 두산은 지난 7월 있었던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 도전하지 않았다. 신규 사업자 심사에는 응하지 않고 다른 기업들이 운영하는 사업을 뺏어오는 일을 노린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후자보다 전자 쪽에 도전하기 쉽기 때문이다. 두산이 면세점사업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것은 지난 9월 초다.
더욱이 두산이 면세점 거점으로 삼은 동대문 지역은 지난 7월 신규 면세점 사업자 입찰 당시 무려 8곳이나 후보지로 앞세웠으나 어느 한 곳도 성공하지 못한 지역이다. 그만큼 신선하지도 않고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도 힘든 지역이었다. 경쟁기업인 SK네트웍스는 지난 7월에 이어 이번에도 동대문 지역을 면세점 후보지로 선정했다. 다시 말해 동대문 지역을 면세점 후보지로 선점한 기업은 두산이 아니라 SK네트웍스였던 것.
여러 모로 면세점 사업에 뒤늦게 뛰어들겠다는 두산이 다른 기업보다 유리해 보이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두산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두산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면세점 사업에 진출했다. 새로운 면세점사업자로 등장함으로써 두산은 롯데, 호텔신라, 신세계 등 기존 유통·면세점 사업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더욱이 23년간 면세점 사업을 운영해오던 SK네트웍스를 물리쳤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이 미리 확실한 시그널을 받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가 많다”며 “최태원 회장 사면복권으로 보상한 SK 대신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만 회장의 두산에 사업권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7월 신규 사업자 입찰 때는 동대문 지역이 너무 과열돼 있었고 중소기업도 다수 참여했던 탓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며 “이번에는 두산타워라는 연고지가 있고 상인들과 상생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점이 큰 점수를 받은 듯하다”고 말했다.
어쨌든 두산은 20년 만에 유통사업 부문에 복귀했다. 식품·음료사업을 주축으로 하던 두산은 지난 1995년부터 한국네슬레, 코카콜라, 오비맥주 등 식음료 소비재 부문을 정리하고 두산중공업(2000년 한국중공업 인수), 두산건설(2003년 고려산업개발 인수), 두산인프라코어(2005년 대우종합기계 인수) 등을 중심으로 건설·중공업 기업으로 변신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두산은 지난해 자산이 33조 원까지 불어나며 재계 10위권까지 치고 올라갔다. 두산 직원 중에는 “중공업 기업으로 변신해 대외적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대우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예전 식음료회사였을 때보다 오히려 직원들의 실속은 없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사업이 잘 돼 직원들의 급여·복지 수준이 높아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건설 경기 침체와 글로벌 경기 불황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재계에서는 건설·중공업 위주로 변신한 두산의 위기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두산그룹이 악성루머 등에 대해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선포’했음에도 두산을 둘러싼 위기설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위기설이 불거질 때마다 두산그룹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그룹 전체 자금 흐름과 회사채 시장에서 반응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느냐”며 “위기는 없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최근 두산그룹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룹의 중심인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가 구조조정에 나섰다.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알짜사업인 공작기계 부문 매각 작업에도 착수했다. 공작기계 부문은 49% 지분만 매각할 것이라던 당초 계획을 수정해 경영권을 포함해 완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두산그룹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두산은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인식되는 면세점 사업 진출에 성공했다. 면세점 선정 발표 직후 재계 일부에서는 “박용만 회장이 기사회생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건설·중공업 부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 유통업에 도전했는데, 이것이 성공했다는 것.
공교롭게도 두산그룹의 건설·중공업 기업 변신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박용만 회장은 이번 면세점 사업 도전 역시 진두지휘했다. 동대문 미래창조재단 출범에 사재 100억 원 출연, 청년희망펀드에 30억 원의 사재 기부 등이 면세점 사업권 획득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M&A 귀재’로 불리던 박용만 회장이 이제는 ‘변신의 귀재’로 불리고 있을 정도다. 두산그룹 한 임원은 “그룹 전체 매출 20조 원에서 연매출 8000억 원을 계획하고 있는 면세점 사업을 따낸 것을 두고 변신이라는 표현은 무리”라고 잘라 말했다.
면세점업계에서는 두산의 면세점 사업 성공 여부에 의문부호를 달고 있기도 하다. 과거 소비재 부문 강자이기는 했으나 유통업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사업이 생각보다 큰 수익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며 “대부분 롯데면세점 소공점이나 신라면세점을 떠올리며 황금알을 기대하고 있는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과연 제대로 해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타(두산타워) 쇼핑몰을 16년간 운영해왔다”며 면세점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