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박찬호가 마 중나온 친지들과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 다.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올 시즌의 시작이 부진했던 것은 부상에 대한 무지와 과욕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MLB)에 데뷔한 이래 단 한차례의 부상도 없었다는 것이 내세울만한 훈장 중의 하나였던 박찬호는, 스프링캠프 마지막 시범 경기에서 오른쪽 허벅지 부상을 당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불리는 허벅지 뒷근육의 부상은 전문가들도 회복도나 부상 정도를 정확히 집어내기 힘들 정도로 미묘한 부상이다.
그러나 지난 겨울 5년간 최고 7천1백만달러의 장기 계약을 맺고 에이스로 가등록한 박찬호는 의욕이 앞설 수밖에 없었고, 트레이너들은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실패했다. 결국 개막전 등판이라는 무리수는 무려 40일간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후유증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도 박찬호는 1승에 연연해 무리하게 등판을 강행했다가 화를 자초한 기억이 있다. 작년 마지막 경기에서 배리 본즈에게 역사적인 71, 72호 홈런을 허용한 당시에 초반 허리가 삐끗한 것을 무릅쓰고, 리드한 경기를 잡으려다가 큰 것을 허용했던 것이다. 1승을 더하려다가 역사책에 두고두고 사상 최다 홈런을 허용한 투수로 기록됐으니 말이다.
시즌초부터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바람에 박찬호의 실전 감각이 현저히 떨어졌음은 자명한 일이었고, 5월 중순 한창 물이 오른 타자들을 상대하기에는 구위가 스프링 트레이닝 수준이었다. 그러나 후반기 6월부터 다시 시작한 장거리 러닝으로 하체에 힘이 붙으면서 조금씩 부활의 조짐이 보였다. 강속구의 구속 회복은 물론 공 끝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면서 5연승 가도를 달리기도 하는 등 2003년 시즌은 올해와는 완전히 다를 것임을 암시했다.
▲ 올 시즌 불운의 전조가 된 햄스트링 부상 당시 경기 장면. | ||
그러나 사실 올시즌 가장 우려된 점은 정신적인 위축과 외곬으로 빠지는 경향이었다. 다저스 시절 박찬호는 불같은 강속구를 뿌리는 신기한 동양 청년이기도 했지만, 늘 밝은 웃음에 사교적인 성격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은 후 모든 것들이 초반부터 제대로 풀리지 않자, 늘 외로운 모습이었다. 동료들과도 별로 어울리지 않고 언론도 가능한 한 멀리했다.현지 언론 기자들이나 방송인들은 “박찬호가 원래부터 저렇게 폐쇄적인 성격이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그의 얼굴에서 예전의 화사한 미소를 찾아보기가 아주 힘들었다. 물론 올해 같은 상황에서 억지 웃음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타고나길 세심하고 내성적인 박찬호는 너무 모든 것을 안으로만 돌리려는 성향을 지녀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는 느낌이 든다.
‘병은 자꾸 알리라’는 말이 있듯이 박찬호한테는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함께 고민하고, 밝은 쪽으로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누군가가 아쉬웠을 것이다.그래서 계속 결혼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나도는지 모른다. 물론 만 서른을 앞둔 나이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결혼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대사라는 데는 본인도 공감하고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족을 이룬 동료들을 늘 부러워하는 박찬호가 이제는 보금자리를 꾸며야할 시기임은 분명하다.
시즌이 끝난 뒤 홀가분한 모습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박찬호에게 올 겨울은 아주 중요하다. 한눈 팔지 않고 내년 시즌을 위해 최선의 준비를 한다면, 한 시즌 평균 15승 투수의 모습을 되찾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
그리고 좀더 밝은 모습으로 사회와 만나는 박찬호를 기대해본다. 박찬호를 근처에서 지켜봤던 댈러스 인근 5만 교민들이 올 한해 동안 느낀 실망감이 내년에는 밝은 웃음과 뜨거운 성원으로 바뀔 수 있도록 박찬호는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