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딩 챔프’ 구쯔하오 9단과 리턴매치…신 9단 “지난해 결승 3국 결코 잊을 수 없어”
지난해 란커배 결승 3번기는 신진서에게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신진서의 우세를 점쳤고, 결승 1국도 완승을 거뒀으나 2국과 3국을 잇달아 내주면서 초대 타이틀의 영광을 구쯔하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결승 3국은 훗날 신진서가 “바둑을 배운 이래 결코 잊을 수 없는 대국”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당시 신진서는 “란커배 결승에서 패한 후 내 자신에 정말 실망했다. 내 바둑도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3국에선 한번 실수했다고 해서 패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승부를 놓아 버렸다”며 아쉬워했다. 8강전 양딩신, 4강전 딩하오 모두 쉽지 않은 상대들이었지만 구쯔하오에게 설욕하고 싶다는 집념이 그를 결승으로 이끌었다.
딩하오와의 4강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의 연속이었다. 초반 100수 언저리까진 승률 10%를 기록할 정도로 끌려가는 흐름이었으나 중반 중앙에서 회심의 승부수가 통하면서 대역전극을 일궈냈다. 딩하오는 지난해 LG배와 삼성화재배 등 2개 메이저 기전을 제패한 강자였지만 상대전적(신진서 기준 9승 3패, 최근 5연승)이 보여주듯 역부족이었다.
이 바둑을 지켜본 박정상 9단은 “결국 멘탈이 승부를 갈랐다. 세계 최정상 기사에게도 멘탈이 얼마나 중요한지 입증한 한판이었다. 딩하오 9단이 중반까지 국면을 장악했지만 신진서의 승부호흡에 흔들렸고, 결국 그 미묘한 차이가 승부의 흐름을 바꿨다”고 진단했다.
결승에 진출한 신진서는 “바람대로 구쯔하오 9단과 다시 결승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준비를 정말 많이 했다. 구쯔하오 9단은 실력뿐 아니라 정신력도 강해서 이번에도 기대된다”고 말하면서 “딩하오 9단과의 준결승에서 어려운 바둑을 이겼는데 이런 경험은 나 자신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결승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지난해 란커배에서 구쯔하오가 승리하긴 했지만 둘의 상대전적은 신진서가 11승 6패로 앞서 있고, 2023년 10월 대국 이후 4연승 중이다.
결승전은 8월 19일부터 중국 취저우에서 3번기로 열릴 예정이다. 제한 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씩이 주어진다. 덤은 7집반. 란커배 우승상금은 180만 위안(약 3억 3000만 원)이다.
[승부처 돋보기] 제2회 란커배 세계바둑오픈 준결승전
흑 신진서 9단(한국) 백 딩하오 9단(중국) 193수 끝, 흑 불계승
[장면도1] 고전의 시발점
백이 △로 한 칸 뛴 장면. 여기서 흑의 선택은 두 가지다. 신진서의 선택은 흑1로 젖힌 다음 흑3~7까지 하변을 두텁게 틀어막는 것. 하지만 이 진행은 발이 느려 흑의 불만이었다. 8이 놓이고 보니 백이 경쾌한 흐름이 됐다.
[흑의 최선] 이제부터의 바둑
흑은 1로 막아 좌우를 차단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후 흑5까지가 예상되는 진행인데 하변 흑돌과 백돌이 모두 미지수여서 이제부터의 바둑이었을 것이다.
[장면도2] 신진서의 초강수
중국룰은 덤을 7집반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백이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다. 초반부터 계속 밀리던 신진서 9단. 백이 △로 막은 시점에서 AI는 백의 승률을 90%로 점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터져 나온 흑1·5가 초강수.
[실전진행] 딩하오, 갑자기 난조
장면도2의 흑1·5의 끊음은 아마추어 저급자들이 즐겨 쓰는 수법. 고수들은 모양이 나쁘다고 해서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흑의 비상수단에 딩하오가 갑자기 난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백1부터 9까지가 모조리 악수. 흑10까지 중앙에서 흑이 거북등 빵때림 하는 동안 백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결과다. 당연히 역전.
[백의 최선] 백, 두텁다
애초 흑이 마늘모로 붙여왔을 때 백은 1을 선수하고 3으로 비껴 받았으면 별 게 없었다. 위쪽 백모양이 워낙 두터워서 이랬으면 백의 우세는 계속됐을 것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