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의심 떨칠 수 없어”
과거 국정원이 사회 각계 인사 1천8백여 명을 무차별 도청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청 피해자들이 보인 대체적인 반응이다. 대부분의 도청 피해자들은 “국정원 등이 암암리에 도청을 자행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도청이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냐”며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실제로 자신이 도청 대상자였다는 점에선 “불쾌하다” “인권침해다”며 강하게 분노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강삼재 전 한나라당 의원]
▲ 2000년 말, 안기부 비자금 정치권 유입 이른바 ‘안풍사건’ 관련
도청에 대해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화기를 자주 바꿨고, 통화도 가급적 많이 하지 않았다. 집 전화뿐 아니라 휴대폰도 감도가 떨어졌다. 전화로는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전화 통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공개 방송’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도청한 내용을 안풍사건에 대한 수사 자료로 활용하려 했던 것 같다. DJ정권으로 바뀌면서 도청을 했다고 봐야 한다. 의원회관의 전화도 자주 끊겼고 감도도 떨어졌다.
2001년 1월부터 시작된 재판 진행과정에서도 도청은 있었을 것으로 본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항상 도청을 염두에 두고 조심했다. 이것은 분명한 인권침해다.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책임 있는 사람들이 사과해야 하는데 오히려 반발하고 있지 않은가.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
▲ 2002년 3월 당시 한나라당 의원, 모 일간지 기자와의 통화 내용, 이회창 총재와 당내 인적쇄신 관련
내가 도청당했는지 전혀 몰랐다. 당시 이회창 총재에게 “총재 주변에 냉전적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으니 인적쇄신을 해야 한다”고 해서 부딪친 적이 있다. 한나라당 내의 개혁 성향이었던 김홍신 서상섭 의원 등과 함께 이에 대해 대책을 강구하기도 했다. 당시의 그런 분위기와 관련해서 기자와 통화했던 게 도청당했던 모양이다.
2002년 정형근 의원이 도청자료라며 문건을 폭로했을 때 나와 관련해서 두 줄 정도 적혀 있었다. 그때도 난 ‘국정원 직원이 정보를 취합해서 정리한 것이겠지’라고만 생각했다. 도청 자료라고는 믿지 않았다. 더군다나 당시 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 위원이었는데 정통부에서 CDMA방식 휴대폰은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 말을 순진하게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쾌하기만 하다.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 2000년말~2001년 초, 공무원들과의 통화, 대북 지원정책 관련
당시 도청을 당했는지 정말 몰랐다. 그저 장관직 수행에만 전념했는데….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
▲ 2000년 여름, 당시 의권쟁취투쟁위원장, 의사·약사협회 간부들과의 통화, 의약분업 사태 관련
당시 내 휴대폰이 자주 끊어지고 해서 도청당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는데 이번에 실제로 그랬다고 하니 황당하다. 의약분업 사태가 있었던 당시 의사협회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을 복지부에서 너무나 잘 알고 있더라. 그래서 당시 (의사협회) ‘간부들 사이에 프락치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전화로 얘기했던 게 새나가는 것 같았다. 심지어 검찰 소환에 불응해 수배당했을 때도 내가 친지나 동료들에게 전화를 하고 나면 ‘기관’에서 그 사람들한테 전화해서 나와 통화하지 않았냐고 확인하곤 했었다. 나와 전화했던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때엔) 도청을 확신하지는 못했다.
내가 (2001년) 의사협회 회장일 때도 전화에서 잡음이 들리거나, 자주 끊어지곤 했다. 당시도 의약갈등이 심했는데 보건복지부에선 우리의 전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동안 괜찮더니 내가 국회의원이 된 다음에도 내가 처음부터 쓰고 있는 휴대폰에서 ‘윙’ 하는 소리가 다시 들리고, 이유 없이 끊어지곤 해서 짜증이 날 정도다. 증거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정보기관에서 도청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도형 <한국논단> 발행인]
▲ 2000년 4월, 김대중 대통령 비판 관련
항상 도청당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도청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전화통화를 하다가 감도가 떨어지거나 잡음이 섞이면 도청이 이뤄진다고 예상은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판하던 2000년 4월 나에 대한 국정원의 도청도 집중됐던 것 같다.
당시 도청이 집중되던 시기부터 내가 발행인으로 있는 <한국논단>의 광고 수주도 상당히 떨어졌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누가 시키지 않으면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인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청의 총책임자 아닌가.
[이신범 국민중심당(가칭) 기조위원장]
▲ 2000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삼남 홍걸씨에 대한 소송 제기 관련
당시 도청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집 전화와 휴대전화를 도청한 것 같다. 특히 미국에 있는 변호사와 통화한 것도 도청당한 걸로 안다. 도청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통화하고 난 다음 국정원 직원에게 연락이 오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려면 알아라’는 식으로 당당히 통화했다.
내 이름으로 된 이메일도 안 썼다. 이메일뿐 아니라 팩스도 도청이 가능하다.
한번은 동료 의원들하고 밥을 먹으며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후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 국정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가 DJ의 건강이 안 좋고, 치매에 걸렸다고 말하고 다닌다며 유감을 나타내더라. 당시 난 DJ의 건강이 안 좋다고는 말했지만 치매에 걸린 것 같다는 말은 다른 의원이 얘기했다. 목소리를 혼동했던 것 같다. 도청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런 얘기를 알 수 있었겠나.
‘국회 529호에서 국정원이 정치인을 사찰하고 도청했다’는 말 때문에 국정원은 내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는데, 이제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는가. 오히려 내 인권을 침해한 것이다. 그래서 지난 4월 대한민국과 국정원 간부와 검사 등을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현재 1심이 진행중이다.
[이양희 전 자민련 의원]
▲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 관련
당시 일반적으로 도청을 한다고 해서 나도 도청당하고 있으리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미 나는 정치를 떠난 몸이다. 다만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과는 공직생활을 하며 함께 일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다. 그래서인지 그 자리에 있으면 어쩔 수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인제 자민련 의원의 최측근]
▲ 2002년 3월, 당시 민주당 고문, 같은 당 전갑길 의원과의 통화, 민주당 대선 경선 관련
이 의원은 도청 사건과 관련해 언론에 직접 코멘트하지 않고 있다. 대신 그의 최측근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전달했다.
‘2002년 정형근 의원이 도청 자료를 폭로했을 때 (같은 해 3월쯤) 전갑길 의원하고 통화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그때 ‘도청이 이뤄지고 있다’고 대충 짐작하고 있어서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도청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계속 뒤바뀌고 있지만 일관된 피해자는 나 혼자밖에 없다. 도청 사건의 최대 수혜자인 열린우리당이 오히려 피해자라고 떠들고 다닌다. 역대 정권은 모든 위험요인과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차기 (대선) 주자들에 대해 (도청을) 행했다고 본다. 이번 사건의 실체가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 밝혀지길 바란다.’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 2000년 10월~2001년 3월, 햇볕정책 비판 관련
도청당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당시 국정원 해외담당인 권진호 1차장이 나를 찾아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설명하려 했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한 번, 국정원 청사에서 한 번 만났다. 그런데 국정원이 내 스케줄과 강연일정 등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도청당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당시 대학, 기업체 등에서 햇볕정책과 관련 없는 시스템 공학에 대해 강연을 하며 연간 1억원의 강연료를 받았으나 묘하게도 국정원 도청이 시작됐다고 하는 시기에 강연 요청도 뚝 떨어지고 예약된 강연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취소됐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