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던진 악플에 치명상 입는 스타도
‘불안장애’로 당분간 방송 활동을 전면 중단한 정형돈.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정형돈이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방송 활동을 중단할 예정”이라며 “이렇게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하게 된 점에 대해 시청자들과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온 제작진, 출연자들께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정형돈의 병명은 ‘불안장애’. 다양한 형태의 비정상적,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 질환을 통칭한다. 그동안 이경규, 김장훈 등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연예인들은 적지 않았지만 불안장애는 다소 생소하다. 공황장애를 포함해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각종 공포증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 불안장애다. 여전히 일반인들은 매월 수천만 원에 육박하는 출연료를 포기한 정형돈의 행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지만, 정형돈의 병명을 전해들은 연예인들은 안타까워하며 고개부터 끄덕인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공황장애를 포함해 불안장애가 일명 ‘연예인병’이라 불리는 이유다.
연예인들이 겪는 불안장애 중 가장 치명적인 것 중 하나는 ‘사회적 공포증’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대중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것이 숙명인 연예인에게는 치명적이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는 것이 행복이었던 이들이 정반대 지점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공황장애를 앓았던 한 연예인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닐 때 본인은 원치 않지만 무대에 올라야 했던 경험을 기억하는가”라며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머리 속이 하얘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 김장훈(왼쪽)·이경규도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털어놨다.
통상 이런 공포증은 공황장애와 동반된다. 공황장애는 호흡곤란이 오거나 지금 당장 내가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공포에 휩싸이는 등의 증상이다. 이 연예인은 “걱정하는 큰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내가 방송 도중 크게 실수해 방송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걱정은 항상 한다”며 “상황이 이러니 생방송 무대에는 아예 오를 수 없고 녹화 방송 외에는 행사조차 뛸 수 없다”고 토로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형돈과 같은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연예인은 늘고 있는 추세다. 아직 사회화가 덜 된 나이 어린 아이돌의 경우 소속사에서 주기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게 하며 마음을 다스리도록 돕는다. 왜 이런 증세가 늘어난 것일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이다. 이제 연예인들에게 ‘숨 돌릴 틈’이 없다. 각종 행사나 방송을 마치면 이에 대한 피드백이 각종 SNS를 통해 곧바로 이뤄진다. 게다가 SNS는 여과장치도 없다. 일부 네티즌의 강도 높고 원색적인 비난에 연예인들은 실시간으로 직접 노출된다.
SNS는 스타들이 자신을 홍보하고 제 목소리를 내는 좋은 수단이 되고 있다. 하지만 SNS에 잘못 올린 글이나 사진 한 장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잦다. 기자들도 어떤 사건이 불거지면 해당 연예인의 각종 SNS에서 단서를 찾아내 의미를 부여한다.
“안 보면 되지 않는가?”라는 뻔한 대답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대중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연예인들이 대중의 반응을 체크하는 것은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논란이 불거졌을 때 이에 대한 답을 즉각 내놓지 않으면 ‘눈 가리고 아웅한다’ ‘여론을 무시한다’ 등 또 다른 비난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한 중견 매니지먼트 대표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연예인이 적지 않다. 쉬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며 모든 사이트를 돌아다닌다”며 “모두가 한목소리로 칭찬을 해도 안 좋은 평가를 내린 네티즌 1명이 있다면 그 1명의 의견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연예인병은 이제는 ‘현대인병’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불안장애 유병률(전체 인구 중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12.3%로, 5년 전과 비교해 28.4%나 증가했다.
취업포털인 커리어가 최근 직장인 448명을 대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화병을 앓은 적이 있는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90.18%가 ‘있다’고 대답했고 가장 큰 원인으로 ‘상사, 동료와의 인간관계에 따른 갈등’(63.80%)을 꼽았다. 이 개념을 연예계로 확장시키자면 프리랜서로서 항상 경쟁해야 하고 수많은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의 반응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연예인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연예인과 현대인의 삶의 변화의 패턴은 상당부분 겹친다. SNS를 통해 과도하게 사생활이 노출되고 스마트폰을 이용한 유비쿼터스 시대에 처리해야 할 업무와 정보량이 많아지며 그동안 연예인들이 선행해 겪던 ‘현대병’이 일반인들에게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른 스트레스를 많은 이들이 또 다시 스마트폰을 통해 푼다. 과하게 게임이나 특정 애플리케이션이 집착하고,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곤 한다. 이때 ‘누군가’는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인 경우가 많다. 연예인들의 불안장애가 심해지는 이유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