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남 일화 우승의 주역 신태용 | ||
2002 K리그 정규시즌에서 2연패를 이룬 성남 일화의 우승 주역 신태용(33)과의 취중토크는 이렇게 출발부터 맨 정신이 아닌 상태로 진행됐다. 운동 선수한테는 ‘체격=술통’이라는 공식이 신태용한테는 적용되지 않는 듯했다.
키도, 체중도 절대치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그 많은 술을 다 어떻게 마시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특히 이틀 전에 우승 뒷풀이하며 폭탄주 30여 잔을 마시고도 멀쩡했다는 소리에 기가 팍 꺾였다.
국가대표팀과는 인연이 없는 선수, 그러면서도 프로축구 선수 중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선수, 그리고 팀 우승과 절묘한 상관관계를 맺는 선수, 신태용과의 취중토크는 서울 강남의 한 고깃집에서 시작됐다.
먼저 우승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우승이 당연시되다가 울산 현대가 6연승을 올리면서 성남 일화로선 마지막 포항전까지 결코 안심할 수 없었던 것.
“진짜 긴장 많이 했죠. 울산이 6연승을 할지 누가 알았겠어요. 한 번 정도는 중간에 연승이 끊어져야 하는데 7연승까지 올리더라구요. 포항과의 마지막 경기는 그래서 여느 경기보다도 준비도 많이 하고 각오도 새롭게 했어요. 경기하면서 (홍)명보형한테 부탁했어요. 좀 봐달라고. 물론 농담 삼아 한 말이었지만 그만큼 부담이 됐던 거죠.”
▲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정규시즌이 끝나면 각종 시상식이 선수들을 바쁘게 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수상자보다는 ‘꽃돌이’로 활약중이라는 사실.
“지난해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상을 받았던 것 같아요. 올해도 그에 못잖은 성적을 냈다고 생각했는데 후배들에게 밀리더라구요. 특히 월드컵 태극전사들과 비교해서 인기면에서 밀려 상을 못 탈 때는 정말 속상해요. 상이란 게 그렇잖아요. 내가 1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를 말해주는 거잖아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기분이 안 좋았죠.”
소주 한 병이 고기가 채 구워지기도 전에 비워졌다. 순전 ‘입가심’이었다. 기자가 좀 몸을 사리는 듯하면 바로 ‘공격’이 들어온다. 취중토크를 한두 번 해보냐면서, 술도 못 마시면서 무슨 취중토크냐며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폭탄주 30잔이 ‘뻥’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술에 관한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튀어나온다.
“고2 겨울 때였어요. 친구와 술내기를 했죠. 여자친구들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호기를 부렸어요. 냉면 그릇 가득 소주를 따라서 누가 많이 마시냐는 승부였는데 친구는 냉면 두 사발을 비웠고 난 두 사발 반을 비웠어요. 그후 화장실 갔다가 다시 들어온 순간부터 기억이 나질 않더라구요. 깨어나보니까 아침이대요.”
은퇴한 고정운과도 술에 관한 사연이 한가득이다. 고정운이 일화에서 뛸 때 신태용은 고정운의 졸병이나 다름없었다. 룸메이트였기 때문에 후배인 신태용은 고정운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충성(?)을 다 바쳤다. 두 사람이 더욱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
하루는 지방원정경기가 있어 전날 일찌감치 원정지에 도착해 몸을 풀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외출 나간 고정운이 신태용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잔하자는 내용이었다. 신태용이 다음날 시합 걱정을 하자 고정운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왔을 리 만무.
결국 억지로 술자리에 끌려나갔지만 신태용이 더 신바람을 내며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다음날, 운동장에 나가야 할 시간이 됐는데도 술이 깨질 않았다. 마음 같아선 후반전 10분 정도만 뛰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졌지만 90분 풀타임을 뛰었다고 한다.
“다행히 날씨가 흐렸어요. 만약 해가 내리쬐었다면 경기 도중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을 거예요. 또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하루는 정운이형이 숙소에서 술 마시고 난리를 피웠어요. 평소 감독님한테 불만이 있었던 거죠. 급한 마음에 감독님을 다른 데로 모셔가려고 방을 찾아갔는데 글쎄 감독님도 만취해서 쓰러져 계신 거예요. 그후 어떻게 됐겠어요? 장난 아니었다니까.”
“연예인 축구팀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최수종씨는 내 결혼식 사회를 맡아줬을 만큼 가깝게 지내고 있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서 말이 잘 통해요. 특히 (정)준호는 술 한잔 생각날 때마다 만나는 친군데 의리도 있고 단순해서 궁합이 잘 맞죠.”
신태용은 조만간 일식집 사장이 된다. <일요신문>을 통해 최초로 밝히는 내용이라고 한다. 수원의 한 백화점 식당가에 일식집을 열 예정인데 현재 내부공사가 한창이라고.
대표팀과는 유난히 인연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이상하게도 대표팀에만 들어가면 위축돼 갖고 있는 기량의 20%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국내용’이라는 비난에도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한다.
그동안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를 물었다. “얼마전 명보형이 은퇴하면서 자신의 백넘버(20번)만큼 돈을 벌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나도 내 백넘버(7번) 정도 돈을 번 것 같아요. 그래서 조만간 7번을 영구결번시키고 번호를 다시 받으려구요. 17번 정도로.”
돌아가는 녹음기를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다가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메시지까지 담는 신태용과의 취중토크는 결코 1차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뒷이야기를 차마 지면으로 옮기지 못하는 점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바라겠다. 친구는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한다. 신태용이 기절해 있으니까 여자친구와 술을 한 잔 더 하러 나갔다가 ‘도로와 전봇대가 막 달려와서는 친구를 때리는 바람에’ 쓰러졌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