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건 노련한 실용주의, 이명박 불도저식 행동파
▲ 고 건(왼쪽), 이명박 | ||
고 전 총리와 이 시장의 강연 내용 가운데 두 대권 주자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일화 두 토막을 ‘강연체’ 그대로 옮겼다.
#고건 ‘…신뢰의 리더십’ / 탄핵 당일 긴박했던 6시간
우리는 지난해 3월12일에 국회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함으로 해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대통령 리더십의 위기는 곧바로 국가의 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사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야당의 정치적 공세 내지는 정치적 탄핵선언 정도로 그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근데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탄핵소추안이 의결 쪽으로 가는 게 틀림없다’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저는 정말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저는 헌법 책을 꺼내들었습니다. 헌법에 의하면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되고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한다는 규정이 두 군데 나눠져 있었습니다. 그 규정 이외엔 이러한 경우를 대비한 어떠한 구체적인 법률적 규정이나 예시, 매뉴얼 이런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권한대행을 하는 내가 뭘 언제 어떻게 하느냐, 순전히 여기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 그 순간에 탄핵소추가 의결이 되면 무엇이 제일 급하고 무엇이 제일 중요한가를 생각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국가안보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국방부 장관은 해사 졸업식에 대통령을 수행중이어서 전화연결이 안됐습니다. 대신 국방부 차관을 불렀습니다. 전군 지휘관들이 지휘일선을 떠나지 않도록 전군지휘경계령을 하달토록 지시했습니다.
자, 이제 그 다음은 뭐냐. 다음은 대외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외교부 장관을 찾았습니다.
외교부 장관은 마침 외교사절들을 데리고 KTX 시승 행사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대전에 있었습니다. 참 핸드폰이라는 게 편리했어요. 핸드폰이 없었으면 연락이 안됐을 것이에요. 핸드폰으로 연락해서 ‘탄핵소추가 의결됐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안보정책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같이 가 있는 외교사절들에게 분명히 알려라. 그리고 똑같은 내용을 해외 전 공관에 훈령으로 타전해라. 그리고 가장 제일 중요한 것, 셋째로는 6자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4개국에 대해서는 상대국 외교장관과 직접 통화를 해라. 그리고 그 뜻을 전해라’고 지시했습니다.
다음은 뭐냐? 우리 경제의 해외 신인도 문제다. 그래서 경제 부총리를 찾았습니다. ‘해외 신인도가 중요하니까 탄핵소추의결 이후에도 우리나라 경제정책 투자정책에, 외국인투자정책에도 전혀 변화가 없다. 이런 사실을 빨리 알려라.’ 이걸 외국인 투자자와 해외 모든 관료기관에 긴급히 알리는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저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전화기를 손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기간을 가급적 짧게 단축해줄 것을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1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3시반에는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해서 탄핵기간 중에 해야 할 국정의 방향에 대해 국무위원의 의견을 모았습니다.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하는 시점은 국회 의결서가 청와대에 접수되는 시점입니다. 그래서 국회의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노 대통령께서 해사 졸업식을 마치고 5시경에 귀경할 예정이니까 국회 의결서의 청와대 접수시간을 거기에 맞춰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습니다. 노 대통령께서는 5시 조금 전에 귀경을 하셨고 저는 그 시간에 맞춰서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어 제가 그동안에 조치한 사항을 설명을 했습니다.
이상이 2004년 3월12일 11시 반부터 그날 오후 5시 반까지 6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순전히 저의 본능이랄까 판단에 따라서 순간순간 대처했던 숨막히는 6시간이었다고 지금도 회고가 됩니다. 이것은 바로 국가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는 하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해 4월 고건 전 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으로 임무를 수행하던 모습(왼쪽)과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 ||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얘기합니다. 이명박 시장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면서 일을 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청계천 복원이 빨리 됐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불도저처럼 밀면서 일을 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불도저식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 제가 가만히 보면 불도저를 본 적도 없고 볼 일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불도저의 성능이 어떤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 불도저를 잘 압니다(청중 웃음).
이 불도저라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냐면 딱 설계를 만들어오면 설계대로 컴퓨터에 인푸트해놓으면 불도저 기사는 딱 앉아서 있고 자동적으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삽으로 떴다 쓸었다 합니다. 얼마나 과학적이고 효율적인지 몰라요. 황소 수백 마리가 일하는 것보다 불도저 한 대가 (얼마나) 더 치밀하고 정확한지 몰라요. 근데 불도저식으로 일한다고 하면 외국사람들은 다 좋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사람들은 아니라고 해요. 왜? 외국사람들은 불도저를 늘 보면서 자라잖아요. 한국사람들은 불도저가 뭔지도 모르고 불도저식이 나쁘다고 해요.
내가 건설사에 입사했더니 정주영회장이, 이분은 국민학교밖에 못 나와서 대학 나온 사람을 깔봐요(청중 웃음), 이분이 어릴 적부터 불도저하고 같이 살아가지고 기계에 대해 잘 알아요. 엔진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고장났다, 뭐 이 정도로 잘 알아요. 그래 맨날 나보고 대학 나온 사람이 그것도 모르냐고 해요.
그래서 내가 어찌나 화가 나던지 미국에서 갓 수입한 최신 불도저 장비를 밤새도록 다 뜯어냈어요. 오퍼레이터를 불러다가 전부 해체시켰어요. ‘해체를 하라’ ‘매뉴얼을 가져오라’ 그래서 그 비싼 장비를 다 뜯어버렸어요. 그리고 매뉴얼을 보고 부품들을 다 하나씩 하나씩 체크했어요. 바퀴고 뭐고 스페어고 뭐고 이 매뉴얼의 넘버는 뭐고 이건 뭐고 완전히 다 파악했어요. 다시 하나씩 조립하는 것을 옆에서 유심히 지켜봤어요.
한 번 뜯고 나니까 눈을 감고도 이젠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알겠대요. 그러니 치밀하게 하면 그 기업이 성공할 수 있다. 청계천복원 뭐 밀어붙여서 성공했다?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밀어붙여서 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비전을 제시하더라도 그 비전은 치밀해야 한다.
사람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계획이 완전히 수립된 다음에 그것을 완벽하게 집행하는 그 과정을 보면서 막 밀어붙인다고 해요. 그러나 이 지구상에, 선진국에서 우리와 유사한 조직이 하는 거에 비하면 저는 빠른 게 아니에요. 그러나 한국의 사람은 과거의 발상을 가지고, 과거 관료적 발상에 의해 해오던 업무성과의 속도를 비교해보고 빠르니까 ‘그냥 너무 빠르다’ 이거에요. 빠르면 좋지 늦으면 좋을 게 뭐 있어요. 빨라서 이것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요. 불도저가 빠른 것은 아나봐요, 비판하는 사람들도.
이 지도자라고 하는 것은 던지는 메시지나 모든 것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마구 남발해버리면, 실천되지 않으면 국민이 신뢰를 보내지 않아요. 신뢰를 주려면 그 비전은 아주 치밀하게 준비해야 돼요.
정리=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