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정원, 서장훈, 김승현, 김동문 | ||
첫사랑이 누구에게나 설레는 기억을 남겨주듯 스포츠 스타들에게도 운동을 시작하면서 지금 현재는 물론,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 스타들이 처음으로 공개하는 ‘My First Story’. 첫 골을 넣었을 때의 기쁨과 마라톤 코스를 처음으로 완주했을 때의 그 짜릿함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서정원(수원삼성) - 크라머 감독을 통해 눈 뜬 축구 세계
92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두고 영입된 감독이 크라머 감독이었다. 그와 함께 1년 동안 합숙하면서 축구의 새로운 모습에 눈을 뜨게 됐다. 그는 축구 철학이 확실한 감독이었다. 심리학 박사이기도 한 그는 선수들에게 자신감이라는 선물을 줬다. 스포츠를 포함해 당시 모든 분야에서 억압과 스파르타식 교육이 우선시되는 분위기에서 그는 선수들을 먼저 안아주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운동을 하면서도 예전에는 몰랐던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당시 동료들을 만나면 지금도 크라머 감독이 화제가 되곤 한다.
◆서장훈(서울삼성) - 중2 때 올린 공식대회 첫 득점
농구공을 처음 만져봤을 때는 휘문중학교 1학년 시절이었다. 대회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농구인생에서 공식대회 첫 득점은 2학년 때 이뤄졌다. 하지만 당시 시합에 출전했을 때에는 주전도 아니었고 순위가 거의 확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주목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정식으로 출전해 올린 2점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당시 느꼈던 그 기분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혼자만의 비밀이었던 셈이다.
◆김승현(대구동양) - 내 생애 최초의 금메달
프로에 데뷔하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것은 불과 1년 만의 일이었다. 프로에서 과분한 상으로 주변의 기대가 컸던 만큼 아시안게임에 대한 부담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중국과의 결승전은 쉽지 않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수비를 열심히 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가슴에서는 벅찬 감정이 일었다. 그 어떤 우승 트로피도 아시안게임에서 받은 금메달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미현, 안경현, 김호곤, 이영표 | ||
2000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할 때 쏟아진 기대치는 금메달 2개였다. 하지만 그 기대가 부담이 되었는지 동메달 1개에 만족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아픔이 운동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나에게 이렇게 많은 팬들이 있구나’하는 팬들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귀국하자 인터넷에는 팬클럽과 카페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올림픽 후유증도 자연스럽게 치료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정모와 정팅에는 꾸준히 참석하고 있으며 댓글 다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으려고 한다.
◆김미현(KTF) - 필드의 첫 인상이 세계적인 골퍼로
지금은 필드에 서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처음 필드에 나간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5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았으니 6∼7개월 만의 일이었다. 남수원CC였는데 아버지와 가족이 함께 동행했다. 당시 아버지는 타수보다는 필드라는 감을 느끼게 하려고 많이 신경쓰셨던 것 같다. 나 역시 파란 잔디가 깔려있는 주변 경관이 너무 좋았다. 초여름에 나비와 잠자리를 잡으러 다니는 그런 기분이었다. 당시에는 프로가 목표가 아니었는데 필드가 준 첫인상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이봉주(삼성전자) - 공식대회 첫 완주했던 전국체전
지금 달리는 모습을 보면 잘 믿어지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 역시 처음부터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고 잘 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공식대회에서 처음으로 완주라는 쾌감을 맛본 건 90년 전국체전이었다. 당시 서울대표로 출전해 기록은 2시간19분대, 성적은 2등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선배격인 실업선수들과 당당히 겨뤄 얻어낸 결과였기에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성적보다도 출발선에서 장담할 수 없었던 완주를 해냈다는 사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그 초심을 지금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 박지성은 J리그 첫경험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 했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 5월26일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첫 골을 넣고 환호하는 장면. | ||
지금까지 몇 개의 홈런을 쳤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도 내 생애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홈런이 하나 있다. 2000년에 벌어진 LG와의 플레이오프 6차전. 9회, 3-4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2아웃 2스트라이크 3볼이었다. 말 그대로 전광판에 불이 다 들어온 꽉 찬 상황이었다. 패색이 짙은 그 분위기에서 터져 나온 것이 동점홈런이었다. 당시 이 시합은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극적인 경기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공 하나에 운명이 달라지는 야구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호곤(축구대표팀 감독) - 낚시는 손맛, 축구는 골맛
선수, 코치, 감독으로서 다양한 축구인생을 살아오고 있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골이 있다. 78아르헨티나월드컵 지역예선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주장을 맡고 있던 나는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이후 2경기를 뛰지 못하고 부산에서 벌어진 홍콩과의 경기에 뛸 수 있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하프라인 부근에서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하면서 혼자 치고 들어가 결국 골을 뽑아냈다. 수비수였기 때문에 골과는 큰 인연이 없었는데 아직 그 골이 떠오르는 걸 보면 골맛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박지성(교토 퍼플상가) - 현해탄 건너 일본 J리그에서 뛰던 날
대학을 휴학하고 일본 J리그 진출을 결정했을 때, 기대와 함께 걱정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라운드에서 좋은 플레이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데뷔 첫 경기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긴장이 많이 된 탓도 있었고 또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준비가 덜 되었던 것 같다. 이제 2년6개월의 일본 생활을 뒤로하고 네덜란드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에는 네덜란드에서의 ‘퍼스트 스토리’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영표(안양 LG) - 종교에 처음 눈을 떴을 때
지난해 3월 우연히 책 한 권을 우편으로 받았다. 예전에 무당이었다는 한 집사님이 직접 간증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이후 나의 생활은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종교를 갖게 되면서 놀라운 일도 많이 겪었다. 운동에 도움이 되는 부분보다 진리라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세상에 존재하는 ‘나’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어쩌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그 책 한 권의 힘이 그라운드에서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여실히 보여준 영적 체험이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