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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의 웃음 삼성과 결별 후 5년간 1백50억원 이라는 엄청난 조건으로 CJ그룹과 스폰서 계약 을 맺은 박세리. 모자의 CJ로고는 합성한 것임. | ||
지난해 12월27일 저녁,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예쁜’ 프로골퍼 박지은은 집에서 괜히 짜증을 부렸다. 그냥 모든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 심지어 간식으로 나온 김밥을 “왜 옆구리가 터졌냐”며 집어던질 정도로 신경이 곤두섰다. 평소 같으면 말도 안되는 행동이지만 이날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탓에 박지은의 부모는 조용히 딸의 행동을 지켜만 봤다.
같은 시간 박희정은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다큰 처녀가 왜 우느냐고 식구들이 달랠 법도 하지만 박지은과 마찬가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던 탓에 울어서라도 분을 풀라고 그냥 뒀다. 그날은 바로 ‘골프여왕’ 박세리(26)가 CJ그룹과 5년간 1백50억원이라는 엄청난 조건에 스폰서 계약을 맺었던 것. 위의 두 사례는 바로 이에 따른 파장이었다.
박세리에 비해 아직까지 박지은은 실력이나 인지도에서 크게 뒤진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젊고, 미LPGA 정상의 장타자로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고려하면 박지은이 프로 네 번째 시즌을 맞이하면서도 메인스폰서가 없다는 것은 이해가 안되는 일. 리틀 미스코리아 출신의 미모까지 갖췄기에 더욱 그렇다.
특히 최근에는 박지은이 “이제 나도 모자에 뭔가를 붙이고 싶다(스폰서를 원한다는 뜻)”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어 안타까움을 사기에 이르렀다. 이유는 박지은이 너무 완벽해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 기업의 입장에서는 유명선수를 후원하면서 ‘돕는다’는 것에 대해 생색을 내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박지은이 워낙 재력가 집안의 딸이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것이다. 또한 박지은은 아마추어 55승 등 미국 주니어 골프계의 살아있는 전설. 중학교부터 미국생활을 해 현지문화에 누구보다 익숙하고, 또 특유의 파워스윙과 승부근성은 경험만 쌓는다면 박세리의 뒤를 이어 ‘박지은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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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박지은, 박희정, 김미현 | ||
박지은보다 상금순위나 통산승수에서 뒤진 박희정이 지난해 CJ와 계약한 것은 기업들의 ‘박지은 기피현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다. 이런 가운데 박세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역대 최고 수준의 계약을 했으니 ‘터진 김밥’ 사건이 나오게 된 것.
한편 박희정이 운 것도 당연하다. 박희정은 지난해 CJ와 5년간 연봉 30만달러, 총 1백50만달러에 계약하는 기염을 토했다. 유일한 미LPGA 투어선수면서 CJ그룹의 간판스타로 극진한 대접을 받게된 것. 그런데 하루 아침에 2인자로 밀려나고 말았다. 통산 2승의 자신에 비해 메이저 3승을 포함, 18승에 빛나는 박세리는 경쟁 상대로 너무 벅차기 때문이다.
특히 박세리는 CJ그룹 오너가 ‘무조건 영입’을 지시했을 정도로 그룹 고위층의 애정이 대단하다. CJ 소유의 ‘클럽 나인브릿지’의 초대여왕인 점도 박세리가 CJ의 간판선수임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하지만 계산상 ‘세리 언니와의 한솥밥’은 박희정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낙 박세리가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한 탓에 박희정의 대우도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
실제로 박희정은 올초 계약기간이 4년이나 남았음에도 15만달러가 인상된 연봉 45만달러에 재계약했다. 또 로드매니저와 개인 코치에 대한 지원까지도 추가로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 박세리의 가세로 CJ그룹 자체가 여자골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탓에 조금만 잘해도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전망이다.
심리적으로 박세리에 비해 박희정은 부담이 적다. 박세리가 우승하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박희정은 ‘이변’으로 훨씬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박세리와 동갑내기인 김미현은 지난해 12월16일 소속사인 KTF와 재계약을 맺었다.
3년간 30억원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김미현측은 대만족감을 나타냈다. 연간 10억원은 당초 김미현이 바라던 바 그대로 수용됐고, 계약기간이 5년에서 3년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워낙 특급대우였던 탓에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만족감은 열흘 만에 박탈감으로 바뀌었다. 박세리가 CJ와 계약한 금액이 꼭 자신의 세 배에 달했던 것.
물론 할 말은 없다. 아니카 소렌스탐과 함께 세계 양강인 박세리에 비해 세계랭킹 4위인 자신이 뒤지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섭섭한 건 사실. 김미현은 박세리의 유일한 라이벌답게 박세리가 테일러메이드와 10억원의 서브스폰서 계약을 할 때만 해도 실제 금액은 그 이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 삼성을 떠난 박세리가 메인스폰서를 구하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그런데 CJ가 박세리를 전격 영입하고, 그 액수가 자신의 세 배에 달하자 박세리 파워에 새삼 놀라는 눈치. 박세리의 계약에 대해 김미현측이 일절 반응을 나타내고 있지 않은 것은 상대적 빈곤에 대한 불쾌감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유병철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