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명 추가 탈당할 것” vs “당 구하랬지 나가랬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왼쪽)와 안철수 의원. 일요신문 DB
“탈당에 관련된 생각 아직 못해봤다. 단도직입적으로 예스냐 노냐 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약 안철수 의원이 탈당한다면 동반 탈당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 의원이 한 말이다. 한국 정치사에 비춰봤을 때 제1야당의 둥지를 떠나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지난 2002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만든 한국미래연합도 성공하지 못해 결국 같은 해 11월 한나라당과 합당했다. 천하의 박 대통령도 탈당 후 재창당에 실패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당 카드는 쉽게 꺼내들 수 없다. 장고의 장고를 거듭한 뒤에도 아껴야할 카드다. 그런데 만약 20~30명의 의원이 동반해 탈당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하나의 원내교섭단체로서 독자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선거를 준비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는 문재인 대표 스스로 사퇴하라는 의견을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끝없이 제기해왔다. 이 비판의 선봉장에 안 의원이 선 모양새다. 지난 11월 29일 안 의원은 “문 대표와 저를 포함한 모든 분이 참여하는 혁신 전당대회 개최를 제안한다. 혁신 전대를 통해 혁신의 구체적 내용과 정권교체의 비전을 가지고 경쟁해야 한다”며 문 대표와 전당대회 ‘결투’를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당헌·당규로 자리가 보장되는 문 대표와 달리 안 의원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 지금 상황에서 내년 총선 공천 학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안 의원의 탈당론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그러나 만약 탈당을 감행한다면 선거 때마다 반복돼온 분열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안철수 의원의 측근이자 비주류 모임 ‘구당모임’ 소속 문병호 의원은 지난 11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탈당하게 되면 분열이기 때문에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다는 말이 지금까지 야당이 과감한 변신을 하지 못한 주된 원인이다. 그런 책임론에 대해 대응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며 “이제 과감하게 변신할 때가 됐다. 국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문 의원의 설명이 이어진다.
“야권 분열 프레임으로 이익 본 사람이 누군가. 친노 패권이 이익을 다 누리고 ‘탈당하면 야권 분열된다’고 해왔다. 더 이상 그런 식의 계산법은 인정할 수 없다. 만약 그 말이 맞는다면 (친노계가) 먼저 내려놓으면 될 문제다. 야당 분열하면 다 망한다면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내려놔야지 갖고 있지 않은 사람보고 왜 내려놓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문 의원은 분열에 대한 책임론을 감수하고라도 탈당 등의 초강수를 둬야하는 시점이라는 입장으로 보였다. 같은 견해를 가진 비주류 의원들은 안 의원의 탈당을 신호탄 삼아 탈당 러시를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탈당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광주전남 시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주홍 의원도 문 의원과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황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분열은 창조적인 파괴다. 어떡하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상당히 불리한 구도로 간다”면서도 “하지만 안철수 세력이 떨어져 나온다고 해서 마냥 불리해지는 것만은 아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의원은 밖에 있는 박주선 박준영 천정배 김민석 정동영과 함께 할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잘하면 김한길 박영선 박지원 김두관 김부겸까지 아우르려고 할 거다. 그렇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정치연합이 규모가 작아지겠지만 어쨌든 의석수에서 제1야당의 지위를 갖고 있으면서 4월 총선까지 간다. 새정치연합과 안철수 세력, 이 두 야당이 선거 연대를 안 할 수 없다. 100% 단일화가 된다”며 “내년 4월 야당 후보들이 난립하는 상황은 없다. 결과적으로는 새누리당 대 야권 후보 일대일로 붙는다고 본다. 지금 문 대표 독점 체제에선 경쟁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계파 충성심이 더 중요하다”고 보탰다. 안 의원의 영입제안 여부에는 “뭐가 있겠어? 이심전심이다”고 답했다. 황 의원은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 높은 탈당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13일 안 의원의 기자회견이 예고됐다. 아마 거기서 99.9% 탈당 기자회견을 한다고 본다. 안 의원 스타일상 동반이 아닌 독자 탈당을 할 것이다. 그 다음 후속적으로 동반 탈당이 있을 것 같다. 1차 10여 명이 같이 간다고 본다. 2차에서 10명이 또 추가 탈당할 것이다. 3차에서 10여 명 더 나올 것이다. 궁극적으로 안철수 의원 주위에 30명 안팎의 의원이 그룹핑하지 않겠느냐고 본다. 그리고 나도 그 안에 포함될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난다”며 탈당 입장을 밝혔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황 의원이 예측한 동반 탈당 의원 30명 안팎은 국회 교섭단체 조건인 의원 20명을 훌쩍 넘는 숫자다. 이 정도 규모가 된다면 가칭 ‘안철수 신당’으로 문 대표에 대한 협상력이 대폭 상승한다. 한 번의 폭발이 연쇄폭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조심스런 입장이 더 많다. 새정치연합에는 현실로 닥치지 않은 탈당 이외에도 변수가 많다. <일요신문>이 접촉한 대부분의 비주류 의원들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며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안 의원 탈당 이후 당내 상황과 여론의 흐름 등을 확인한 뒤 탈당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한 비주류 의원은 “탈당 여부를 말하긴 아직 곤란하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이 함께하든지 아니면 두 분이 빠지고 다른 분을 중심으로라도 개혁을 하자는 입장이다”며 “우리는 가급적 당 내에서 통합하는 가운데 혁신을 하고 그 결과를 봐야할 것 같다. (안 의원이 탈당한다는) 가상적인 질문에 답하긴 곤란하다”고 말했다.
구당모임에 속한 다른 비주류 의원은 “구당모임은 구당모임이고 안철수 의원하고는 별개다. 연계돼 있다거나 하지 않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오히려 비주류에서는 탈당을 반대하는 의원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구당모임에 속한 한 의원의 얘기다.
“나는 안 의원 탈당에 동조하지 않는다. 당이 우리 것인데 왜 우리가 탈당을 해야 하나. 우리는 당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구당모임 중 탈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탈당하고 분열은 안 된다. 구당은 당을 살리자는 의미다. 구당모임 안에서 탈당 얘기 꺼내지 말라고 했다. 당을 구해야 하는데 무슨 탈당이냐.”
비주류로 분류되는 한 새정치연합 중진 의원도 “탈당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안 의원 쪽에서 신당 합류를 제안한 적도 없다”며 “문 대표가 공천권 내려놓고 당원이랑 국민한테 공천권 넘겨주는 게 맞다. 지금은 당을 합해야지 탈당은 반대한다. 힘을 합치고 역지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비주류의 대체적인 기류는 안 의원이 탈당하는 대신 당내에서 싸우고 문 대표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견으로 볼 수 있다. 수도권 비주류 한 의원은 안철수 의원의 탈당만큼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현재로서는 당에 남든, 탈당을 하든 둘 다 도움이 안 된다. 안에 있어도 분열과 혼란상에 있는 상태고 호남민심이 이반됐으니까 별 도움이 안 된다. (문 대표도) 이대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선거에서 진다고 생각하는데 이대로 갈 수 없다. 일단 비대위로 가겠다는 선까지는 합의점이 왔다고 생각한다. 비대위를 하는데 문 대표도 일정한 역할을 하고 싶으니까 공동위원장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입장이고 지금 안철수 의원 쪽은 그건 결국 문·안·박 연대랑 똑같은 제안 아니냐 하면서 떨떠름하게 반응하는 거라 생각한다.”
“지금 현재 민심은 이대로 안 된다는 것 아닌가. 문재인 대표나 안철수 의원이나 우리 당의 모든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제안하는 것들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 이 부분을 잘 생각해야 한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분열하면 패배하고 통합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대의 혁신은 통합이다. 새정치연합은 김대중, 노무현 세력이 통합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안철수, 시민단체, 노동세력 이 다섯 개 세력이 연합해서 창당된 것이다. 하나가 물러가면 하나만큼 손해다. 특히 안철수 의원은 젊은 세대와 중도세력 등의 지지를 받는 세력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굉장히 위태롭게 본다.”
지금으로서는 당내 의원들이 안 의원의 탈당보다는 문 대표의 기득권 내려놓기를 통한 ‘봉합’을 원하는 기류가 우세해보였다. 12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탈당을 선언한 안 의원의 파괴력이 어디로 향할지, 얼마나 클지 예측하기 힘든 이유다.
장예찬 자유미디어 대표는 “안 의원이 탈당한다면 호남의 천정배 의원 등과 손을 잡으면서 호남권 안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탈당하면서까지 갈라선 탓에 단일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삼자구도로 수도권에서 출마하면서 새누리당에 밥상을 그대로 가져다주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안 의원의 이번 탈당 카드는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패배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책임을 문 대표에게 모두 떠넘기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총선 패배 이후 책임론에서 자유로운 안 의원이 일시에 대권후보로 급부상하는 것을 노리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