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문 세력 헤쳐모여”…멍석은 이미 깔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비노계에서 “문재인 체제로는 안된다”는 기류가 형성되며 천정배·안철수·손학규 ‘반문 연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요신문 DB
‘천·안·손’의 교집합은 ‘반문’이다. 지역적으로는 야권 발 정계개편 향배의 바로미터인 호남(천정배)·부산(안철수)·수도권(손학규) 연대다. 새정치연합의 남부민주벨트가 영·호남의 민주화 세력에 한정됐다면, 반문 연대는 플러스알파(중도층 확장)다. 제1야당의 총선 전략을 단번에 뒤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새정치연합의 전신) 대선 경선 때도 손학규 전 고문은 안철수 당시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연일 러브콜을 보냈다. 손 전 고문은 연설할 때마다 “정권교체가 손 안에 있다”며 “이 손안에 있기도 하고 ‘손(손학규)과 안(안철수)’에 있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부산을 고리로 한 ‘문·안 연대’보다 부산과 수도권의 전면전 결합을 꾀하는 손·안 연대의 파괴력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념적으로는 중도(안철수·손학규)·진보(천정배)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중도개혁 노선에 가깝다. 천정배 무소속 의원이 천명한 ‘뉴 DJ 플랜’은 물론, 호남 적자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특히 현재 호남민심은 ‘NO(노) 문재인’다. 비주류 전직 의원은 “호남 민심은 한마디로 부글부글 끓는 냄비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며 “‘문재인 체제로는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하다. 총선 직전 한번은 터진다. 비지지층을 배제하는 친노 특유의 기질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도 복원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문 연대는 다르다. 세대별로는 20~30대(안철수)와 50~60대(손학규·천정배)의 만남이다. 여기에 ‘준비된 손학규’와 ‘새정치의 안철수’, ‘DJ 정신 천정배’의 시너지효과가 가시화된다면, 환상의 복식조다. 시너지효과가 어디까지 확장할지 알 수 없다. 야권 한 관계자는 “문 대표의 마이웨이가 독단과 독선으로 전락한 마당에 이들의 조합은 ‘총·대선 승리의 필승조’로 부상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그 이유로 계층구도 변수를 꼽았다. 87년 체제 이후 지역구도가 미약하게 약화되는 추세라면, 계층구도는 완연하게 강화되는 추세다. 중도층 공략 여부에 따라 선거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친노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문 대표를 비롯해 친노계의 표 확장성은 그 한계가 뚜렷하다. 2010년 6·2 지방선거 때 친노 정당을 표방한 국민참여당이 문 닫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민참여당 창당의 주역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낙선했다. 2011년 4·28 재보선 땐 이봉수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나섰지만, 김해에서 패했다.
‘한명숙 체제’에서 치러진 2012년 총선도 중도층 확장에 실패한 결과였다. 문 대표가 그해 대선 때 ‘상처뿐인 영광’에 그쳤던 안 의원과 단일화에 나선 것도 친노의 표 확장성 한계 때문이다. 고정표는 친노가 반문그룹보다 우세하지만, 시너지효과에 따른 확장성은 다르다. 이 지점이 ‘친노의 딜레마’다.
문재인 체제의 표 확장성은 더욱 치명적이다. 문 대표는 ‘문·안’ 갈등 과정에서 비주류의 퇴로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당 내홍이 극에 달했던 지난 8일에는 이종걸 원내대표와 심야 통화에서 “당무 거부하려면 당직 사퇴하라”며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역 20% 물갈이’ 작업을 맡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의에 자료를 거부한 유성엽(전북도당 위원장)·황주홍(전남도당 위원장)에게도 사실상 사퇴를 고리로 최후통첩을 날렸다. 안 의원에게는 ‘분열’의 딱지를, 비주류에게는 ‘공천에 혈안이 된 기득권’ 딱지를 각각 붙였다.
당 안팎에선 “친노계가 당을 사당화했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비주류 측 한 보좌관은 “연일 계속되는 정면 돌파로 친노계의 25% 저지선 뚫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힐난했다. 이로써 친노계는 반쪽으로 전락했다. 반문 연대가 주목받는 까닭도 친노의 이 같은 패권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다.
문제는 ‘시기’다. 일단 이들이 20대 총선 전 ‘반문 깃발’을 꽂을지 예단할 수 없다. 천정배 신당 창당은 멈출 수 없는 기차지만, 안 의원의 탈당은 전략적 선택이 가능하다. 총선 전 천정배 신당과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을 수 있다. 총선 이후도 가능하다. 총선 땐 안철수 이름을 앞세운 ‘나홀로 선거’를 치른 뒤 총선 이후 촉발될 야권 발 정계개편 과정에 뛰어들 수도 있다.
손 전 고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계은퇴를 한 마당에 급히 총선에 등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손 전 고문 측 핵심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2017년 대선 때까지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기회를 총선 전에 써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며 “(손 전 대표는) 워낙 명분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서 쉽게 움직이기보다는 총선 후 문재인 체제 등이 끝난 뒤 국민의 명령이 있을 때나 (등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대목이다. 야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의 행보는 크게 △총선 전 반문 연대 완성 △총선 전 각자도생 뒤 총선 후 결합 등으로 나뉜다. 전자든 후자든, 반문그룹이 한 당에 있든 아니든, 반문 연대는 단계성을 띨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선 천·안 연대-후 천·안·손 연대’다. 2017년 대선판이 전면적으로 열리기 전까지 ‘선 연대’는 강력한 연합전선을 꾀할 가능성이 크지만, ‘후 연대’는 느슨한 연합전선에 머물 수밖에 없다. 선 연대에서 후 연대로의 전환은 ‘명분’이 결정한다.
단순한 반문 깃발로는 안 된다. 기존의 제1야당과 차별화된 인물, 당 운영체제, 조직 등이 필요하다. 야권 텃밭인 호남에 대한 구애도 절실하다. 문재인호의 전략이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면, 반문 연대는 ‘돌아와요 호남’ 전략이다. 세력도 변수다. 천·안·손 연대의 인물 구도는 문재인호에 버금간다. 지역 구도나 세대 구도, 이념 구도의 차별성도 있다. 손 전 고문의 밑바닥 조직력은 탄탄하다. 손 전 대표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동아시아미래재단’을 중심으로 손학규계는 비교적 끈끈하게 형성돼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손학규 캠프에 합류했던 한 인사는 “손 전 고문이 오라고 하면 달려올 인사들은 많다”고 귀띔했다. 천정배 신당도 호남을 중심으로 세 규합 중이다. 상대적으로 안 의원의 조직력은 미약하다. 다만 지난 대선 당시 한 차례 캠프 진용을 꾸린 경험에 비춰보면, 향후 지지율 여부에 따라 조직력이 빠르게 갖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명분과 세 규합이 반문 연대의 운명을 결정짓는 셈이다.
이들에게도 딜레마는 있다. ‘지분 경쟁’이다. 세 마리 잠룡이 당권·대권을 둘러싸고 ‘n분의 1 게임’을 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차기 대선 때까지 지속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연대전선을 형성할지는 물음표다. 그럼에도 하나는 확실하다. 야권 발 정계개편의 상수라는 점이다. 반문 연대는 여의도 권력구도의 균열을 가한다. 균열이 확연해지면, 새로운 정체세력이 태동한다. 균열의 시작은 ‘천·안 연대’의 성사 여부에 달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