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코어’까지 위험! 방패 꺼내라
친박 원로그룹 ‘7인회’의 멤버인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황인자 씨 측근으로부터 1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비록 액수는 작지만 정치권에선 이번 사건이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DB
지난 9일 의정부지검은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2012년 4월 현 부의장이 황인자 씨 측근 조 아무개 씨로부터 1000만 원을 받은 혐의다. 조 씨는 현 부의장이 머물고 있던 제주도로 내려가 5만 원권 200장을 현 부의장에게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 부의장은 11월 21일 검찰에 출석해 15시간가량 조사를 받은 뒤 12월 1일 사의를 표명했다. 자신의 혐의에 대해 줄곧 부인해왔던 현 부의장은 검찰의 약식기소 결정 직후 “거짓은 100년이 지나도 진실이 될 수 없다. 1000만 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그 시간과 장소에 (나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 소식을 접한 친박계는 뒤숭숭한 모습이다. 현 부의장이 5선 경력의 중진급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박 대통령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유에서다. 현 부의장은 박 대통령 정치 행보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원로그룹 7인회 소속이다. 특히 지난 2012년엔 대선 외곽 캠프 한강포럼을 이끌며 지원사격을 했다. 7인회 멤버인 김기춘 전 실장이 사퇴한 후에는 비서실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현 정부 들어 7인회 중 김 전 실장과 현 부의장 정도만이 핵심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친박에서 정치적 무게감이 남다른 인사”라면서 “액수가 크진 않지만 현 부의장 비리가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도덕성도 흠집을 입게 됐다”고 말했다.
여권 핵심부가 더욱 우려하는 부분은 그동안 개인비리에 불과하다고 부인했던 이른바 ‘황인자 리스트’가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황 씨는 2008년 참솔토건 비리 사건에 연루돼 지명수배됐고 2013년 5월 통영에서 붙잡혔다. 황 씨가 도주 및 수감기간 동안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구명로비를 했다는 말이 사정당국 주변에서 끊이지 않았지만 좀처럼 실체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루머로 전락하는 듯했다.
그런데 올해 8월 박 대통령 정치적 고향인 대구 달성 출신의 제갈성배 전 대전국세청장, 9월 박 대통령 이종사촌 형부 윤석민 전 의원, 12월 박 대통령 원로 측근 현 부의장까지 잇달아 사법처리를 받으면서 황인자 리스트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황 씨는 옥중에서 그동안 후원해줬던 정치인들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털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위기에 빠진 자신을 모른 체했다는 생각에서다. 여기엔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현 정부 실세들과 사정기관 고위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정치권이 황 씨의 ‘입’을 지켜보는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황 씨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다. 또 윤 전 의원 등이 정권 실세들을 팔아 황 씨를 속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향후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밝혀질 일이다. 야권은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연루 사건이 공평하게 진행될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그동안 검찰 수사 과정을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점들이 너무 많다. 친 정권 성향 김수남 신임 검찰총장이 과연 성역 없이 수사할지 의문이다. 야당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여권 핵심부 역시 황인자 리스트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직접적으로 실명이 거론되고 있는 인사 대부분이 친박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황 씨 폭로 내용에 따라 자칫 후반기 국정 운영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브로커에 불과한 황 씨 말을 다 믿을 수 있겠느냐”면서도 “솔직히 현 부의장이나 윤 전 의원만 해도 도덕성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 새롭게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은 정권 ‘코어’에 있다. 어떻게 하던 지금 수준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귀띔했다. 야권이 칼을 꺼낼 채비를 하고 있다면 여권은 방패를 품속에 숨기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친박 핵심부는 황인자 리스트와 관련해 여러 번 대책회의를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엔 친박계 원로인사, 청와대 관계자, 전·현직 의원 등이 참석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황 씨의 개인 비리로 일축했던 친박계였지만 물밑에선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요신문>은 이 모임에 직접 참여했다는 인사들을 접촉했고, 그 중 한 명인 친박계 원로급 중진 인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첫 친인척 비리다. 박 대통령이 제일 강조한 것이었는데 기어코 일이 터지고 말았다. 윤 전 의원의 경우 ‘A급 관리’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또 현 부의장도 액수는 작다 하더라도 비서실장 하마평까지 올랐던 유력 인사다. 특히 돈 받은 시점이 2012년 4월이어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던 박 대통령에게까지 번질 수도 있었다. 대선자금 얘기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느냐. 더군다나 박 대통령 참모 등 현직 청와대 비서관 이름까지 불거졌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대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려 모인 것이다.”
이들은 삼청동 또는 인사동 등에서 만나 수사 상황을 공유하고 나름대로의 대응책을 수립했다고 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접한 야권에선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우선, 검찰이 수사 중인 특정 사건에 대해 정권 실세들이 논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부당한 외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이들이 모여서 수사 상황을 공유했다면 검찰과 라인이 있다는 얘기다. 정권 차원에서 눈여겨보고 있는 사건을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으면서 “더욱 걱정스러운 부분은 이들이 수사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외압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러한 조직적인 대응을 통해 무언가를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