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선임된 박성화(수석코치)-최강희(코치)-박영수(GK코치) 체제가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외국인 감독과 한국인 코치진의 ‘궁합’ 문제 때문. 과거 외국인 감독 체제에서 감독과 코치진 혹은 코치끼리 불협화음을 빚은 예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월드컵 4강 신화에 가려 대부분 노출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히딩크 감독 시절에도 감독과 코치진(박항서-정해성-김현태) 사이에 적잖은 잡음이 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코치들 각자가 후일담으로 털어놓은 이야기들을 모아보면 ‘위기 상황’이 일어날 만한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다.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과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 뒷이야기와 ‘선배’ 코치들이 신임 코치진에게 전하는 조언을 정리했다.
▲ 지난해 6월18일 월드컵 이탈리아전의 감격. 왼쪽부터 김현태 박항서 정해성 코치. | ||
좋은 사진을 위해 김 코치에게 이런 저런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장면을 연출하던 중 “왜 이렇게 훈련을 많이 시키냐” “군대처럼 훈련을 시키는 건 잘못됐다”는 등 평소 하지 않던 간섭을 했던 것. 그러면서 히딩크 감독은 통역을 담당한 축구협회 전한진 과장을 불러 아예 “운동을 시키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열받은 김 코치는 골키퍼들을 모두 숙소로 돌려보냈고 자신도 운동장에서 철수한 뒤 숙소로 돌아왔지만 감독으로부터 수모를 당했다는 생각에 분을 삭이지 못했다. 식사시간에 히딩크 감독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김 코치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바로 히딩크 감독. 그 일과 관련해서는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식사 끝나고 등을 툭툭치거나 장난을 걸며 김 코치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그 사건 후 히딩크 감독은 골대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월드컵 코치 3인방 중 가장 마음 고생이 심했던 사람이 정해성 코치였다. 정 코치는 한때 히딩크 감독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 적이 있었다. 바로 애인 엘리자베스 때문이었다. 정 코치 입장에선 아무리 외국인의 남녀 문화를 이해하려고 해도 공식석상에 본처를 놔두고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여자와 동행하는 히딩크 감독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는 엘리자베스가 외국 전지훈련지의 선수단 숙소에 묵었다는 사실이 국내 언론에 알려지며 선수단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선수들과 식사하는 자리에 나타났다. 순간 정 코치의 안색이 변했고 히딩크 감독 또한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공식적인 자리에선 서로가 깔끔하게 일을 처리했지만 사석에선 한 여자로 인해 한동안 불편한 동거를 계속하며 감정이 위험 수위까지 오르내렸던 것. 결국 여자 문제와 관련해선 정 코치가 눈과 귀를 닫고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정 코치(현 전남 수석 코치)는 월드컵이 끝난 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감독일 뿐이다. 사생활까지 모범적일 수는 없는 건데 당시엔 그런 부분이 이해되지 않았다”면서 “코치는 엄한 시어머니가 돼야 하고 감독은 부드러운 시아버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코치는 또한 “감독이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언쟁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내 경우엔 히딩크 감독을 이해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월드컵 이후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희비쌍곡선을 달렸던 박항서 코치(현 포항 수석코치)는 새로 선임된 한국 코치 3인방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파벌 의식을 가지면 안된다”고 충고했다.
박 코치는 “분명 (감독과 코치들 사이에서 또는 코치들만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고 알아서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잡음이 새어나가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크로아티아 전지훈련에서 22일 귀국했다는 박 코치는 기자와 24일 전화통화를 할 즈음에 대통령 취임식참석차 방한하는 히딩크 감독을 만나기 위해 인천공항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