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유전자 같은 증상 고칠 때는 ‘딴 식구’
현대차는 2003년 12월 1일부터 2011년 12월 31일까지 생산된 포터2(왼쪽)의 적재함 부식 관련 무상수리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지만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봉고3(오른쪽)는 무상수리 대상이 아니다.
현대차 포터는 지난 1977년 생산을 시작한 이후, 1981년 ‘자동차산업 합리화 조치’로 5년 정도 생산이 중단된 일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국내 대표 상용차로 군림해 오고 있다. 현재 판매 중인 ‘포터2’의 금년 누적판매량은 10월까지 7만 3829대를 기록하며 ‘쏘나타’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전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기아차 ‘봉고3’의 인기 역시 만만찮다. 누적 판매량 4만 7171대로 전체 9위에 올라있다. 판매 순위 10위 안에 두 상용차가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소형 트럭 시장에 포터와 봉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1998년 삼성자동차가 ‘야무진’을 출시했다. 허나 이내 회사가 파산하면서 야무진은 힘 한번 써보지도 못 하고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같은 해 기아차는 현대차에 인수됐다. 이후 사실상 현대차그룹은 포터와 봉고를 앞세워 이 시장을 독점해오고 있다.
그 사이 차 값도 많이 올랐다. 지난 2000년 600만 원 수준이던 게 지금은 가장 저렴한 기본형 기준으로 현대 포터2가 1400만 원이 넘고, 기아 봉고3도 1300만 원대 후반에 팔리고 있다. 가격은 꾸준히 올랐지만 편의장치 등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또 기술과 품질도 크게 개선된 부분이 없다. 차가 어떻게 출시되든 필요한 사람들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바로 독점의 폐해로 지적되고 있다.
포터와 봉고의 적재함 등 차량 부식 문제는 어떤가. 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결함신고센터에 따르면, 이 두 차량의 적재함 부식 신고건수는 2013~2014년 2년간 각각 16건, 25건이었고 올해는 11월까지 벌써 37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자동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포터와 봉고 차주들의 적재함 문짝 부식에 대한 고충 글이 자주 눈에 띈다. 많은 차주들이 “2~3년 운행하면 녹이 심해 구멍이 날 정도”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기자와 만난 2010년식 포터2 차주는 “3년도 채 안 돼 적재함 문짝이 전부 녹슬어 구멍이 났다. 다행히 폐차장에서 중고 문짝을 싸게 구입해 전부 교체했다”며 “그 해 출시된 차가 유독 부식이 심하다고 들었다. 같은 차를 운행하는 주변 사람들도 다 같은 이유로 문짝을 바꿨다”고 밝혔다.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 결과 현대차는 ‘포터2 적재함 관련 무상 수리’라는 명칭으로 지난 5월 4일부터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상은 2003년 12월 1일부터 2011년 12월 31일까지 생산된 차량. 온라인 카페 등에서는 이를 ‘비공식 리콜 받는 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기자가 직접 현대차 직영서비스센터에 문의하니 “현재 (포터 적재함 교체) 접수량이 너무 많아 직영서비스센터에서는 더 이상 접수를 받지 못 한다. 교체를 받으려면 1급 공장에 문의해 보라”며 “지금 접수하면 적어도 3개월은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 애프터서비스센터는 ‘직영서비스센터-종합 블루핸즈-전문 블루핸즈’ 세 단계로 나뉜다. 앞서 언급된 1급 공장이란 종합 블루핸즈를 의미한다. 현대차 서비스 관계자는 “모든 종합 블루핸즈가 아니라 지정된 285곳에서만 무상 수리를 받을 수 있다”며 “이는 공식 리콜이 아니고 무상 수리”라고 강조했다. 무상 수리 대상 차량을 2011년식까지로 한정한 이유에 대해 그는 “2012년부터 녹이 잘 슬지 않는 강판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동차결함신고센터 내역을 보면 무상 수리 대상이 아닌 차량도 부식 문제가 있었다. 2012년식 포터2 차주는 “적재함이 2~3년 지나면 페인트 밑에서부터 녹이 발생함. 신고자 본인 차량에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다른 동일한 차량에서 동일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음. 대략 80~90%는 동일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함”이라고 했다. 2012년식 이후에도 적재함 부식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문제는 또 있다. 이번 조치가 어디까지나 리콜이 아닌 무상 수리이기에 해당 자동차 소유자에게 통지할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모든 적재함 부식에 대해서가 아니라 ‘관통부식’ 즉 녹이 슬어 구멍이 나야만 무상 서비스가 가능하다. 앞서의 현대차 관계자는 “차량을 접수하면 센터 엔지니어가 적재함의 상태를 점검한 후 교체 여부를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대접(?)마저도 기아차의 봉고3 차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포터와 같은 적재함 부식 문제를 안고 있는 봉고3는 무상 수리 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 봉고3 차주는 “차 살 때 누구나 포터와 봉고를 놓고 고민한다.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두 차에 큰 차이를 못 느낄 것”이라며 “조금 더 마음에 드는 쪽으로 고른 것뿐인데 (서비스에서) 차별받는 기분이 들어 불쾌하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이 복수의 기아차 직영서비스센터에 문의한 결과 “봉고는 교체 대상이 아니다”, “유상은 가능하지만 무상 수리는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기아차 서비스 관계자도 “현재 (봉고3에 대해) 리콜이나 무상 수리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현대차와의 차별 논란에 대해 그는 “같은 그룹이지만 현대차와 기아차는 별개의 회사다. 때문에 서비스하는 기준과 운영방식도 다르다”고 해명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별개의 회사이듯 포터와 봉고도 분명 다른 차다. 하지만 적재함의 재질까지 다를지는 의문이다. 소비자는 사실상 현대차와 기아차를 같은 회사로 인식하고 있다. 제네시스라는 새로운 ‘날개’를 단 현대차그룹. 오랫동안 현대·기아차를 믿고 구매해준 제 식구부터 살뜰히 챙겨야 안심하고 전 세계로 비상할 수 있지 않을까.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