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좀 우울한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아요. 소식 들어서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한동안 잠잠했던 오른쪽 무릎 통증이 다시 재발돼 훈련도 제대로 못하고 있답니다. 답답한 건 병원의 정밀 진단 결과로는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몸은 아픈데 원인이 발견되지 않고 있으니 갑갑할 노릇이죠.
성격상 걱정을 달고 사는 것보단 그런 걱정을 잊으려고 다른 데 몰두하는 편입니다. 요즘엔 게임기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삼국지’는 하도 많이 해서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영표형네 집에서 인터넷으로 한국의 신문을 검색해 보니까 제가 네덜란드어를 곧잘 한다고 나왔던데 기본적인 몇 단어 외에는 말할 줄 몰라요. 두 달 만에 네덜란드어를 할 줄 안다는 건 거짓말 아닌가요. 일주일에 두 차례씩 언어 수업을 받긴 하지만 일어 다음으로 어려운 게 네덜란드어인 것 같아요. 영어는 배우지 않아서 어려운지 안 어려운지 말할 수는 없고요.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나나 영표형은 이쪽 선수들의 얼굴이 비슷비슷해 보이거든요. 흑인 외엔 거의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은 거죠. 그런데 그들은 나와 영표형이 비슷해 보이나봐요. 어떨 때는 나한테 “영표”라고 부르고 영표형한테 “지성”하고 부르죠. ‘왕눈이’의 영표형과 ‘가물치눈’을 소유한 날 헷갈려한다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요.
선수들과 친해지려고 요즘엔 이름을 외우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난 외국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면서 새삼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에 친근감과 존경심을 갖게 되었어요. 우리나라는 이름이 길어야 네 글자잖아요. 그런데 이쪽 애들의 성과 이름은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떤 선수는 이름만, 또 어떤 선수는 성만 외워서 불러줘요. 그 긴 이름을 다 외운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죠.
참, <일요신문>에 항의 하나 하려고요. 지난번 첫 번째 일기 전문에 ‘딸기소년’ 박지성이라고 표현했던데 왜 나에게 ‘딸기소년’이라고 수식어를 달았는지 이해가 안돼요. 얼굴에 난 여드름 때문인가요? 자국은 남았지만 예전보단 아주 좋아졌어요. 그리고 딸기는 맛있는 과일이잖아요. 여드름은 맛도 없을 것 같은데…. 가급적이면 ‘딸기소년’이란 말을 빼주셨으면 해요.
에인트호벤에선 어웨이 경기 때는 츄리닝(트레이닝복)을, 홈경기 때는 양복을 입고 다녀요. 처음엔 좀 납득이 안됐어요. 일본에선 반대로 의상(?)을 갖춰 입었거든요. 아마도 홈 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이겠죠. 그런 점에선 에인트호벤의 마케팅 방식에서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빨리 부상에서 회복돼야 저의 진가를 이곳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언젠가는 나아지겠죠. 서두르지 않으려고 해요. 이제 겨우 두 달 지났는 걸요. 2월26일 에인트호벤에서.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