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소리 커질수록 예스맨들 ‘곡’ 소리
정의화 의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입법부의 1인자로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반면 ‘말년병장’ 최경환 부총리는 개각이 점점 밀리면서 불안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앞서의 재선 의원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최근 꼭 들어맞는 사람이 정 의장이다. 의원들이 모여 통쾌하다는 말을 한다”며 “역대 국회의장 중 단연 베스트”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의화 리더십’은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의원들 심정을 잘 대변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부의 ‘입법부 무시’가 도를 넘은 지 오래라는 것이다.
지난 15일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국회로 직접 정 의장을 찾아왔다. 경제 상황이 심각하니 정부가 노력하고 있는 경제활성화 법안들과 노동개혁 법안들을 의장의 힘으로 직권상정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정무수석은 청와대와 국회를 잇는 징검다리다. 그 역할이 ‘대통령의 아바타’와 같다는 말도 있다. 즉, 박 대통령의 의중이 직권상정에 있다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정 의장은 “국회의장은 어디까지나 법에 따라서 할 수밖에 없다”면서 직권상정 불가 입장을 못 박았다. 앞으로 닥칠 경제 위기 상황을 직권상정의 요건인 전시나 사변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 의장은 “직권상정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좀 찾아봐 달라”고 현 수석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그건 부탁이 아니라 법에도 없는 일을 하지 말라는 은근한 조롱이자 해학으로 읽힌다.
현 정부가 국회를 ‘컨트롤’하는 일은 공식화돼 있다.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대국회 심판 발언을 하면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현기환 수석이 움직이고 그게 관철이 되지 않을 땐 사람을 찍어낸다.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 사퇴가 대표적인 예다. 김무성 대표도 몇 차례 그런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입법부 수장인 정 의장한테 넘어가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정 의장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국에선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절차의 문제가 있다. 바로 잡아야 한다”는 쓴 소리를 했다. 오히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청문회를 열어 보자고까지 했다. 비록 청문회는 현실화하지 못했지만 국민적 설득 없이 막무가내로 국정화를 추진하려는 정부에 한방 날렸다는 말이 당시 회자했다.
정 의장은 모법을 위반하는 시행령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의 국회법을 두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법 취지에서 벗어난 행정입법은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 법을 통과시킨 유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김무성 대표.
정 의장은 국회의장을 지냈음에도 내년 총선에 출마할 뜻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권에 생각이 있다”는 말을 들어왔다. 당내 세력은 없는 편이지만 국회의장으로서 팬심을 자극해 무언의 동조자가 생겨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으로 보인다. 한 여권 인사는 “미국같이 삼권분립이 철저한 나라에서는 국회의장의 대통령 출마는 불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삼권분립이 철저하지 않다”면서 대권 출마도 가능하다는 근거를 들었다.
정 의장이 이렇게 뜨는 반면 최경환 부총리는 개각이 점점 밀리면서 불안해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는 청와대가 요구한 경제 및 노동입법 이유와 맞물린다. 청와대와 정부는 앞으로 경제가 어려울 것이 자명해 직권상정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는데 오히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경제 수장을 바꿀 수 있나. 오히려 최 부총리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경제 살리기에 올인해야 할 판”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이름이 아니라 본인의 이름을 딴 ‘초이노믹스’에 대한 평가도 내년 초 이뤄질 것으로 보이면서 그때까지는 행정부에 머물고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문제는 친박계 내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과의 스킨십을 넓혀가고 있는 친박 핵심 의원은 ‘최 장관이 당으로 돌아와 친박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 힘을 받겠느냐’고 묻자 “그것도 인기가 있을 때 얘기”라고 했다. 말 속엔 뼈가 있었다.
친박계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자신을 보좌했던 직원들의 인사청탁 의혹 문제로 최 부총리의 체급이 좀 떨어졌다. 당으로 돌아와 어떤 일을 도모한다고 해도 꼼수로 읽힐 가능성이 커진 것”이라며 “오히려 친박의 구심점 역할을 내가 해보겠다며 몇몇 의원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무성 대표의 처지는 더 딱하다. 선거구 재획정 문제에서부터 쟁점 법안 처리까지 집권여당의 수장으로서 제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청와대 예스맨’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청와대가 정의화 의장을 향해 “비정상적인 국회 상태를 정상화시킬 책무가 있다”고 겨눈 당일 김 대표는 원내지도부를 이끌고 정 의장을 찾아가 거듭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압박했다. 이 자리에서 정 의장은 김 대표를 향해 “나를 만나러 올 시간에 야당 의원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 설득하라”며 타일러 보냈다. 직권상정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적극적인 대야 협상을 주문한 것이다.
김 대표의 협상력, 정치력, 리더십, 대권주자로서의 자질 모두 이번 직권상정 정국에서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해결사 이미지가 있었던 김 대표의 최근 성적은 썩 좋지 못하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