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 이모티콘 등장…배꼽 잡는다고 전해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상반기에도 2015년을 대표할 만한 트로트가 있었다. 가수 오승근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오승근의 아내 고 김자옥이 점찍어준 곡으로 알려진 ‘내 나이가 어때서’ 역시 세대를 초월한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많은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됐다.
2015년을 관통한 ‘내 나이가 어때서’와 ‘백세인생’의 공통점은 나이에 대한 편견을 깼다는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는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며 힘든 삶을 살아가는 중장년층에게 기운을 북돋웠다.
가수 이애란이 SBS <스타킹>에 출연해 ‘백세인생’을 부르는 모습 캡처.
‘백세인생’도 마찬가지다. ‘6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9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라는 가사는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웅변한다.
이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다수 직장인들이 50대를 전후해 직장에서 퇴직해도 평균적으로 20~30년의 삶이 남는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고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 이들에게 ‘내 나이가 어때서’와 ‘백세인생’은 ‘인생은 60세부터’라고 응원한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오승근과 이애란은 올해 행사 섭외 1위 트로트 가수로 급부상했다. 오승근은 지난 5월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생애 첫 단독콘서트를 연데 이어 광주 등에서 공연을 펼쳤다. 구매력을 갖춘 중년 팬들이 오승근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활용된 이애란의 ‘백세인생’. 오른쪽은 인터넷에 떠도는 활용 예.
이애란 역시 요즘 하루 평균 2~3개의 스케줄 소화한다고 한다. 게다가 그의 개런티는 무려 6배나 올랐다. 또한 <무한도전>에 이어 SBS <스타킹>에 출연하는 등 그를 섭외하기 위한 방송 관계자들의 물밑 경쟁도 치열하다. 이애란은 <스타킹> 촬영 당시 “이렇게 큰 무대는 처음이다. 요즘 행사비가 6배나 올라 기쁘다. 첫 앨범 실패 후 진 빚을 갚고 있는 중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승근과 이애란은 단순히 2015년에 주목받은 트로트 가수 수준을 넘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들의 노래는 10~30대 등 젊은 세대들과 즐겨듣고 따라부르기 때문이다. 그 근간은 ‘가사’다. 재미있고 맛깔스러운 가사는 다양한 패러디물을 낳으며 젊은층에게도 널리 소비되고 있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가사는 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10대들은 ‘내 나이가 어때서, 연애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며 이성교제를 허용해달라고 외치고, 30대들은 ‘내 나이가 어때서, 혼자살기 딱 좋은 나인데’라며 결혼, 출산, 육아 등을 포기한 ‘삼포세대’들의 애환을 표현한다. KBS 1TV <전국노래자랑> 예심에서는 ‘내 나이가 어때서’를 선곡해 들고 나온 10세 미만 어린이들이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외치며 웃음을 자아낸다는 후문이다.
‘백세인생’은 SNS를 통해 먼저 유명해졌다. ‘~전해라’라는 가사를 절묘하게 활용한 이모티콘과 캡처사진 등이 신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이모티콘은 아예 정식 출시돼 판매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6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가사는 엄마와 딸의 SNS 대화에서 ‘빨리 집에 오라’하면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이모티콘으로 사용되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 연인이 ‘언제 오냐’고 묻고, 조교가 ‘레포트 제출하라’고 채근하면 ‘재촉 말라 전해라’라고 대답하라는 식으로 활용된다.
또한 이애란이 ‘백세인생’을 부르는 동영상은 세계적인 동영상사이트 유튜브에서 조회수 200만 건이 넘었다. 그가 유명해지면 유튜브에서 이 동영상을 찾아보는 이들이 더욱 증가했다는 후문이다.
오승근
‘내 나이가 어때서’와 ‘백세인생’의 인기는 2015년 대중문화계를 관통한 ‘복고’와 ‘추억’이라는 정서와 맞물렸다고 볼 수 있다. 연초는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큰 인기를 얻으며 1990년대를 풍미한 가수들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이 시기 터보, SES, 지누션 등을 보며 젊음을 불태웠던 이들은 30~50대가 된 후 <무한도전>을 보며 화려했던 시절을 추억했다.
최근에는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88>이 복고와 추억 열풍을 재점화시켰다. 극중 주인공들의 나이로 설정된 1971년생들은 올해 45세로 이제는 어엿한 가장이자 부모 세대가 됐다. 또 다른 축을 담당하는 쌍문동 아줌마 3인방들은 어느덧 60~70대가 돼 추억을 곱씹으며 <응답하라 1988>을 챙겨보고 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성공한 트로트곡은 대부분 모든 연령층이 공감할 만한 정서를 담고 있다”며 “‘내 나이가 어때서’와 ‘백세인생’의 인기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과 애환을 어루만지기 때문에 공감을 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