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FC로 둥지를 옮긴노상래의 ‘캐넌슛 부활’ 이 기대된다. [대한매일] | ||
처한 상황들은 다르지만 목표는 한 가지. 돈보다는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과거의 명성을 뒤로한 채 새로운 환경 속에 몸을 맡긴 ‘이적생’들의 숨겨진 사연들을 들여다봤다.
전남에서 지난 시즌 극심한 부진을 겪으며 방출의 수모를 겪은 ‘캐넌슈터’ 노상래가 은밀히 대구 유니폼을 입었다. 소리 소문도 없이 달구벌에 들어와 인생 역전을 노리고 있는 노상래의 이적 소식은 최근에야 언론에 알려졌는데 동료들조차 놀랄 정도로 쇼킹했다.
95년 데뷔 첫해 신인왕에 오르며 통산 2백19경기 71골 39도움을 기록한 ‘광양의 스타’가 계약금도 없이 신생팀 대구에 입단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노상래는 지난해 12월 전남의 벼락 같은 해고 통지를 받은 이후 미국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초청장을 보낸다면서 적극적인 영입 의사를 보이던 댈러스 번 구단이 갑자기 입장을 바꾸며 고압 자세로 나온 것. 입단 테스트까지 요구해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미국행이 무산되자 집에서 두 달 이상 두문불출했다. 선수생활 지속 여부를 놓고 고민에 휩싸였다.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두 딸 희원과 지원이 눈에 밟혀 도저히 축구화 끈을 풀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2000년 1월1일 밀레니엄 베이비로 태어난 둘째딸 희원이에게 멋진 피날레를 약속했던 터라 은퇴는 예정에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미 ‘전성기’가 지난 노상래에게 손길을 내미는 구단은 좀처럼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던 걸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98코리아컵대회 때 노상래를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한 박종환 감독과의 우연한 전화통화가 결정적이었다. 안부 인사나 전할 심산이었지만 내심 담아두었던 “선생님 밑에서 뛰고 싶다”라는 작은 희망을 꺼내 보이고 만 것.
노상래의 사정을 익히 듣고 있었던 박종환 감독은 자신만의 ‘관심법’으로 그의 의지를 확인한 뒤 “나와서 훈련해”라는 한마디 후 수화기를 내려놨다는 후문이다. 노상래는 3월16일 포토데이 행사 때 젊은 선수들 뒤에 자주 숨었다. 후배들과 함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미심장한 숨바꼭질이었다.
▲ 김도훈 | ||
결정적인 순간마다 ‘공갈포’를 허공에 작렬한 것이 죄라면 죄. 차경복 감독은 “‘골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몸을 무겁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도훈도 이러한 충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우후죽순 밀려드는 자신에 대한 혹평을 뒤집어 놓겠다는 의지가 앞선 나머지 과다한 골욕심으로 심신의 평정이 틀어진 상태다.
그렇지만 아직 그가 국내 최고의 토종 스트라이커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김대의가 부상으로 2∼3개월 가량 팀에 합류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지만 차경복 감독이 리그 3연패에 변함없는 자신감을 보이는 것도 김도훈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 일본에서 마음 고생을 겪던 젊은 해외파들도 국내 무대에 복귀해 재기의 칼날을 갈고 있다. 그 중 벨기에 프로리그를 밟았던 이상일이 팀 적응에 실패, 대구에 입단한 점은 매우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이상일은 2000년 중앙대를 중퇴하고 벨기에 주필러리그 베베른을 거쳐 GBA(제르미날 베르쇼트 앤트워프)에서 활약했고 진출 첫해 베베른에서 19경기 출장 1골을 기록하며 당시 앤트워프의 설기현과 함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기대주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국내로의 유턴이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 이상일은 “벨기에 대표급 선수들이 대거 이적해와 설자리를 잃었다”며 “투지와 정신력으로 그들과 부딪쳤지만 가면 갈수록 힘의 한계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일본 J리그 2부팀 미토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친 안선진도 어느새 현해탄을 건너 포항에 안착했다. 안선진은 경남상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동아시아, 유니버시아드 대표를 거친 유능한 미드필더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표 생활을 같이했던 안정환과는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는 사이.
2001년 5월 미토로 진출해 1년 7개월간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안선진이 국내로 유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재미가 없어서’였다. 지난해 일왕배 종료 후 소속팀에서 재계약을 원했으나 더 이상의 2부리그 생활은 재미는 물론, 자기발전도 없다고 판단했다. 포항에서는 부천에서 이적해 온 김기동의 백업 요원으로 활약할 전망이다. 유재영
월간축구 베스트일레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