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붙이기 속도전 ‘그에게서 MB 향기가…’
안전문제로 지난 13일부터 폐쇄된 서울역 고가. 이곳은 2017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의 ‘하이라인파크’를 뛰어 넘는 녹지공간으로 재탄생될 예정이다. 원 안은 폐쇄 전후 현장을 직접 점검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영하의 추위가 엄습하던 지난 12월 16일. 서울 남대문 시장은 오고가는 상인과 손님들로 분주했다. 남대문 시장 입구에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결사반대’가 새겨진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시장 상인들은 서울역 고가 공원화로 일대 교통 혼잡과 손님 유입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무작정 공원을 만들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교통이 이렇게 혼잡한데 누가 시장을 찾겠느냐. 배달도 나가야 하는데 걸어서 가라는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역 고가는 지난 13일 0시를 기점으로 폐쇄됐다. 여러 논란이 불거졌지만 서울역 고가의 폐쇄는 사실 오래전부터 예상되어 있었다. 1990년대 말부터 노후화 문제가 불거져 13t 이상 차량은 통행을 금지했다. 지난 2006년에는 정밀안전진단에서 사용제한 등급인 D급을 받았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09년에 고가를 철거하고 대체교량을 건설하겠다고 밝혔으나, 디자인서울 사업과 서울역 북부 역세권 사업과 맞물리면서 검토가 늦어져 실행되지는 않았다.
박원순 시장 취임 후인 2012년 서울역 고가는 안전진단에서 또 다시 D급을 받고 잔존수명이 2~3년 남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박 시장 역시 시의회에서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서울역 고가가 철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까지 서울시의 계획은 ‘고가를 철거하고 대체교량을 건설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변화가 감지됐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한 박 시장은 공약집에 서울역 고가 공원화 방침을 처음으로 넣었다. 공약집에 따르면 예산은 386억 원이 예상됐다. 당초 철거 사업비는 148억 원(철거 60억 원, 교통대책 88억 원)이지만 공원화 조성을 위해 238억 원이 추가 투입되는 방식이었다.
지방선거에 앞서 박 시장은 측근들에게 공원화 구상을 종종 얘기했다고 한다. 이후 재선에 성공하자 지난해 9월 미국을 순방하며 뉴욕 하이라인 파크를 현장 시찰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서울역 고가를 철거하기보다 하이라인 파크를 뛰어 넘는 녹지공간으로 재생시키겠다”며 공원화 구상을 발표했다. 올해 1월부터는 아예 ‘서울역 7017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공식화했다. 공약집에서 잠잠하던 서울역 고가 공원화 이슈가 실질적으로 이즈음부터 여론의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 속도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은 그동안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국감에서 이러한 문제는 화두로 떠올랐다.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남대문 시장 상인들이 일방적 사업 추진에 대해 ‘교통체증 심화’와 ‘상권 몰락 우려’를 나타내며 지속적으로 반발하자, 박 시장은 사업발표 3개월 후인 지난해 12월 뒤늦게 시민토론회와 주민 설명회를 개최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의회에서도 지적은 이어졌다. 새누리당 이명희 시의원은 “뉴욕 하이라인 파크는 10여 년간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며 “서울식 고가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기초해서 일방적인 계획을 발표하고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예산은 지난해 말 시의회에서 진통 끝에 올해 118억 원이 편성됐으며, 올해 말 내년도 예산으로 232억 원이 통과됐다.
박 시장과 밀접했던 시민사회계 일각에서는 “박 시장이 뭔가 달라졌다”고 평가한다. 서울시에서 잔뼈가 굵은 한 시민운동가는 “처음 프로젝트가 나왔을 때 아이디어 수준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단 1년 만에 별다른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정책화가 됐다. 사업 추진은 기정 사실이됐고,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빠르게 이뤄졌다. 이제까지 서울시 정책 방향과는 대조적이다. 소통을 중시하는 박 시장 스타일과 맞지 않아 의아했다”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 시장이 뭔가 마음이 바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박 시장이 유력 대권주자이지만 아직 서울시장으로서 가시적 성과는 없다. MB(이명박 전 대통령) 하면 ‘청계천’, 오세훈 하면 ‘디자인서울’이 떠오르듯 박 시장 하면 떠오르는 ‘뭔가’가 필요할 것이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정도면 도시재생 사업이라는 명분도 있고 브랜드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판단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박 시장의 불도저 같은 행보는 비단 ‘서울역 고가 공원화’뿐만이 아니라는 점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서울시의 내년도 예산안 중 눈에 띄는 점은 전년보다 50% 증액한 ‘도시재생’ 분야다. 서울시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재생특별시’를 만들고자 한다며 4343억 원의 예산을 집중 투입하기로 했다. 또 다른 공원화 사업인 마포 석유비축기지 공원화 사업(257억 원) 역시 서울역 고가 공원처럼 2017년쯤에 마무리된다. 공교롭게도 2017년은 대선이 있는 해다. 이쯤 되면 ‘약속의 2017년’이라고 부를 만하다는 시각도 있다.
박 시장의 이러한 모습은 현재 당내 상황과도 연결되어 분석된다. 야권 내 유력 차기 대선후보인 문재인 대표가 당 내홍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고, 안철수 의원이 탈당 이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을 감안하면 박 시장이 야권의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참에 경쟁력과 몸값을 한껏 불려놔야 향후 본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한 당직자는 “박 시장에 대한 여권의 비판 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만큼 박 시장을 더욱 경계한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분열되는 야권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고 시정에 집중하며 ‘마이웨이’를 갈 수 있다는 점도 유리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시민사회계 일각에서는 박 시장의 ‘도시재생’ 사업이 겉포장만 그럴듯한 사실상 ‘개발사업’ 아니냐는 의심스러운 시각을 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역 고가 공원화 발표 이후 인근 중림, 만리동 등은 내년에 본격 개발에 들어갈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인근 부동산 가격은 뛸 준비를 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진보 지지층이 있는 박 시장으로선 결국 중도 지지층을 얼마나 확장하느냐가 관건인데, 이러한 행보는 중도층 내지는 일부 보수층의 마음을 얻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울시 측은 서울역 고가 공원화와 관련한 여러 논란에 대해 “남대문 시장 상인들과 밀착 소통을 해서 지금은 상당히 반대가 많이 누그러진 상황”이라며 “콘크리트, 고가 등이 등장한다 해서 개발로 보면 곤란하다. 궁극적으로 문화와 콘텐츠를 통해 도심에 활력을 넣는다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이명박의 청계천과 비교해보니 ‘대권 프로젝트’ 공통점…사업비는 청계천의 10 분의 1 지난 1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계천을 직접 찾았다. 청계천은 올해로 복원 10년을 맞는다. 감회가 남다른 듯 이 전 대통령은 청계천을 구석구석 다니며 문화유산을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대표 사업이 ‘청계천 복원’이라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청계천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고성준 인턴기자 두 사업은 인근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다는 것도 유사하다. 당시 청계천 복원 사업이 착수되자 청계천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서울시는 청계천 상인들에게 가든파이브로의 이주를 약속하며 복원공사를 진행했다. 현재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도 인근 남대문 시장 상인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갈등을 빚는 과정도 상당히 비슷하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야당 시장이어서 사업추진에 어려움이 많았다. 박 시장의 서울역 고가 공원화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국토부는 고가도로의 위험성 때문에 폐쇄만 승인한 것이지 공원화 자체를 승인하지는 않았다. 문화재청 역시 시가 제출한 ‘구 서울역사 주변 고가도로 보수보강 및 광장 시설물 설치’ 신청안을 최근 부결시켰다. 서울역 고가와 서울역광장을 연결하는 계단이 옛 서울역사를 가린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두 사업은 규모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까지 2년 3개월간 진행돼 총 사업비 3800억여 원이 투입된 반면, 서울역 고가 공원 사업은 400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하지만 대선 시점과 맞물리는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은 그 자체로 관심의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한편 박 시장은 항간의 이러한 시선을 의식한 듯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서울시가 하는 일은 모두가 다 그렇게 해석한다. 우리가 계획한 것 중에 2018년에 끝나는 것도 있고, 2019년에 끝나는 것도 있고, 2020년에 끝나는 것도 있다. 그러니까 그건 괜히 말하기 좋아하시는 호사가들이 하시는 말씀이다”라고 일축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