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일기를 쓰고 있는 곳은 로테르담에 있는 (김)남일이형네 집이에요. 제가 살고 있는 에인트호벤에서 차로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남일이형은 지금 한국에서 콜롬비아전을 앞두고 열심히 뛰고 있을 겁니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왜 있냐고요? (송)종국이형의 개인 닥터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가 근처에 있는 남일이형 집에 묵게 된 거죠. 4일 동안 여러 가지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좋아지곤 있지만 완벽하진 않아요. 다들 아시죠? 제가 무릎 부상 때문에 가고 싶었던 한국에도 못가고 팀의 스페인 전지훈련에도 합류하지 못한 채 홀로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건대, 올 시즌은 크게 기대하지 않기로 했어요. 뛰고 싶어 욕심을 부리다보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죠. 곧 수술도 해야 할 것 같아요. 팀 탁터에 의하면 치과에서 치아를 뽑는 것처럼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수술’이라는 단어가 묘한 긴장감을 안겨 주네요.
여러분! 드디어, 마침내, 저희 집에 인터넷이 설치되었습니다. 인터넷이 깔린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국내 신문을 검색하는 거였어요. <일요신문>도 봤어요. 담당 기자가 제 일기를 어떻게 정리했는지, 혹시 ‘박지성 일기’를 기자 맘대로 고쳐놓은 건 아닌지 눈 크게 뜨고 확인 작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이 여섯 번째 나가는 일기인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더군요. 바로 무릎 부상이죠. 정말 절 힘들게 하는 ‘얄미운 놈’입니다.
인터넷만 설치되면 이메일로 친구들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려고 했지만 막상 자판을 두들기려다보니 좀 귀찮더라고요. 만약 친구들 중에서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상으로 시름에 빠져있는 외로운 축구선수한테 격려의 메일을 ‘팍팍’ 좀 보내달라고 말하고 싶네요.
가끔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듣는 말이 있어요. 예상보다 목소리가 밝다는 이야기죠. 유쾌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도 하고요. 힘들 때마다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너는 왜 축구를 하느냐?’고. 전 축구를 할 때 가장 행복하거든요. 어떤 스트레스가 쌓여도 축구를 하다보면 저절로 풀려요.
월드컵 끝나고 잠시 들떠 있을 때가 있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월드컵 출전 선수들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당시의 제 모습을 떠올려보면 ‘웃겨요’. 분위기에 휩쓸려 제 중심을 잃고 조금씩 흔들렸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이 힘들 때도 있지만 지나온 시간을 하나둘씩 되새김질할 수 있어 좋아요.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긴 한데 너무 생각이 많은 것도 때론 흠이 될 때가 있더라고요. 다음주엔 신나고 즐거운 소식만 전해드리길 바라면서….
3월28일 로테르담에서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