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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엘류 감독이 생각보다 ‘야박한’ 국내 축구계의 현실에 적잖이 실망하고 있다는 전언. 지난 3월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경기가 안 풀리자 고 개를 숙이고 있는 쿠엘류 감독. | ||
포르투갈에서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인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는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의 앞길은 장밋빛 실크로드였다. 물론 어느 정도의 변수와 굴곡은 그도 예상했다. 팀을 꾸려가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
그러나 지난달 29일 콜롬비아대표팀과의 평가전을 치르고 이번 한·일전을 준비하며 쿠엘류 감독은 한국 축구의 ‘현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이 갖고 있는 자질 문제는 거론하지 않더라도 협회와 프로연맹의 ‘엇박자 놀이’, 해외파 선수들 사이에 만연된 개인주의, 너무나 얇은 선수층 등 미처 생각지 못한 현안들이 매번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쿠엘류 감독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16일 한·일전을 앞두고 특별훈련을 실시하기 위해 선수들을 조기 소집하자 일부 구단들이 반발하며 아예 소속팀 선수들을 보내주지 않았던 ‘사건’이다.
파주NFC에서 모이기로 한 24명의 훈련 멤버 중 안양과 수원 소속 선수 8명이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쿠엘류 감독은 ‘훈련 불가’를 외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소집에 응했던 선수들도 어쩔 수 없이 보따리를 싸들고 소속팀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축구협회 관계자들은 쿠엘류 감독에게 ‘훈련을 무산시킬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모인 선수들만을 대상으로 예정된 훈련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가 무안만 당했다는 후문. 쿠엘류 감독은 “이런 상태에서 훈련하느니 차라리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훈련하는 게 훨씬 낫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협회측에선 고위층까지 나서서 예정된 프로그램을 소화시키려 했지만 쿠엘류 감독의 흔들림 없는 태도에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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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월드컵 당시 정몽준 축구협회장과 담소를 나누다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 | ||
대표팀의 한 코치는 “대표팀 세대교체를 위해 신인 선수들을 발굴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 하지만 김도훈, 윤정환 세대와 이천수, 최성국 세대의 중간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 “‘재료’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상의 ‘요리’를 만들어내라고 다그치는 건 넌센스”라고 표현했다.
쿠엘류 감독은 사석에서 한 코치에게 “특별히 눈에 띄는 선수가 없어 차선책으로 예비 선수를 뽑아놓을 수밖에 없는데 기술위원들이 이름만 듣고 ‘왜 그 선수를 발탁했냐’며 뭐라고 할 땐 정말 할 말이 없었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번 한·일전에도 그동안 대표팀서 보기 힘들었던 새 얼굴들이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기술위원들이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이 선수를 왜 뽑았냐”며 단번에 이의를 제기해 쿠엘류 감독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는 후문.
한·일전 참가를 위해 지난달 29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 소집을 ‘건너뛰었던’ 차두리(독일 빌레벨트). 하지만 그는 대표팀의 소집 통보에 소속 구단을 통해 ‘갑작스런 부상으로 응할 수 없다’는 답신을 전해 왔다. 몇몇 해외파 선수들의 불참에 대해 쿠엘류 감독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며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물론 부상으로 오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바쁜 일정으로 자칫 소속팀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그런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앞으로 해외파 선수들을 불러모으는 게 무척 힘든 일이 될 것이다. FIFA가 정한 A매치 데이가 아니면 명예를 위해 실익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한 대표팀 코치의 독백엔 쿠엘류 감독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요즘 쿠엘류 감독 입장에선 월드컵이란 국가적 대명제를 등에 업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히딩크 감독이 부럽기만 하다. 월드컵 이후 구단과 선수 개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행동들과 협회의 무원칙한 행정으로 인해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이방인’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
쿠엘류 감독은 한 코치에게 이런 아쉬움을 전했다고 한다. “난 한국 축구의 발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런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내가 얼마만큼 능력을 발휘하느냐는 바로 당신들한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