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순간은 까칠까칠한 손맛이 제대로 살아있는 새 볼(공)일 때다. 새 볼은 프로야구 시합이 있는 경우와 피칭 훈련을 하는 투수들에게만 지급되기 때문에 투수가 아닌 선수들은 매듭이 제대로 살아있는 볼을 만질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시합에서 흙이 묻은 볼과 훈련에서 투수들이 피칭 연습을 끝낸 볼들은 일명 ‘펑고’라고 하는 타격훈련의 배팅볼로 그 신분이 1등급 낮춰진다. 이때부터는 투수들의 손끝에서 만끽했던 스피드를 뒤로하고 타격 코치의 무자비한 방망이에 공중과 땅으로 내팽개쳐지게 된다. 이런 아픔을 겪으며 매끄럽던 표면에도 상처가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는 몰매를 각오해야 한다. 그물망 앞에서 던져주는 볼을 계속 쳐내는 타격훈련인 티배팅볼로 신분이 바뀌기 때문.
여기까지 오면 회색빛으로 적당하게 바래진 색깔과 반질반질하게 닳은 표면이 그동안의 아픔을 말해준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친 볼들은 이제 최후의 운명을 준비한다. 그나마 상태가 좋은 볼들은 실내연습장에서 수명을 이어가지만 여기서 탈락한 볼들은 이제 ‘우천구’라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비 오는 날, 볼에는 치명적이라는 물을 흠뻑 먹은 채 마지막 운명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럼 1군과 2군이 쓰는 볼에는 차이가 있을까? 결론은 ‘없다’이지만 굳이 차이를 끄집어낸다면, 2군에서 쓰는 배팅볼은 1군 선수들이 일주일 정도 쓴 볼이 내려오기도 한다고.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