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은 가도 금배지는 남는다…자기 셈법 따라 총선 준비
핵심 친박들과 청와대 참모들이 저마다의 정치적 셈법으로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겐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제공=청와대
친박은 현 정권을 탄생시킨 개국공신이자 주류 세력이지만 비주류인 비박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이는 국회의장, 원내대표, 당대표 등 여러 번의 선거에서 번번이 패배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 중심엔 비주류를 이끌며 친박과 대척점에 섰던 김무성 대표가 있었다. 김 대표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구성된 비주류 수장 역할을 맡아 친박을 견제하며 여권의 유력 차기주자로 부상했다. 그러다보니 친박 내 이탈 세력도 늘었고, 반대로 비박은 더욱 세를 불릴 수 있었다.
그러나 김 대표가 개헌론, 유승민 사퇴 파동 등 박 대통령과의 힘겨루기에서 연이어 밀리자 비박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박으로 돌아섰다 다시 친박으로 원대복귀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았다. 동시에 친박계 목소리도 힘을 얻었다. 특히 공천룰과 관련해 김 대표가 정치 생명까지 걸겠다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도)를 접고, 친박이 밀던 전략공천을 사실상 수용하자 이러한 구도는 더욱 강화됐다. 새누리당 안팎에선 ‘김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비박계가 와해됐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김무성계 외엔 사실상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친박은 총선에 ‘올인’한 모습이다. 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최경환 부총리가 곧 여의도로 컴백하면 더욱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김무성 대표와의 회동(12월 9일) 등 계파를 가리지 않고 의원들을 만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친박이라는 정치세력은 총선에서 일정 지분을 얻지 못하면 박근혜 대통령 퇴임과 함께 사실상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친이계가 지금 그나마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2012년 총선에서 공천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면서 “무엇보다 박 대통령 퇴임 후를 보장하기 위한 친위대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친박은 2016년 총선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친박 내부에선 청와대 핵심 관계자와 몇몇 의원들이 주도하는 총선 전략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사석에서 만난 한 친박 초선 의원은 “대구와 경북을 제외하곤 ‘박근혜 마케팅’이 통할지 모르겠다. 오히려 다른 지역에선 박 대통령을 앞세우는 선거가 불리할 수 있다. 의원 개개인으로선 박 대통령 퇴임 후보다 ‘배지’를 다는 게 더 중요하다”며 “모든 친박 의원들이 예전처럼 청와대 지시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따를지 모르겠다. 청와대가 앞장서서 선거 전략을 세우는 것 역시 적절하진 않다고 본다. 솔직히 말하면 2016년부턴 박 대통령 레임덕이 시작되는 때 아니냐”고 반문했다.
친박 의원의 이러한 말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친박계에선 금기시되는 단어 중 하나인 레임덕이라는 말을 꺼냈다. 이는 임기 후반기로 접어든 박 대통령에 대한 친박계 충성도가 다소 느슨해졌다는 징후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핵심 친박들이 추진해왔던 대구·경북(TK) 물갈이론에 대한 반발로도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앞서의 친박 초선 의원은 “엄연히 당헌·당규가 있는데 대통령이 마음먹었다고 이렇게 특정 지역 현역 의원을 교체하려고 해도 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다른 친박 의원들도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박 대통령이 물러난 뒤 TK 지역 맹주 자리라도 하나 차지해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박 대통령과 핵심 친박들은 이러한 내부 분위기에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 사퇴 이후 회심의 총선 카드로 쓰려던 TK 물갈이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서다. 이 경우 TK에 이어 부산·경남(PK)과 수도권까지 그 기세를 이어가려던 전략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사실 지금의 TK 현역 의원을 물갈이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박 대통령이 2012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공천을 준 ‘박근혜 키즈’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들에 대한 박 대통령 배신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이기도 하다”면서 “박 대통령은 유승민 파동을 계기로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TK에서만큼은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자 했고, 이것이 물갈이론을 촉발시켰다. 그만큼 TK 물갈이론은 친박계의 총선 핵심 전략”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절대불가’를 외쳤던 전략공천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디테일’을 놓고 아직 협상이 끝나진 않았지만 오픈프라이머리를 고수하던 김 대표가 전략공천을 일정 부분 수용했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따라서 친박 핵심부로선 TK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 ‘진박(진실한 사람+친박)’을 꽂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데 정작 내부에서 이에 대한 비토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왼쪽부터 서청원 최고위원, 최경환 경제부총리, 윤상현 의원
이를 놓고 정치 전문가들은 총선이 가까워지자 친박 실세들 간 주도권 싸움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선캠프 출신의 친박계 원로인사는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등 핵심 친박들과 청와대 참모들이 저마다의 정치적 셈법으로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겐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부턴 TK 지역에서 물갈이 대상 및 낙하산 인사 명단이 복수로 나돌아 다니고 있는데, 이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관측되고 있다. <일요신문>이 확보한 명단은 그동안 여의도를 중심으로 퍼졌던 것과는 상이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공천 유력 리스트에 청와대가 밀고 있다는 인사들 이름이 없다는 것이었다.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대구 서구), 곽상도 전 민정수석(달성), 이재만 전 동구청장(동을) 등, 이른바 ‘진박’ 후보들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그동안 나왔던 물갈이 대상이나 후보 명단 모두 실체는 애매모호했다. 박 대통령 이름을 일방적으로 팔고 다니는 후보들도 있었다. 이번에 돌고 있는 것 역시 자가발전이거나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친박 핵심부는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지만 의원들 동향을 일일이 파악하는 등 집안 단속에 나선 모습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직접 구상한 것으로 알려진 TK 물갈이에 대한 비토 움직임에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의 친박 원로 인사는 “포스트 박근혜를 놓고 핵심 인사들 간에 싸움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계파는 분화와 통합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시기가 좋지 않다. 지금은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똘똘 뭉쳐야할 때다. 일단은 하나가 돼서 총선을 치르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