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날갯짓’에 양쪽 진영 들썩들썩
▲ 지난 2004년 5월 열린우리당 신임원내대표 선출투표에 참석한 정동영(왼쪽) 김근태 전 장관. 오는 2월 전당대회를 앞둔 이들은 ‘유시민 입각 파문’을 두고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 ||
하지만 실제 이번 파문이 마무리됐다고 보는 여권 인사는 거의 없는 듯하다. 오히려 언제든지 다시 용암을 분출할 수 있는 휴화산 상태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여권 내 계파 간 갈등의 골은 이번 일로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 대다수의 지적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차기 당 의장을 선출하는 2·18 전당대회를 앞두고 불거진 이번 파문으로 인해 당내 역학구도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당 의장 경선에 나서는 양대 계파인 정동영(DY)계와 김근태(GT)계의 ‘파워 게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유시민 파문은 향후 전당대회 판세에 어떤 변수로 다가오게 될까. 아울러 당 안팎에서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정계개편과는 대체 어떤 함수 관계를 맺고 있을까.
열린우리당은 지난 2004년 4월 총선에서 과반 의석(1백51석)을 차지하며 ‘여대야소’를 이뤘다. 하지만 여당의 축제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십인십색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파열음이 일었기 때문이다. 16대 국회가 개원하면서부터 당 정체성 문제를 놓고 ‘실용-개혁주의’로 양분돼 소속 의원들 간에 불협화음이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정가에선 우스갯소리로 “열린우리당에는 1백51개의 정당이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여당 의원 개개인이 당론과 무관하게 독자적 행보를 걷고 있다는 곱지 않은 표현이었다.
특히 유시민 의원을 비롯한 개혁당 출신 의원이나 당직자들의 강한 개혁 성향은 비(非)개혁당 출신들과 곳곳에서 마찰을 빚었다. 이는 2003년 말 여당의 창당 초기부터 불거진 ‘개혁당 대 비개혁당 출신’의 태생적 갈등의 연장선이었다.
당 일각에선 개혁당 출신을 겨냥해 “유빠부대(유시민 오빠부대)는 불만만 털어놓지 말고 당이 싫으면 당을 떠나라”는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개혁당 출신 그룹인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 소속 의원들은 의원들대로 당 개혁 등을 강하게 요구하며 맞서 ‘내전’이 끊이질 않았던 게 사실이다.
중도성향인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그것(실용-개혁 논쟁)이 어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냐”고 반문하면서 “긍정적으로 보면 당이 살아서 꿈틀댄다고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은 최근에도 또 한 차례 내홍을 겪었다. 2005년 12월26일 국회의원·중앙위원 워크숍을 열어 당헌·당규 개정과 전당대회 개최 방식 등에 대해 논의한 자리에서였다. 오는 2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당 의장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동영(DY)계에 맞서 김근태(GT)계와 유 의원이 소속된 참정연이 공동 전선을 폈다. 당시 워크숍은 결국 DY계는 ‘울고’ GT계-참정연이 ‘웃는’ 모양새로 마무리됐다.
▲ 유시민 복지장관 내정자 | ||
여권에선 유 의원 지명 파문을 계기로 소속의원 1백44명의 ‘성향’이 대부분 노출됐다고 보고 있다. 유 의원의 장관 입각에 대해 반대하거나 부정적 입장을 표출한 계파는 당내 최대 계파인 DY계와 김영춘·이종걸·문병호 의원 등 초·재선 그룹, 그리고 중도성향인 안영근·조배숙 의원 등이다.
반면 GT계와 유 의원과 같은 개혁당 출신인 이광철·유기홍 의원 등 참정연, 친노(親盧) 직계그룹인 이광재·백원우·이화영 의원 등 ‘의정연구센터’(의정연) 등이 유 의원의 장관 내정에 찬성하는 입장에 섰다.
그러면서 당 내 계파별 역학구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차기 대권주자인 DY계와 GT계는 애초부터 경쟁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번 유 의원 입각 파문에서도 여지없이 라이벌 관계임을 입증했다. 더군다나 2월 전당대회에서 일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어서인지 각 계파는 더욱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DY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의정연측은 상호 비난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DY계가 노무현 대통령의 장관 임명권에 대해 항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를 비난하고 나섰던 것.
드러난 점만 보면 유 의원 입각 반대 움직임은 특정 계파와 무관하게 전개됐다. 그럼에도 의정연 의원들은 이번 파문을 정동영계의 ‘작업’으로 보고 있다. “2007년 여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 의원의 참정연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해 유 의원의 입각을 반대했다”는 것. 심지어 지난 12월26일 워크숍에서 참정연이 DY계의 최대 라이벌인 GT계와 연대했던 것에 대한 ‘복수극’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에 비해 GT계와 참정연의 우호 관계는 더욱 강화됐다. GT계와 참정연은 한때 치열했던 실용-개혁 논쟁에서도 ‘개혁’ 노선을 공동으로 견지해왔다. 반면 DY계와 의정연 등은 실용주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번 파문을 계기로 의정연이 유 의원의 참정연이나 GT계와 우호적인 관계로 변하면서 2월 전당대회 결과도 예측불허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여당의 한 당직자는 “그동안 2월 전대에서 DY가 당 의장으로 선출될 것이라는 견해가 당 안팎에서 우세하게 점쳐졌다”며 “그러나 유 의원 입각 파문으로 GT계의 세가 확대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로선 전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의정연 소속으로 전당대회 후보인 김혁규 의원과 DY측의 연대도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DY계는 여당의 전당대회는 대의원 1인2표제인 까닭에 ‘DY-김혁규’ 연대도 고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 파문으로 두 후보의 ‘비공식’ 러닝메이트는 불가능해졌다는 것.
유시민 파문으로 날이 선 여당 내 계파 간 전선은 향후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특히 민주당과의 합당 문제에서도 DY-GT 진영 등이 적잖은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노 대통령은 민주당과의 합당에 대해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유 의원을 비롯한 개혁성향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참정연 소속 한 의원은 “민주당과의 합당은 구시대 정치와의 타협을 의미하며 그렇게 된다면 분당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참정연은 그동안 민주당과의 합당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방해왔다. 여기에 친노직계인 의정연 역시 결국 노 대통령의 의중에 따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따라서 오는 5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어떤 성적표를 받느냐에 따라 또 하나의 ‘내전’이 잠재돼 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여당이 참패할 경우엔 당연히 당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과 함께 민주당 등 야당과의 통합론이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상당수 여당 의원들은 2005년 10월 재선거에서 완패했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각 선거구에 거주하는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특히 호남에 지역구를 둔 염동연 의원 등 몇몇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민주당과의 합당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호남 출신인 DY 역시 민주당과의 합당에 대해선 긍정적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DY는 지난 1일 당뇨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중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병실을 방문해서 “77세의 고령으로 중병을 앓고 있는데 인도적 배려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리고 2박3일 일정으로 전남 장성의 백양사에 머무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DY가 호남민심 잡기에 본격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주당과의 합당에 대한 그의 스탠스를 재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유시민 파문은 당·청 간의 갈등뿐 아니라 당내 계파 간의 갈등도 심화시켰다”면서 “당장 당이 핵분열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이번에 드러났듯이 계파간 시각 차이가 워낙 크고, 최소한의 신뢰관계마저 깨진 만큼 향후 전당대회와 지방선거를 계기로 분당과 정계개편 등 더 거대한 후폭풍이 이어질 개연성도 적지 않다”고 전망했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