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6월4일 열린 폴란드전에서 감격스런 첫골을 넣은 황선홍과 선수들이 박항서 코치(맨 오른쪽 김현태 코치에 가려 다리만 보임) 에게 달려가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이 포옹을 언짢아했다고 한다. | ||
‘한국인 코치 3인방’으로 불린 박항서(포항), 정해성(전남), 김현태(LG) 코치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뷰를 통해 ‘그때 그 순간’을 회상하고 감동을 재현하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 속에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월드컵 기간 동안엔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버려 안 좋은 기억을 끄집어내기 힘들었지만 되돌아보면 송곳처럼 남아 있는 아린 추억이 있게 마련이다. 현재 모두 프로팀 코치로 활동중인 월드컵 코치 3인방에게 월드컵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벌어졌던 대표팀 내부의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들어본다.
포항 스틸러스의 박항서 코치는 월드컵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이 첫 골을 성공시킨 후 히딩크 감독이 아닌 자신과 포옹을 하는 바람에 겪은 후유증을 토로했다.
“개인적으론 너무 기분 좋았다. 경기 전날 선홍이가 나와 한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이 흥분을 넘어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후 곤혹스런 일을 겪어야 했다. 언론의 가십거리가 됐고 히딩크 감독도 좀 언짢아하는 눈치였다. 수석코치란 위치에서 자중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박 코치는 월드컵 때 동고동락했던 선수들보다 월드컵 대표팀에 들지 못한 이동국, 고종수, 골키퍼 김용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 선수들한테 정말 미안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만약 그들이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었더라면 지금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대표팀의 ‘군기반장’으로 불렸던 정해성 코치는 현재 소속된 전남팀에서도 이회택 감독보다 더 무서운 ‘시어머니’로 통한다.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가끔씩 선수들을 호되게 야단치는 스타일인데 히딩크 감독 부임 초기에는 정서 차이로 의견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단다.
▲ 왼쪽부터 박항서, 정해성, 김현태 | ||
정신상태가 썩었다며 거의 한 대 때릴 듯한 기세였다. 당시 주장이었던 강철이 날 말리며 ‘제가 얘기할 테니 참으시라’고 해서 사태가 마무리됐는데 그 광경을 목격한 히딩크 감독이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다.”
처음에 히딩크 감독은 정해성 코치의 행동을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부드러운 이미지로 대표팀을 끌고가려 했던 계획이 정 코치의 ‘난동’으로 백지화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서야 한국선수 특유의 분위기를 파악한 뒤로는 가끔 기강이 해이해졌다 싶으면 선수들을 정 코치에게 맡겨놓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줬다고 한다.
골키퍼 코치인 김현태 코치는 박항서 코치와 정해성 코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 속에서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나이 차이가 1년밖에 나지 않았고 워낙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라 두 사람 눈치 보느라 급급했다. 위기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히딩크 감독의 노련한 용병술 탓에 두 사람의 신경전은 의외로 날카로웠다.”
예를 들면 이렇다. 히딩크 감독이 박 코치와 어깨동무하며 친근감을 과시하면 정 코치가 은근히 기분 나빠했다. 이를 간파한 히딩크 감독은 다음날 정 코치를 챙기며 이것저것 신경을 써주는 등의 행동으로 이번엔 박 코치를 자극시킨다. 라이벌 의식을 이용해 적당한 긴장과 동기 유발을 꾀하며 자신의 스타일대로 따라오게끔 만들었던 것.
“감독 입장에선 두 코치 모두 필요한 스타일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그들을 모두 안고 가는 방법을 잘 활용했다. 그는 심리학의 대가였다. 선수들과 스태프들, 심지어는 버스기사마저도 자기 방식대로 끌고 나가는 힘이 있었다.”
김 코치도 골키퍼 운영과 관련해서 히딩크 감독과 의견 충돌을 빚고 폭발 직전까지 갈 뻔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병 주고 약 주기 작전’에 의해 결국엔 백기를 들고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