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작전모의…아군들도 부글부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경기도 연천 전방부대 소초를 방문, 장병의 피복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은 매주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지난해 총 48번 그 결과를 발표했는데, 통계를 내보니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 거의 1년 내내 같은 대답이 1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바로 ‘소통 미흡’으로 무려 36번이나 1위를 기록했다. ‘성완종 리스트’, 메르스 사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등 굵직굵직한 현안이 발생했을 때를 제외하곤 사실상 독보적인 1위였다. 이는 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일방적으로 하고 있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박혀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연말 여의도에서 열린 친박 관계자들의 한 송년회에서도 이러한 지적이 봇물을 이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을 향한 맹목적 로열티를 갖고 있다는 친박 모임에서의 이러한 장면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는 박 대통령 임기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힘이 빠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누적된 불만이 많다는 얘기다. 당시 참석했던 전직 의원의 귀띔이다.
“처음엔 조심했지만 점점 수위 높은 발언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려면 이제라도 국회와 적극적으로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마이웨이’식 통치를 할 경우 레임덕에 빠질 수밖에 없는 박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그보다 더 심한 내용도 있었지만 공개할 순 없다.”
친박 내에서조차 이러한 기류가 돌고 있는 것은 총선 공천 룰 협의 과정에서 나타난 청와대의 독주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의원들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고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몇몇 친박 핵심부가 독점하다보니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여권 안팎에선 박 대통령 ‘오더’를 받은 특정 친박 의원과 청와대 참모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의 공천 룰 협상을 주도했다는 게 중론이다. 대구·경북을 들썩거리게 했던 ‘TK 물갈이론’ 역시 이들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친박 전직 의원은 “친박계가 김무성 대표와 계속 대립각을 세워왔는데 어느새 (공천 룰) 합의를 했다더라. 사전에 전혀 몰랐다. 비밀 유지도 좋지만 적어도 ‘아군’에게는 말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 친박 내에서도 어느 게 진짜 우리 입장인지 혼란스러워했다”면서 “여권 주류마저도 이런 상황인데 국민들 입장에선 얼마나 답답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사실 박 대통령의 불통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88년 정치권 입문 후 2004년 당 대표, 2007년 당내 경선, 2012년 비상대책위원장 및 대선후보 등을 거치면서 여러 번 제기됐던 문제다. 즉, 박 대통령 정치 스타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상대 진영 또는 반대 여론과의 타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평가와 관련해 ‘비선’에 의한 의사결정을 그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특정 측근들로부터 올라오는 보고만 주로 받다 보니 폭 넓은 의견 수렴이 힘들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공식라인보다는 비선을 선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의원 때야 큰 상관이 없겠지만 대선후보, 더 나아가 대통령까지 됐는데 비선을 활용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중에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고…. 문제가 되면 박 대통령에게로 비난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무슨 사건만 터졌다하면 ‘박 대통령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 않느냐. 특히 역대 정권 비선 조직이 그랬던 것처럼 비리 사건에 연루될 경우 남은 임기 동안 대형 게이트가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끊이지 않은 ‘인사 참사’는 비선 중시 통치의 부작용이라는 지적이다. 인사가 발표될 때마다 ‘밀봉인사’ ‘깜깜이인사’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는데 이는 보안이 잘 지켜졌다기보다는 그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청와대 내 인사위원회가 존재하지만 주요 보직은 박 대통령 핵심 참모들이 개입해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는 자연스레 좁은 인재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21일 단행된 개각에서 경제부총리 후보로 막판까지 여러 명의 후보자를 저울질하다 결국은 유일호 의원을 내정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유 의원은 11월 국토교통부 장관에서 물러난 후 총선 준비에 ‘올인’하고 있었다. 유 의원 내정 소식 이후 야당 의원들은 ‘주먹구구식 인사’ ‘돌려막기식 인사’라고 입을 모았다.
박 대통령에게 남은 임기는 이제 2년뿐이다. 총선이 끝나면 레임덕과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는 “레임덕은 없다”며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원칙을 중시하다 보니 불통 소리도 나오는 것이다”며 “개혁을 지지하는 분들도 많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선 욕을 먹더라도 반드시 해야 될 일이다. 선거와는 상관없이 국정을 뚝심 있게 운영하겠다는 게 박 대통령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지금 박 대통령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소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윽박정치’를 고수할 경우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핵심 친박은 고립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이 (선거와 무관하게) 국정만 펼친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 공천 룰 협상을 누가 주도했느냐. 또 배신의 정치, 진박 운운하며 총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던 것은 누구냐”면서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를 상대로 나무라는 식의 말은 그만하고 이제 타협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