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살인마의 내연녀가 아니다”
범행에 사용된 이 씨의 차량. 창문과 문에 혈흔이 묻어 있었고, 와이퍼 손잡이가 부서져 있었다.
지난해 12월 29일, 기자와 만난 유미자 씨(여·58)는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설명했다. 수사, 기소, 재판에 걸친 형사 소송 절차는 물론, 증거와 필적 감정에 대해서도 전문가 수준이었다. 6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 지친 내색을 보였지만 그는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평범한 주부였던 유 씨는 딸을 잃었다. 이름은 황인희. 사망 당시 나이는 만 22살이었다. 황 씨는 세 자매 중 맏딸이었다. 취업이 쉽지 않았던 지난 2003년 8월,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A회사에 학교 추천으로 조기 채용됐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막냇동생의 용돈과 생활비까지 보태주는 가족의 버팀목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였다. 2년 뒤, 그 행복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됐다. 시작은 직장에서 만나게 된 한 남자 때문이었다. 사랑을 나누던 남자친구도 아니었다. 그는 황 씨의 직장 상사였다. 인사과장(3급)이던 이 아무개 씨(당시 38)였다.
이 씨는 새로 입사한 황 씨와 겹치는 업무가 많았다. 함께 참석할 교육과 진행해야 할 업무가 늘었다. 처음 이 씨는 매우 친절했다고 한다. 당시 회사가 외진 곳에 있어 인근에는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았다. 이 씨는 야근이 있는 날이면 자동차가 없는 황 씨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줬고, 때로는 서울 집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씨의 호의를 이상하게 느끼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 씨는 황 씨의 사생활까지 간섭하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이후 회사 동료 등의 진술을 보면, 이 씨는 “이혼할 테니 나와 결혼해 달라”며 황 씨를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황 씨는 거절했다. 이 씨는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첫 번째 결혼에서 열두 살 딸을 얻었다. 이혼한 뒤 회사 사장 비서실 여직원과 재혼해서 다시 딸을 얻었는데, 당시 생후 7개월이었다. 이 씨와 재혼하면서 퇴사한 부인 자리에 새로 채용된 신입 직원이 바로 황 씨였다.
이 씨는 시간이 지나며 황 씨가 만나는 사람까지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황 씨가 이 씨를 의도적으로 피하자, 늦은 시간 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당시 황 씨의 절친한 친구였던 유 아무개 씨(여·당시 22)는 경찰 진술에서 “친구가 이 씨 때문에 회사까지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같은 시기 황 씨는 자신의 싸이월드에 “사는 게 너무 괴로움. 제발 나를 가만 내버려 두라고. 누가 날 좀 구해줘”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05년 5월 30일 밤, 악몽이 시작됐다. 황 씨는 이날 밤 10시까지 야근을 했다. 그리고 1년 후배인 동료 직원의 차를 타고 경기도 성남 분당 인근 전철역으로 갔다. 그런데 목적지에 내리자 그곳에서는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과장 이 씨였다. 동료 진술에 따르면, 황 씨가 당황해하는 사이 이 씨는 팔을 강제로 잡아 차로 끌고 갔다. 황 씨는 저항했고, 이를 본 남자 동료 직원도 이 씨에게 “밤도 늦었는데 내일 이야기하시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이 씨가 그 직원에게 “참견하지 말라”며 소리쳤다. 동료 직원은 “자꾸 이러면 회사에 보고하겠다”고 말했으나 황 씨를 태운 차는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황 씨의 어머니 유 씨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딸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야근을 하는 탓에 늦게 집에 온다던 딸은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았다. 뜬 눈으로 하루가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딸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유 씨는 강원도 원주경찰서로부터 딸의 사고 소식을 듣는다. 실종 48시간이 지나던 지난 2005년 6월 1일 밤 10시 30분이었다.
당시 경찰 보도자료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2005년 5월 31일 새벽 12시 30분경 발생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황 씨를 강제 납치한 이 씨는 이후 경기도 양평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 씨를 살해한 뒤 인근으로 옮겨 풀과 나무 등으로 가려 유기했다. 이 씨는 하루 뒤인 6월 1일 경찰서에 스스로 나타나 자수했다.
이후 사건은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경찰은 이 사건을 ‘내연 관계에 의한 치정 사건’으로 보고 즉각 검찰에 송치했다. 두 딸을 둔 유부남과 미혼 여성이 내연 관계로 불륜을 벌이다가 다툼이 벌어진 끝에 우발적으로 살인이 일어났다고 판단한 것. 이 씨는 살인 및 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에서 15년 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과 이 씨 측 변호인이 각각 항소해 2심이 열렸고, 이 씨는 12년 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이 형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하지만 앞서의 황 씨의 어머니 유 씨는 딸이 이 씨와 내연관계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석연치 않은 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5개월 뒤인 지난 2005년 11월, 유 씨는 실제로 경찰 수사의 허점들을 밝혀냈다. 유 씨는 “경찰 수사가 처음부터 ‘내연관계’로 몰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 씨는 그 근거로 가해자 이 씨의 경찰 진술을 먼저 꼽았다. 이 씨는 자수한 뒤 최초 경찰 조사에서 숨진 황 씨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직장 동료 사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6월 2일, 담당 경찰이 작성한 ‘피해자에 대한 관계 수사 보고’를 보면 ‘피의자는 동료 사이였다고 주장하나, 내연의 관계임을 추궁하여 밝힐 예정임’이라고 보고했다.
또한 수사 기록마다 ‘내연관계’ 기간이 각각 달랐다. 경찰은 수사기록과 부검의뢰서, 변사사건 발생보고 지휘건의서 등에서 각각 ‘내연의 관계 8개월’ ‘9개월가량 사귀며’ ‘내연의 관계 10개월 지내오다’ 등으로 기록했다. 유 씨는 “같은 수사팀에서 단순한 직장동료 사이가 내연관계로 바뀌고 기간도 8개월부터 10개월까지 문서마다 다르게 작성돼 있었다”고 말했다.
발견된 시신과 사망 경위도 의문 투성이었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왼쪽 다리를 베고 누워있었다” “잠들어 있는 피해자의 목을 넥타이로 졸라 숨지게 했다”고 발표했다. 유 씨는 “딸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어떻게 가해자의 왼쪽 다리를 베고 누울 수 있느냐”며 “강제로 납치된 상황에서 잠들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숨진 황 씨의 모습은 경찰 발표와 달리 처참했다. 입고 있던 흰 색 가디건은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고, 속옷 상의 끈은 풀려있었다. 치마는 하의 속옷이 드러날 만큼 말려 올라가 있었으며 온몸에서 외부 힘에 의한 상처들이 발견됐다. 좌우측 허벅지 안쪽에는 강제로 눌린 듯한 피하 출혈도 형성됐다. 손톱도 모두 부러져있었으며, 오른쪽 얼굴, 입술, 왼쪽 눈 아래 부위, 왼쪽 귀 뒤쪽에서 피가 흘러내려 머리카락이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하지만 당시 수사기록을 보면, 시신에서 정액이 발견되지 않아 성폭행에 대해서는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가해자 이 씨는 황 씨가 단순히 직장동료라고 진술했다. 담당 경찰은 내연관계로 표기한 것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2심 재판에서는 ‘조작 메모’까지 등장했다. 원주지법 판사 출신의 이 씨 측 변호를 맡았던 이 아무개 변호사는 재판부에 “황 씨가 이 씨에게 보낸 메모”라면서 증거물을 제출했다. ‘감사하세요’라는 제목의 시 였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와 같았다. 하지만 유 씨는 이 메모를 보는 순간 낯익은 필체가 떠올랐다고 한다. 유 씨는 “이 씨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보낸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딸이 쓴 것이라며 제출 된 메모 속의 글씨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2심 재판에서 이 씨 변호인 측이 제출한 사랑 고백 내용의 ‘위조’ 메모.
2심 재판에서 마지막 목격자인 회사 동료 고 아무개 씨(당시 32)의 위증도 밝혀냈다. 고 씨는 증인으로 재판장에 서서 ‘둘은(황 씨와 이 씨) 내연 관계였고, 자신은 황 씨와 친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유 씨는 고 씨가 새로 발령 받은 전남 곡성까지 찾아가 “제발 진실을 밝혀 달라”고 사정했고, 고 씨는 자신의 증언이 거짓임을 시인했다. 그는 지난 2007년 위증죄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유 씨는 “가해자 이 씨의 동료 직원들이 사건 당일 이 씨의 행적이 이상했다고 진술한 것도 재판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료 진술에 따르면 이 씨는 이날 회사 전산 시스템에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업무 파일 등을 다른 직원들에게 넘겨줬다. 이상하게 여긴 직원이 “왜 그러냐”고 묻자 “오늘 10시면 다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에선 이 씨가 화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판단됐다.
유 씨는 가해자 이 씨에 대해 “‘성폭력 특별법’을 적용해 추가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사건은 단순 치정 살인이 아닌 사내 성희롱, 스토킹, 성폭행에 이은 살인”이라며 검찰에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성폭력 특별법이 개정된 이후 법원의 판결을 보면 성폭행에 의한 살인, 사체 유기의 경우 최소 20년에서 무기징역으로 무거운 형을 선고하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A회사 석연찮은 행동들 이씨 자수 전 ‘해고’ 이틀 뒤 ‘면직’…범행 미리 알고 있었나 유 씨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A회사 측의 움직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유 씨는 “마지막 목격자인 고 씨는 황 씨가 이 씨에게 강제로 끌려갔다고 회사에 보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부서의 팀장은 가족에게 즉각 연락하지 않고 이상한 질문만 했다”고 말했다. A회사는 이 씨가 자수한 당일, 시간 상으론 자수 이전 그를 해고했다. 회사는 이틀 뒤 이를 번복하고 면직 처분했다. 40분 뒤인 9시 15시께, 해당 팀장은 다시 집으로 전화를 걸어 황 씨의 연락이 가능한 다른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다시 5분 후에는 “조금 전에 알려준 번호를 다시 가르쳐 달라”는 내용의 전화를 한다. 네 번째 전화는 이날 오후 6시께 왔다. 그때 팀장은 “인사과장이 데리고 갔다. 실종신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사실을 알려줬다. 그런데 더 석연치 않은 점은 경찰이 유 씨에게 딸의 사고 소식을 알려준 지난 2005년 6월 1일 밤 10시 30분 이전에, 4명의 남자가 원주경찰서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A회사의 임직원이었다. 이 씨가 자수한 시각은 그날 저녁 6시 30분께다. 경찰은 그로부터 30분 후인 7시께, 유족보다 먼저 이 씨의 회사에 자수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 고위직 임직원은 유가족이 도착하기 2시간 전인 저녁 8시 30분경 경찰서를 방문해 이 씨와 면담을 했다. 이 씨의 퇴직 과정도 석연치 않다. 이 씨가 자수한 당일인 6월 1일, A회사는 이 씨를 해고한다. 유 씨가 입수한 이 씨의 인사기록카드를 보면 회사 측은 이 씨가 자수하기 이전,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에 해고했다. 그리고 이틀 뒤, 이를 번복하고 특별인사조치로 이 씨가 스스로 사표를 제출하는 ‘면직 처분’으로 변경했다. 당시 회사 측은 “회사에 공로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유 씨는 “해고명령을 보면 사장 직인까지 들어가 있었다. 이 씨는 회사 일과 시간 이후에 자수했다. 회사는 이 씨의 범죄 행위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A회사 측은 현재까지 공식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사건 발생 8년 뒤인 지난 2013년 ‘위로금 지급 합의서(안)’을 유 씨에게 내밀었지만, 단서가 붙어 있었다.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 당사자 이외에 제3자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조건으로 1억 원을 주겠다고 했다. 유 씨는 “돈을 원해서 긴 시간 싸워온 것이 아니다. 회사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회사는 사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10년간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단 한 차례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회사 측은 <일요신문>에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며 “돌아오면 전화 하겠다”고 말했지만 이후 연락은 없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