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잘 보내셨나요? 전 영어 선생님이 독일에서 공수해온 송편을 얻어먹는 걸로 추석을 대신했습니다. 부모님도 안 계시고 한국 사람도 거의 없는 이곳에서 명절을 느끼기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송편을 먹다보니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꽉 차오르더군요. 특히 어머니께서 수술을 받고 요양중이시라 마음이 더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서 축구를 한다는 어느 팬이 이런 걸 물어보더라고요. 유럽의 훈련 프로그램과 한국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전 비교할 만한 자격이 못돼요. 한국의 프로팀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죠. 일본에서부터 프로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인데 일본은 대부분 유럽의 축구 시스템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 지금 제가 있는 네덜란드의 훈련 프로그램과 큰 차이가 없어요.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훈련하는 횟수죠. 이곳은 게임이 많아서 그런지 연습량이 적어요. 따라서 놀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놀면서 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죠. 그러나 프로 선수가 ‘무대뽀’식의 여흥을 즐기기란 어려운 일이에요. 정신없이 놀다보면 ‘방’을 빼야 하는 설움을 겪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저한테는 이곳 시스템이 잘 맞는 것 같아요. 특히 히딩크 감독의 훈련 방식이 월드컵 때 했던 내용들과 한치의 오차(?) 없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수월했는지도 몰라요.
후회되는 일이라면 학교 다닐 때 공부 안하고 축구만 하는 생활에 너무 만족한(?) 나머지 영어공부를 소홀히 했던 사실입니다. 어렸을 때만 해도 제가 해외에서 뛰게 될 거라곤 상상조차 안해봤거든요. 만약 그때 외국에 나갈 줄 알았더라면 영어책만은 품고 다녔을 거예요.
프로팀 입단을 목표로 뛰는 후배들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기량 향상 외에 반드시 외국어 공부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겁니다. 영어의 필요성을 간과했던 제가 지금 이곳에서 겪는 고통은 여러분들이 상상을 못할 정도예요. 특히 네덜란드어는 제 인내의 한계와 아이큐를 테스트하는 심정으로 배우는 중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가 네덜란드어가 아닐까 싶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가끔은 히딩크 감독이 존경스러울 때가 있어요.
독일에서 생활하는 (차)두리와 가끔 전화통화를 하는데 동료들과 말이 통한다는, 더욱이 독일인 친구들과 재미있게 생활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땐 부러움의 극치를 달립니다.
다음주(한국시간으로 9월18일 새벽)부턴 챔피언스리그가 개막됩니다. 네덜란드 리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벌써부터 긴장감이 감도네요. 출전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월드컵 이상의 기대와 목표를 가지고 에인트호벤팀에서 박지성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도록 제대로 한번 뛰어보겠습니다. 많은 응원 보내주세요. 9월13일 에인트호벤에서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