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끼’ 사냥 전 ‘집토끼’ 단속부터…
왼쪽부터 김무성, 문재인, 안철수.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총선 승리의 셈법은 부지기수다. 다만 적어도 역대 선거의 승패를 가른 ‘고정적 요건’과 시대흐름에 따른 ‘가변적인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고정적 요건은 △강력한 차기 대권후보로서의 입장 강화(전국적인 선거 영향력) △결속력 강한 전국적 지지층 △프레임 선점을 위한 시대 깃발 △친위부대의 존재나 반대편을 안을 수 있는 포용적 리더십 등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DJ(김대중 전 대통령)가 그랬다.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YS와 DJ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스스로 차기 대권후보로 존재했다. 각각 영남과 호남이라는 탄탄한 지역 기반도 있었다. 과거 군부 독재정권 땐 민주화와 세대교체 등으로 난국을 정면 돌파했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라는 강력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박 대통령도 ‘콘크리트 지지율’을 앞세워 강력한 차기 대권후보로 존재했다. 영남을 비롯해 전국적인 고정 지지층이 있었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시대 깃발로 내세워 중도층을 공략했다. 한때 친박연대라는 정당이 만들어질 정도로 강력한 친박(친박근혜)계가 박 대통령을 에워쌌다.
총선 승리의 가변적 요소는 시대상황에 따라 다르다. 199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최초의 문민정부 출범이었다. 88 서울올림픽 이후 국제화·선진국 등의 새로운 패러다임도 시대정신으로 등장했다. YS는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을 통해 자신의 약점인 영남표 통합 및 중원 선점으로 이른바 밴드왜건(대세 후보 쪽으로 투표자가 쏠리는 현상)의 수혜자가 됐다.
1997년 대선은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지원에 따른 외환위기 극복이 최대 과제였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슬로건을 내세운 DJ는 호남의 절대적 지지와 함께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로 충청권 공략에 성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8대 대선 두 달여를 앞둔 2012년 10월 25일 선진통일당을 전격 통합, 명실상부한 범보수연합체를 구성했다. 2012년 대선이 ‘범보수 vs 범진보’의 대결로 흐른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제20대 총선의 가변적 요건은 안철수 발 탈당으로 선거의 핵심 변수로 격상한 중도·무당파와 인구구성비 변화로 중요성이 한층 부각된 50대 공략이다. 고정적 요소와 가변적 요소를 소위 ‘곱셈의 정치’로 만드는 자는 차기 대권으로 직행한다. ‘덧셈의 정치’를 한 자는 패자부활전을 가질 수 있다. ‘뺄셈의 정치’로 귀결된 자는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게 된다.
“전통적인 보수층을 온전히 안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권 관계자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최대 약점에 대해 던진 말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 대표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은 정당 지지율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영남권 인사지만, 영남권에서조차 그는 차기 대선주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지난 12월 2주차 차기 대권주자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를 보면, 김 대표는 부산·경남·울산에서 21%, 대구·경북에서 28%를 기록했다. 서울과 경기·인천에선 각각 13%였다.
전체 지지율은 15%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12%)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지만, 대세론을 형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문재인 대표는 서울(15%), 경기·인천(13%), 부산·경남·울산(17%), 대구·경북(14%) 등을 기록했다. 새누리당은 부산·경남·울산과 대구·경북에서 48%와 55%의 지지율을 보였다. 서울과 경기·인천에선 43%와 39%로, 김 대표 개인 지지율을 훌쩍 넘었다. 집권여당 대표가 전국적인 선거 영향력은 물론, 결속력 강한 지지층 결집을 전혀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김 대표의 더 큰 문제는 ‘시대 깃발이 없다’는 점이다. 2014년 10월 중국 방문 당시 이원집정부제를 골자로 하는 상하이 발 개헌 태풍을 몰고 오면서 프레임 선점을 위한 시대 깃발을 꽂는가 싶더니, 박 대통령이 강하게 반발하자 이내 꼬리를 내리며 로키(Low-key·저자세)로 일관했다. 김무성 체제가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본격화한 것도 이때부터다.
강력한 친위부대도 없다. 당내 70여 명의 비박(비박근혜)계가 존재하나, 김 대표가 구심점은 아니다. 결속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 대표가 ‘헤쳐 모여’ 한마디로 이들을 단일대오로 이끌 수 없다는 얘기다. 탈이념화 현상으로 선거 변수로 격상한 중도·무당파 공략은 더더군다나 어렵다. 김 대표는 노동개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노조 때리기’에 앞장서면서 ‘강성 보수 덫’에 걸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정치적 이슈 때마다 청와대 보조 맞추기에 급급하다 보니까, 김무성식 정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연일 ‘총선 180석’을 외치는 김 대표의 주된 얘기는 ‘통합과 화합’이다. 박 대통령의 국민대통합론의 연장선상이다. 김무성식 정치도, 새로운 정치혁신도, 대한민국의 새판 짜기도 사실상 없는 셈이다. 야권 한 관계자는 “김무성호가 2014년 7·14 전당대회 이후 재·보궐 선거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전국적인 선거인 총선은 상황이 다를 것”이라며 “이번 총선은 김무성식 리더십을 평가받는 첫 시험대”라고 평가했다.
반면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점, ‘2인자 없는’ 박 대통령 특유의 리더십으로 여권 내 눈에 띄는 대권주자가 전무하다는 점, 야권 분열에 따른 일여다야 구도 등은 김 대표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표도 김 대표와 사정은 비슷하다. 통상적으로 대세론의 지지율은 35%다. 최소 25%, 최대 45% 사이를 오가야 한다. 박 대통령이 그랬다. 그러나 문 대표의 지지율은 10%대 초반∼20%대 초반이다. 전국적인 선거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한 ‘친노(친노무현)계’라는 강력한 지지층은 있다. 당내 강력한 친문그룹도 존재한다.
문제는 ‘외연 확장’이다. 친노 패권주의에 반발한 비노(비노무현)계의 탈당 러시는 시작됐다. 야권의 텃밭 광주는 무너진 지 이미 오래다. 동교동계도 등졌다. 적을 안을 수 있는 포용적 리더십을 잃어버렸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갤럽의 지난해 12월 2주차 조사에서 문 대표의 광주·전라 지지율은 12%에 불과했다. 박원순 서울시장(25%)의 절반, 안철수 의원(18%)의 3분의 2 수준에 그쳤다.
비주류 한 관계자는 “더민주는 친노의 사당으로 전락했다. 호남이 버린 제1야당 대표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번 총선은 야권 발 정계개편을 넘어 여야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일 정치혁신을 주창하는 문 대표의 시대정신도 공허하다. 친노계로 총집중된 당내 권한의 창조적 파괴가 없는 한, 문 대표의 혁신 주장은 정치적 레토릭(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경우 탈이념화·탈정당화 경향성을 띤 중도·무당파 공략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안철수 의원의 최대 약점은 지지층의 결속력 약화다. ‘안철수 현상’과 ‘개인 안철수’는 다르듯이,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을 가진 중도·무당층은 언제든지 제3후보를 쫓아 안 의원을 떠날 수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20%에 육박하는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이 거품일 수 있다는 의미다. 친노계 한 의원은 “(새정치라는) 언어유희가 아니라 실천을 보여줘야 할 때”라며 “국민적 공감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 신당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힐난했다.
그러나 20대 총선의 가변적 요소는 ‘김·문’보다 우위에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또한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새정치’라는 프레임 선점을 위한 시대 깃발은 가지고 있다. 정치판을 ‘기성정치 vs 새정치’, ‘구태 vs 혁신’으로 강력한 전선을 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충성도가 강한 친위부대가 없는 데다, 안철수 신당 자체도 아직은 신기루에 불과해 차기 총·대선을 돌파해낼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다. ‘김·문·안’ 삼국지의 결전은 불과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자신의 강점 극대화, 약점 보완재 찾기’, 이 두 가지 퍼즐 맞추기에 따라 총선 삼각 축의 승부가 결정 날 것으로 보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