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근절 내세워 군기 잡기 나서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했다. 원 안 사진은 청와대 건물(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사진제공=청와대
이번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 기업은 총 19곳이다. 이 중 C등급 11개 회사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하고, D등급인 나머지는 정리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업종별로는 철강이 3개사로 가장 많았고 조선·기계제조·음식료(각 2개사), 건설·전자·석유화학·자동차·골프장(각 1개사) 순이었다. 2015년 상반기 평가에서 선정된 35곳을 합하면 지난해 총 54개 회사가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셈이다. 이는 2014년에 비해 20개 늘어난 것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10년(65개) 이후 최대 규모다.
금융당국 주변에선 발표 직전까지 명단과 관련해 무수한 말들이 오갔다. 특정 기업들이 구조조정 명단에서 빠지기 위해 정치권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금융권 관계자들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유달리 민원이 많아 곤혹스러웠다고 들었다. 구조조정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 무조건 빼달라는 것이었다”며 “경제가 아니라 정치 논리에 의해 (명단 작성이) 이뤄질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귀띔했다.
금융권과 정치권에선 중견기업 A 사 사례가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당초 C등급으로 분류됐지만 발표 전 빠졌다는 게 그 골자다. 대기업 계열인 B 사 역시 마찬가지다. A·B 사는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 적용 대상인 23개사에 속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구조조정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업체 중 증자·자본유치·계열사지원·자산매각 등 자구계획이 진행 중인 회사에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제도다. 그런데 A 사와 B 사의 경우 해당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포함됐다는 것이다.
금감원 측이 23개사에 대해 자구계획 이행실적을 점검·관리할 것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에서는 반신반의하는 기류가 여전하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고위 인사는 “결과를 접하고 솔직히 의구심이 들었다”고 운을 떼며 “23개사와 C등급에 속한 회사들 간 차이가 애매모호해 보였다. (23개사가) 운이 좋았다거나 특혜를 받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며 “정확한 기준에 따라 나누면 되지 굳이 C등급 외에 또 다른 등급을 만들어 이런 오해를 살 필요가 있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A 사와 B 사의 경우 금감원 발표 전부터 특정 정치인들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곳이다. 한 사설정보업체가 만들었던 정보지엔 정치인들 실명까지 거론됐다. 그리고 두 회사는 결국 C등급에서 빠졌다. 세간의 시선이 따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명단 발표 후에도 또 다른 정치인들 이름이 오르내렸는데 대부분 전·현직 여권 인사들이었다. 구조조정 대상이었던 기업들이 여권 정치인들을 통해 구명을 받으려 했던 것은 아니냐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구조조정 대상 기업 선정과 관련해 뒷말이 끊이지 않자 청와대가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후반기를 맞아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구조조정 성공 여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친박 핵심부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임기와 상관없이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선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됐다는 것 아니냐”면서 “여야를 떠나 압력을 행사한 정치인이 누군지, 진짜 압력이 있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한 박 대통령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올 한 해 사회 전반의 구조적·고질적인 비리들을 뿌리 뽑는 노력을 흔들림 없이 진행해 나가야 한다”면서 “정부가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세워서 추진해도, 현장에서 부정부패가 난무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결국 그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 세금이 잘못 쓰이는 분야를 중심으로 부패요인을 선제적으로 감시하고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구조조정 역시 적지 않은 혈세가 투입된다는 점에서 금융권, 그리고 정치권을 향한 청와대의 칼날은 매서울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또 다른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를 통해 정치권 군기를 잡으려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취임 후 ‘중수부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을 신설하며 권력형 비리 수사에 나선 것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비박계 의원은 “사정 드라이브의 최종 타깃은 정치권이기 마련인데 역대 정권에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해왔다”면서 “(기업 구조조정 명단과 관련해 이름이 거론된 정치인들이) 대부분 새누리당 의원들이라고 들었는데 향후 총선 공천에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