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26·삼성)의 ‘사부’ 박흥식 코치(41)는 4일 SK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끝난 뒤 가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승엽의 홈런 56호를 바라보는 상반된 심정을 솔직히 토로했다. 가장 아끼는 제자가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달성한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지만 그로 인해 삼성 선수단의 전체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움을 넘어 가슴이 아플 정도였던 것.
무려 20여 일 동안 전국을 56호 홈런 열풍으로 내몰았던 이승엽도 5일 SK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패한 뒤 “홈런 1개 때문에 잃은 것이 너무 많다. 팀 선후배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원인 중 한 가지로 56호 홈런을 꼽았다.
아시아 홈런 신기록 달성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채 곱씹기도 전에 삼성의 준플레이오프 탈락으로 홈런 열풍이 급격히 시들어버렸지만 이승엽의 1호 홈런부터 56호 홈런을 모두 현장에서 목격한 박흥식 코치 입장에선 각 홈런이 갖고 있는 사연이 남다르다고 한다. 박 코치의 설명을 토대로 이승엽 홈런에 얽힌 숨겨진 스토리를 알아본다.
박흥식 코치는 56호 아시아 홈런 신기록에 말 못할 속사정이 숨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선수들 사이에서 이승엽한테만 쏠리는 취재 공세를 지켜보며 ‘우리는 뭐냐’하는 불만이 쏟아졌었다. 승엽이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후 선후배들에게 욕 안 먹으려고 다른 때보다 몇 배 이상으로 행동거지를 조심했다. 선수들 눈치는 심상치 않지, 감독은 인터뷰 거절하라고 야단이지, 아마도 승엽이로선 내색조차 못하고 가장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뒤 기록한 홈런이었을 것이다.”
▲ 이승엽은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도 자기 때문에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져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 패했다며 무척 가슴아파했다고 한다. 사진은 지 난 9월8일 현대와의 경기 도중 덕아웃에서 동료 들과 함께있는 모습. | ||
56호가 영광과 상처를 동시에 안겨준 홈런이었다면 8월22일 잠실 LG전에서 서승화를 상대로 4회 스리런홈런(46호)을 쳐낸 것은 56개의 홈런 중 가장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 한방이었다.
“대구의 주먹다짐 사건 이후 처음 맞대결한 상황이라 내심 승엽이가 뭔가 본때를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서승화의 낮은 직구를 노렸던 승엽이의 방망이가 돌아가면서 백스크린을 때리는 135m짜리 중월 스리런홈런이 터져나온 것이다. 순간 숨이 멈추는 듯했다. 정말 짜릿하고 흥분된 홈런이었다.”
올 시즌 가장 잘 맞은 호쾌한 타구는 어떤 홈런이었을까. 박 코치는 54호 이후 잠시 휴식기를 거친 뒤 탄생한 55호 홈런을 꼽는다. 상대는 기아의 에이스 김진우였다. 9월25일 광주전에서 이승엽은 김진우의 빠른 공과 낙차 큰 변화구에 속지 않는 선구안을 발휘하며 세 번째 만남에서 4구째 뿌려진 145km의 한복판 직구를 받아쳐 우측 펜스로 넘겨 버렸다.
“보통 연습 때 승엽이의 스윙을 보면 홈런이 나올지 안 나올지를 가늠할 수 있다. 55호 홈런도 연습 때 이미 예측했던 상황이었다. 다른 날에 비해 스윙이 간결했고 안정돼 보였다. 뭔가 터지겠구나 했는데 예상대로 일이 벌어졌다.”
8년 동안 이승엽의 사부이자 친형 이상의 친분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박 코치는 이승엽이 경기장에 나올 때의 얼굴 표정만 봐도 컨디션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전날 밤 아내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훤히 꿰고 있을 정도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