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펜의 ‘기행’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7월 교도소 바닥에 땅굴을 파고 탈옥했던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56)이 6개월 만에 다시 검거됐다. 지난 3개월 동안 진행됐던 이번 체포 작전은 할리우드 영화를 방불케 할 만큼 극적인 것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체포 작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 다름 아닌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인 숀 펜(55)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비밀리에 펜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직후 은신처가 노출됐던 구스만은 멕시코 해병대에 의해 체포돼 현재 다시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다. 구스만이 다시 체포됐다는 사실과 더불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바로 펜의 역할이다. 과연 펜이 수배 중인 범죄자를 몰래 만났다는 사실이 윤리적으로 옳은지, 그리고 더 나아가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할리우드 배우, 미모의 여배우, 마약왕, 그리고 정보국의 숨 막히는 추격전 등이 어우러진 긴박했던 체포 과정을 돌아봤다.
호아킨 구스만은 1월 8일 고향인 멕시코 시날로아주 로스모치스의 한 여관에서 체포됐다. 구스만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숀 펜과 인터뷰를 주선한 멕시코 여배우 케이트 델 카스티요. AP/연합뉴스, <롤링스톤스> 홈페이지 캡처
이번 검거가 세간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키고 있는 이유는 바로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인 펜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할리우드 제작자를 물색하고 있던 구스만이 펜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멕시코 당국의 수사망에 포착됐던 것. 멕시코 경찰은 구스만을 비롯한 마약 조직원들과 할리우드 관계자들 사이의 통화를 추적했고, 결국 추격전 끝에 구스만을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 멕시코 당국은 “펜과의 인터뷰가 검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펜과 구스만의 만남을 처음부터 감시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멕시코 공항에 도착했던 펜의 모습은 당국에 의해 도촬됐으며, 당시 사진 속의 펜은 선글라스와 야구 모자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펜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던 10월 2일 이후 멕시코 경찰은 구스만의 은신처를 한 차례 급습했지만 당시 여자들과 아이와 함께 있었던 구스만을 체포하는 데는 실패했다. 총격전으로 얼굴과 다리에 부상을 입었던 구스만은 다시 행적을 감췄다가 지난 1월 8일 고향인 시날로아주 로스모치스의 한 여관에서 멕시코 해병대에 의해 체포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펜은 어떻게 구스만과 접촉할 수 있었던 걸까. 펜과 구스만 사이에 다리를 놓은 인물은 사실 따로 있었다. 멕시코의 여배우인 케이트 델 카스티요(43)였다. 멕시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 가운데 한 명인 카스티요는 미국 시민권자로, 멕시코 드라마 <라 레디아 델 수르>에서는 마약상 역을, 그리고 미국 드라마 <위즈>에서는 마약 조직의 여두목 역을 맡은 바 있다.
카스티요가 구스만과 가까워진 것은 2012년부터 트위터에 구스만에 대한 호의적인 글을 올리면서였다. 당시 카스티요는 “나는 진실을 숨기는 멕시코 정부보다 구스만을 더 믿는다” “그는 영웅 중의 영웅이 될 것” “차포 씨, 여자들과 어린이들 대신 부패한 정치인을 인신매매하는 건 어때요” 등 반정부 성향의 글을 올렸다.
카스티요의 글에 호감을 느꼈던 구스만은 변호사를 통해 카스티요와 접촉을 시도했다. 자신을 지지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꽃다발을 보내기도 했다. 2014년 구스만이 다시 검거되면서 둘 사이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옥중에서도 카스티요와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친분을 쌓아나갔던 구스만은 당시 자신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어 보자는 할리우드의 쏟아지는 러브콜에 고민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카스티요가 추천한 할리우드 인물은 펜이었다. 카스티요는 LA에서 펜과 만나 영화 제작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하지만 당시 펜은 영화 제작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영화 제작은 여러 면에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펜은 대신 ‘잡지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이 소식을 들은 구스만 역시 펜의 의견에 동의했다. 단, 그는 펜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해서 구스만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던 펜은 지난해 10월 초, 멕시코 밀림의 모처에서 구스만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수배 중인 마약왕을 만나는 일인 만큼 여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먼저 전세기를 이용해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멕시코로 날아갔고, 도착 후에는 다시 자동차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에 대기하고 있던 구스만의 관계자를 만나 자동차를 타고 한 시간 반가량을 달려 교외로 빠져나간 후 그곳에서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다시 두 시간가량을 날아갔다. 수풀이 우거진 산악지대에 도착했던 펜은 다시 자동차를 타고 일곱 시간을 달려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밀림 속의 방갈로에 도착한 후에야 펜은 구스만을 만날 수 있었다.
펜과 카스티요, 그리고 구스만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인터뷰를 했고, 당시 펜은 구스만 측의 요청에 따라 볼펜이나 종이, 녹음기 등은 일체 소지하지 않았다. 인터뷰는 일곱 시간 동안 진행됐으며,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전화, 이메일, 동영상, 메신저 등을 이용해 추가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인터뷰 내용은 구스만이 체포된 바로 다음 날인 지난 9일에야 비로소 <롤링스톤스>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됐다. 기사에는 구스만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펜의 사진이 함께 실렸으며, 인터뷰 전문은 펜이 직접 작성한 것이었다.
<롤링스톤스>의 인터뷰 기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펜이 작성한 인터뷰 전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펜이 블랙베리 메신저로 보낸 질문에 구스만이 대답하는 17분짜리 동영상이었다. 동영상 속에서 구스만은 주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마약 밀매를 시작하게 된 계기, 땅굴을 파서 탈옥한 뒷이야기, 도피 생활 등에 대해 털어 놓았다.
가령 “우리 집은 아주 가난했다”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거리에서 오렌지, 음료수, 사탕 등을 팔았다” “15세 때부터는 마리화나와 양귀비 재배에 뛰어들었다” “먹을 것을 구하거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등의 내용들이었다.
펜은 인터뷰 기사를 통해 “구스만과 나눈 대화는 편안하고 따뜻했다”면서 “구스만은 대화를 하면서 자주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펜은 “구스만은 확실히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었다” “구스만은 다른 경쟁 조직의 두목보다 덜 폭력적이었다” “구스만은 예의바른 사람인 것 같았다”라는 등 호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구스만에 대한 이런 펜의 호의적인 태도를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결과적으로는 구스만을 체포하는 데 일조하긴 했지만 이유야 어쨌든 수배 중인 범죄자를 도운 것 아니냐, 범죄자를 너무 미화한 것 아니냐는 등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윤리에 위배된다고 말하는 언론들도 앞다투어 펜을 비난하고 나섰다. 가령 <뉴욕포스트>는 “엘 차포(키 작은 사람), 엘 저코(머저리)와 만나다”라는 조롱 섞인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펜과 카스티요도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펜이 형사 처벌될 가능성은 낮은 것이 사실이다. 뉴욕의 플로이드 에이브럼스 변호사는 “펜의 행동이 법에 저촉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만일 구스만이 아직 수배 상태였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검거된 상태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인터뷰를 목적으로 한 만남이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의 법에 따르면 지금까지 기자들이 단순히 수배 인물과 인터뷰를 했다고 해서 법정에 서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간의 비난에 대해 펜은 “나는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다”면서 당당한 입장이다. 펜은 “나는 범죄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비밀을 유지하는 내 태도가 자랑스럽지도 않고, 또 누군지도 모르는 경호원들과 셀카를 찍기 위해 자세를 잡는 것도 당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신념이 있다. 내가 하는 말은 오로지 진실뿐이어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펜의 이런 기행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이미 스크린 밖에서 다양한 사회운동을 펼쳐왔던 펜은 할리우드에서도 가장 정치에 관심이 많은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인 그는 특히 중남미 정치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여 왔었다 .
펜이 본격적으로 사회운동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은 2002년부터였다. 당시 부시 정부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반대했던 그는 5만 6000달러(약 6700만 원)를 들여 <워싱턴포스트>에 전쟁을 중단하라는 공개편지를 싣기도 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이라크전이 발발하기 직전에는 “내 눈으로 직접 이라크의 현 상태를 조사해야겠다”면서 바그다드를 방문했으며, “나는 미국 정부의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며 개탄하기도 했다. 펜의 적극적인 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소문난 반전 운동가였던 펜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도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을 가리켜 ‘극악무도한 어처구니없는 범죄자’라고 공개 비난했다.
위부터 숀 펜이 구호활동을 펼치는 모습,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과의 만남,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와의 인터뷰.
펜이 유독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들과 가깝다는 사실 역시 눈에 띈다. 2007년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했던 펜은 2013년 차베스가 세상을 떠나자 애도 성명을 발표하면서 ‘벗’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2008년에는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와 인터뷰를 실시했으며, 2012년에는 영국을 가리켜 ‘식민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면서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의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었다.
한편 체포된 구스만이 이번에도 다시 탈옥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멕시코 당국은 “세 번째 탈옥은 어림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구스만이 수감된 알티플라노 교도소의 경비는 예전보다 한층 강화됐다는 것이 멕시코 당국의 설명. 가령 교도소 시멘트 바닥 아래에는 거미줄 형태의 철골을 설치했고, 감방 자물쇠는 전자식으로 교체했으며, 감방 안팎을 24시간 감시하는 카메라를 추가로 설치했다. 또한 감방의 소리와 영상은 매일 24시간 멕시코연방경찰과 정보국으로 실시간 전송된다.
과연 마약왕은 철옹성에 버금가는 이런 감시망을 뚫고 이번에도 탈옥에 성공할 수 있을까. 만일 그가 세 번째 탈옥에 성공한다면 그 때는 진짜 할리우드 영화 제작의 꿈이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마약왕 셔츠’ 유행 조짐 ‘신창원 티셔츠’처럼 화제 LA의 의류회사인 ‘바라바스’의 제품인 이 셔츠의 가격은 128달러(약 15만 원). 구스만의 검거 소식이 알려진 후 이 셔츠가 화제가 되자 ‘바라바스’ 측은 즉각 이를 마케팅에 활용했다. 구스만의 사진과 함께 같은 셔츠를 입고 있는 모델의 사진을 나란히 올리면서 ‘엘 차포의 셔츠를 공짜로 드립니다’라는 이벤트를 시작한 것.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 가운데 추첨을 통해 셔츠를 선물로 준다는 소식에 ‘바라바스’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이 폭주해 마비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이 셔츠를 근사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어떤 누리꾼은 “엘 차포의 스타일리스트도 감옥에 가야 한다”라고 조롱했는가 하면, “나도 엘 차포와 비슷한 셔츠가 있는데 고양이가 추워할 때 담요로 사용한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주] |
숀 펜 스파이설 왜? CIA-할리우드 ‘공개적 협력’ 해왔다 이번 검거 작전이 워낙 영화 같아서였을까. 미국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혹시 숀 펜이 CIA 스파이 아닐까?’라는 의혹이 번지고 있다. 다시 말해 펜의 인터뷰가 사실은 구스만을 체포하기 위한 미 정부의 치밀한 작전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근거로 누리꾼들은 펜이 세계 최고의 마약왕을 만나 던진 질문들이 다소 시시껄렁했다는 점을 들었다. 가령 ‘당신은 꿈을 꿉니까?’ ‘자신을 어떻게 정의 내리겠습니까?’라는 식의 질문들이 그랬다는 것이다. 또한 구스만이 체포된 지 불과 몇 시간 후에 <롤링스톤스>에 기사가 보도됐다는 점이 미심쩍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이란에서 인질로 붙잡힌 미국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가상의 할리우드 영화를 제작하는 CIA의 작전을 그린 영화 <아르고>와 펜이 CIA 요원으로 나오는 <위험한 장난>을 떠올리기도 했다. 사실 이런 의심을 품는 것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CIA와 할리우드는 공개적으로 협력 관계에 있었다. 이를테면 CIA 요원들 가운데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에게 사실에 입각한 조언과 소품을 제공하는 임무를 맡은 요원도 있었으며, 이들은 공개적으로 배우, 제작자, 감독과 협업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할리우드 내부의 CIA>의 저자인 트리시아 젠킨스는 “나는 CIA가 어떻게 할리우드 영화 스크립트에 비밀리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증거들을 입수했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가 하면 <귀여운 여인>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등을 제작한 이스라엘 출신의 제작자인 아논 밀천의 경우에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스파이였다. 시몬 페레스 대통령 시절 스파이로 활동했던 밀천은 독일과 미국 등의 핵무기 기밀을 자국으로 빼돌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소설가 겸 방송기자인 프레데릭 포사이드는 영국의 정보기관인 M16의 스파이였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