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은 ‘잉어’ 낚는데 우리집은 ‘붕어’ 손질만…
“상향식 공천에는 인재영입이 있을 수 없다. 인재라고 영입된 사람들 중에 큰 정치인이 된 것을 본 적이 없다(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조경태 의원(왼쪽)이 새누리당으로 입당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이렇게 다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인재영입 입장은 1년여 만에 백팔십도 바뀌었다. ‘영웅호걸 삼고초려’ 발언 당시만 해도 정가에서는 “청와대와의 수평적 당청관계”와 묶어 ‘김무성식 리더십’을 크게 평가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뒤바뀐 김 대표의 인재관에 일관성이 없다는 질타가 더 부각되고 있다.
김대표는 당대표로 당선된 두 달 뒤인 2014년 9월 3선 국회의원 출신인 권오을 전 국회 사무총장을 당으로 불러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앉혔다. 권 전 총장은 지난 12월까지 활동했지만, 당 안팎에선 어떤 인재가 영입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인재영입위원장이 한 달이 넘도록 공석이지만 입을 떼는 이도 없다. 당시 인재영입에 관여한 한 인사를 이런 말을 들려줬다.
“당에서 인재와 재원을 확보하래놓고선 지원해주는 것이 없었다. 예산도 없었고 사람도 안 붙였다. 전국을 돌아다녀도 교통비도 안 나왔다. 처음엔 권 전 위원장이 호남 갔다, 부산 갔다 하면서 언론도 많이 탔는데 당의 백업이 없으니 시동이 꺼질 수밖에…. 게다가 천하의 영웅호걸은 그냥 오나? 당에 들어오면 이런저런 지원을 해주겠다고 해야 하는데 인재영입위원장에겐 그런 권한도 없었다.”
인재영입 성과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조성될 시점에 김 대표는 “상향식 공천은 혁명”이라며 “상향식 공천에는 인재영입이 없다”고 말을 바꾼다. 국민이 공천하는데 당이 인재를 뽑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일견 맞는 말 같지만 수도권 여론은 다른 듯하다. 서울의 한 친박계 의원은 이렇게 꼬집었다.
“훌륭한 인재를 전략공천하지 않겠다고 해야지 아예 인재영입이 필요 없다고 하면 되나. 1~2%포인트 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수도권에서는 참신한 인재들이 나서고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데 우리 당은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야권이 분열한다고 박수치는데 저쪽은 그래서 이런저런 사람들이 시민들의 입으로 거론되고 전파되고 있다.”
이 의원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장, 김빈 빈컴퍼니 대표,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 등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된 인사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혀를 찼다. “우리는 오세훈, 안대희밖에 없나. 저쪽은 하루에 하나씩 나오니 국민이 뭐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인재영입은 곧 전략공천으로 읽힌다며 경색된 김 대표를 작심하고 디스(Disrespect·폄하)한 것이다.
정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오픈프라이머리 관철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던 순간부터 일부 의원들은 김 대표에 대한 신뢰를 접기 시작했다. 최근 ‘180석 확보’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김 대표의 상황 인식이 안일하다고 지적하던 의원들이 여럿이었다”면서 “일부는 인재영입에 소홀한 이유로 대권을 향한 자기 자리를 위협받을까봐 그러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돌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정두언 의원은 대놓고 “지금 새누리당은 선거 전략도 정책도 인물도 없는 3무(無) 상태다. 이 모든 게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표직을 걸겠다고 선언했던 김 대표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게다가 전략공천만큼은 절대 없다던 김 대표가 전략공천과 비슷한 효과가 있는 발언들을 이어가면서 당내 의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지난 17일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마포갑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 하나가 바로 안대희 전 대법관의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을 두고서다. 현 정부에서 국무총리에까지 지명된 ‘친박 인사’가 지도부 자리에 앉게 된 것에 비박계가 분노하고 있는 가운데 총선 출마 예비후보를 언론 노출도가 높은 당 지도부 자리에 내리꽂는 것이 말이 되냐는 얘기다.
안 전 대법관이 출마선언을 한 서울 마포갑 바닥을 4년간 누볐다는 강승규 예비후보는 즉각 반발했고, 일부 의원들은 “김 대표가 친박계에 백기투항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경기에 출전해야 할 선수를 당 최고위원회의라는 심판 자리에까지 앉힐 수 있느냐”는 성토도 끊임없다.
김 대표는 또 야권의 인재영입이 연일 대서특필되자 “그쪽에 권혁세(전 금융감독원장) 같은 사람이 있느냐”고 했다. 권 전 원장을 김 대표는 공사석 구분 않고 거론하고 있고, 새누리당 경기도당 신년하례식에서는 “권혁세 어디 있노?”라며 기념촬영까지 했다고 한다.
권 전 원장은 처음엔 대구 수성갑 출마설이 크게 회자한 바 있다. 하지만 경북고 동문들이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맞붙는 것을 뜯어말리면서 경기 성남 분당갑으로 유턴했다. 공교롭게도 분당갑에는 유승민 의원의 최측근인 이종훈 의원이 뛰고 있다. 이를 두고 정가에선 “당의 최고 권위자가 한쪽 선수 편을 드는 발언을 이어가면 리더십이 오래 가겠느냐”고 입을 모은다. “유승민 측근 제거에 김 대표가 직접 나선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한 문대성 의원에게 김 대표가 직접 “고향인 인천으로 출마하라”고 타진한 것을 두고서도 “인재영입도 모자랄 판에 이쪽 말을 저쪽에 갖다 꽂는 전략공천을 김 대표가 직접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 지도부 내에서 인재영입 엇박자가 새어나오는 것도 걱정이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수도권에서 증구(增區)되는 지역에 경쟁력 있는 인물을 내세운다면 20대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증구 전략공천’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원내대표 개인의 의견”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인재영입에 대한 정제된 발언은 없고 오히려 지도부 간 분열 분위기가 연출되면서 수도권 의원들은 “지금 선거를 하자는 말인지, 망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고 있다.
조경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새누리당 영입을 두고서도 부산과 수도권 의원들 일부는 울상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새 피를 수혈해야지 더민주에서 내부 총질하던 사람을 어떻게 데려올 생각을 하느냐. 야당은 오히려 조 의원이 떠나서 속 시원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재선 의원은 “정치인이 선거를 앞두고 당을 바꾸는 것이 과연 옳으냐. 부산 민심이 어떻게 돌아갈지 여론을 좀 봐야할 것 같다”고 했고, 다른 의원은 “부산 사람들 기질로 보면 오히려 역효과다. 우리가 부산 지역구 18개 중 16개를 갖고 있는데 ‘조경태까지 데려와서 다 해묵을라고 하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겁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종합편성채널 패널 6명을 1차 인재영입이라 발표한 다음날, 이노근 의원은 “각계각층에 묻혀있는 보물들을 꺼내 와야 인재영입이지 스타 모셔오는 것이 인재영입이냐”고 꼬집었다. 김 대표의 인재영입을 두고 이렇듯 당내 불만 기류가 최고조에 이른 모습이다. 그 불똥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자못 궁금하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