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수 감독-고정운 코치 | ||
이처럼 감독과 코치 사이가 대단히 막역한 관계로 이뤄진 커플(?)들이 있다. 이들은 ‘마누라보다 더 친하다’는 말로 끈끈한 우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프로축구 코치와 감독의 특별한 인연과 그 사연을 살펴본다.
지난 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부천 SK는 월드컵 4강 신화로 능력을 검증 받은 정해성 전남 코치를 사령탑으로 앉히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정 감독이 자리를 옮기면서 가장 먼저 진행한 사항은 월드컵 대표팀에서 자신과 ‘환상의 복식조’로 불릴 만큼 호흡이 잘 맞았던 김현태 GK코치를 ‘모시고’ 오는 일이었다. 프로무대에서 감독으로 새로운 축구인생을 시작하는 정 감독에게 김 코치는 대단한 선수 하나를 데려오는 것 이상이었다.
▲ 정해성 감독-김현태 코치 | ||
두 사람은 1980년 김 코치가 대학(고려대)에 진학하면서 선후배로 첫 인연을 맺었는데 이후 프로무대에서도 나란히 럭키금성(현 FC 서울)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호흡을 맞췄다. 이렇다 보니 김 코치에게 정 감독은 ‘형’이라는 호칭이 더 편한 사이지만 지금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그렇게 부를 수도 없는 노릇.
아직까지도 호칭 문제로 당황할 때가 있다는 김 코치는 “처음에는 선수들 앞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형’이라는 말을 자제하는 게 쉽지 않았다”면서 “대신 술자리에서 ‘정 감독님’이라는 호칭을 쓰면 동석한 축구계 지인들이 ‘하던 대로 형이라고 부르라’고 놀리기도 한다”며 끈끈한 우애를 자랑했다.
김 코치에게 정 감독은 대학 선후배의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라 어려운 점도 있는 게 사실. 하지만 김 코치는 “공적인 부분에서는 절대로 눈치 같은 건 보지 않는다”면서 “서로 축구에 대한 생각이 비슷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것 같다”며 ‘찰떡궁합’임을 새삼 강조했다.
전남 드래곤즈가 올 시즌 이장수 감독을 선택했다면 이 감독은 고정운 코치를 찍었다. 두 사람의 관계 역시 시계바늘을 15년 뒤로 돌릴 정도로 무게감이 상당하다. 1989년 천안 일화(현 성남 일화)의 창단 때 코치와 선수로 만나 정을 나눠온 두 사람은 이번에 이 감독이 고 코치에게 끈질긴 ‘러브콜’을 보내면서 코칭스태프로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하지만 당시 선문대 감독으로 부임한 지 채 1년이 안되었던 고 코치는 이 감독의 프러포즈가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 고 코치는 “나를 보고 진학한 선수도 있을 텐데 6개월 동안 함께 했던 선수들과 학교에 상당히 미안했다”면서 “다행히 프로 무대로 간다는 것 때문에 많이 이해해줘서 고마웠고 기회가 되면 프로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갖고 있었다”고 저간의 사정을 밝혔다.
▲ 이영진 코치-조광래 감독 | ||
이런 막역한 사제지간이지만 고 코치는 “이제는 이 감독님이 절대로 편하지가 않다”며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 이제는 코치로 감독을 모시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 고 코치는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서도 서로 생각이 비슷하고 터놓을 수 있는 사이였기 때문에 지금 함께 갈 수 있는 게 아니겠냐”면서 15년 사제지간의 힘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학연이나 지연에 전혀 관계없이 프로 무대에서 신뢰로 형성된 감독-코치 커플도 있다. FC 서울의 조광래 감독과 이영진 코치가 그 주인공들. 지난 1999년 안양 LG로 자리를 옮긴 조광래 감독은 당시 팀에 18년 동안 몸담고 있던 이 코치와 호흡을 맞추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리 소문 없이 팀을 이끌어오고 있다. 두 사람 사이를 잘 모르는 이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관계로 알고 있을 정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매끄러운 코칭스태프를 만들고 있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승부근성’. 조 감독이 예비 지도자인 이 코치에게 전폭적인 신뢰 아래 선진 축구 프로그램에 따라 자신의 노하우를 공개하고 끌어준다면, 이 코치는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이를 적극 믿고 따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코치는 “학창 시절 신장과 스타일이 비슷한 조 감독님을 막연하게 동경한 적이 있었는데 1986년 프로 무대에 데뷔하면서 당시 대우 로얄즈 유니폼을 입고 있던 조 감독님과 몇 번 시합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면서 “조 감독님을 모델로 축구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당시 감회가 무척 새로웠다”고 첫 만남을 회상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속마음을 조 감독에게 털어놓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