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방을 둘러봅니다. 훈련이 없는 날 방에서 달리기를 하며 몸을 풀 만큼 제법 큰 평수의 방엔 제가 네덜란드에 와서 처음 장만한 카페트에다 장롱, 침대, 오디오 등이 자기 자리를 찾아 가지런히 놓여 있어요. 신혼살림을 장만할 때도 그런 기분이 들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손으로 직접 가재도구를 구입하며 결혼해서 사랑하는 여자랑 같이 산다면 정말 기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거든요. 제가 보기엔 털털해 보여도 의외로 꼼꼼하고 세심한 면이 있다는 거 잘 모르시죠?
갑자기 웬 ‘방타령’이냐고요? 요즘 들어 이 방이 더 더욱 넓어 보이기만 하거든요. 한마디로 말해서 옆구리가 시린 거죠. 타의에 의해 이미 두 차례의 스캔들이 스포츠 1면을 장식한 주인공으로선 영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 여전히 ‘여자친구 급구’를 외치며 친구들에게 SOS를 치는데 ‘관리 능력 부족’이란 이유로 대부분 소개시켜주기를 거부한답니다. 제가 있는 곳이 한국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여자친구를 소개받아도 자주 만나거나 연락을 수시로 하는 등의 기본적인 ‘연애 수칙’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할 거라는 판단 때문인 거죠.
지난번 <일요신문>의 ‘취중토크’를 보니까 (김)영광이가 여자친구를 자주 못 본다며 하소연했더라고요. 그래도 한국에 있으면 하루만 시간을 내면 가능하지만 전 하루 동안 비행기를 타야 하는 신세이니 언감생심일 따름입니다. 솔직히 저도 이런 상황에선 자신이 없어요.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남자는 스물다섯이 넘어야 여자 보는 안목이 생긴다고요. 지금 같아서는 그 나이 돼도 안목은커녕 여자를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난 1년 동안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낀 시간들이었어요. 오늘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제야 (네덜란드 리그에) 적응이 됐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부상 등으로 힘겨웠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이젠 에인트호벤이 마치 대표팀처럼 편안하고 홈 관중들의 응원도 한국 팬들의 응원처럼 열렬하고 자연스러워 예전 슬럼프 때 축구공이 무서워서 경기장 나서기가 두려웠던 시간들이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축구선수가 축구공이 무섭다? 정말 그랬어요. 당시 ‘내가 만약 일본에서 계속 뛰었더라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번민과 갈등까지 생겨 꽤 속앓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갖고 있는 실력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기다리다보면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라 믿고, 암울한 시기를 잘 극복한 덕분에 이렇게 웃으며 한 시즌을 마무리한 것 같아 제가 조금은 기특해 보이네요.
‘천방지축 일기’를 1년 넘게 진행하면서 <일요신문> 독자 여러분께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솔직히 경기가 잘 풀리지 않거나 부상으로 실망스런 모습을 보일 때는 여러분 뵙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나 이렇게 좋은 결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일기도 마감하게 돼서 서운하면서도 행복합니다.
박지성이란 선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면서 다음엔 일기가 아닌 좋은 인터뷰로 다시 <일요신문> 가족들과 만날 것을 약속드립니다. 곧 한국에서 뵐게요.
5월17일 에인트호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