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유영민 프리랜서 | ||
그라운드의 ‘풍운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축구 스타에서 대표팀과 프로팀 감독을 지내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던 이회택 위원장. 아직은 ‘위원장’이란 호칭보다 ‘감독’이란 타이틀이 더 잘 어울리는 ‘원조 터프가이’와의 진지한 데이트를 소개한다.
타이틀은 ‘취중토크’지만 워낙 민감한 상황에서 이회택 위원장을 만나다보니 다른 때처럼 흥청거릴 여유가 없었다. 아무리 ‘그쪽’으로 향하지 않으려고 해도 기자나 취재원이나 자연스럽게 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위원장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언론이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죽겠어. 후보 감독들을 이렇게 띄워놓으면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가 불리하기 마련이거든. 그 왜 투표인가 설문조사인가 있잖아. 언론사마다 그런 설문조사를 통해 메추 감독을 1위로 올려놓았더라고. 메추가 얼마나 득의양양하겠어. 영입 대상 1순위로 정해졌다는데. 만나봐야 알겠지만 협상이 끝날 때까지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면 좋겠어.”
이 위원장은 얼마전 한 스포츠 신문에서 브뤼노 메추 감독이 대표팀 차기 사령탑으로 결정됐다는 보도를 접하고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말이 되냐고 그게. 이미 결정됐다면 우리가 뭐 하러 10시간 이상씩 비행기 타고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가냐고. 돈 버리면서까지. 우린 ‘핫바지’가 아니야. 결정된 사항을 ‘예스’라고 도장만 찍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일명 기술위 조사단으로 불리는 이회택 기술위원장, 허정무 부위원장, 장원재 위원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포르투갈 리스본-영국 런던을 경유하는 일정으로 지난 21일 출국했다. 조사단은 이 과정에서 메추-스콜라리-매카시-귀네스 순으로 면접을 한 뒤 그 결과를 기술위원회에 제출해 최종적으로 한 명을 지명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외국 지도자에 이렇듯 애끓는 ‘러브콜’을 보내야 할까. ‘열혈남아’란 별명을 안고 있는 이 위원장은 화끈한 성격답게 대답도 걸쭉하게 쏟아낸다.
“국내 지도자들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야. 지금과 같은 환경에선 배겨내지를 못할 뿐이지. 만약 국내 감독이 오만이나 베트남에게 지고 몰디브와 비겼다면 아마 제 명에 못살았을 걸? 축구팬들은 물론 언론들이 가만 놔두질 않았겠지. 이런 상황에서 누가 대표팀 감독을 맡으려고 하겠어. 돌지 않는 이상 누가 나서겠냐고. 그러다보니 외국의 유명 감독들을 찾을 수밖에 없는 거야. 성적의 좋고 나쁨에 따라 크게 흔들리지 않는 뚝심 있고 선수들 장악력이 뛰어난 그런 감독을 고를 수밖에 없다니까.”
이 위원장은 2002년 월드컵 직전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대표팀 선수들에게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면 군 면제를 해주겠다고 해서 어차피 이룰 수 없는 일이니까 인심이나 팍팍 쓰라고 조언했다며 당시의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월드컵 이후의 한국대표팀 감독 자리는 ‘잘하면 본전, 못하면 돌 맞기 쉬운 가시방석’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 위원장에게 얼마 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귀네스 전 터키 대표팀 감독은 한국 감독으론 부자격자라고 말한 내용과 관련해서 그 이유를 묻자, “부자격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강변했다.
“월드컵에서 세계 3위에 오른 감독을 부자격자라고 말할 이유가 없지. 단 귀네스 감독은 우리나라와 종교적인 부분과 문화적인 면에서 코드가 안 맞을 것 같더라고. 영어권의 감독한테 지도를 받는 것과 터키어나 포르투갈어를 쓰는 것과는 좀 다르지 않겠어? 쿠엘류 감독을 통해 선수들과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은 마당에 또다시 이전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노파심 때문이었지.”
기술위원장에 오른 후 새로이 기술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이 위원장은 김호 전 삼성 감독과 신문선 SBS 해설위원을 영입하기 위해 남다른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한때 축구계 일각에서는 지금의 기술위원회가 이 위원장의 ‘식구’들로만 채워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기술위원장 맡기 싫었어. 내가 이걸 왜 맡겠어. 조용히 살려고 지도자 생활도 접었는데.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동안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번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보답하려고 마음을 먹었지. 그런데 내가 기술위원장 맡기도 힘들었지만 기술위원회 구성은 더욱 어려웠어. 하나같이 손을 내저으며 고사를 하는데 미치고 환장할 따름이었지. 그렇게 고사하다가도 결국 내 부탁을 들어준 사람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사람밖에 없었던 거야.”
이 위원장은 김호 감독이나 신문선 해설위원 등한테 언제든지 문을 열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밖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좋지만 직접 행정에 참여해서 축구협회의 눈과 귀와 입이 돼주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들어온다면 무조건 환영할 것이라고 한다.
이 위원장은 축구협회의 ‘보이지 않는 손’의 파워에 대해 “협회에서 정 회장 말고 나보다 높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면서 “할 말 못하고 살 성격도 아니고 설령 그런 상황이라면 위원장을 맡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감독 시절 ‘욕쟁이’라는 애칭(?)을 들을 만큼 욕을 잘하기로 유명한 이 위원장은 “나한테 욕 먹었던 선수는 행복한 사람이야. 관심이 없다면 왜 욕을 하겠어? 그래서 욕먹지 않는 선수는 비극적이었지”라며 웃는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다. “다시 감독 제의가 오면 하시겠어요?” “내가? 싫어. 그 힘든 걸 다시 왜 해. 지도자는 사양하고 싶어.” 그래서 또다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든 자리에 이장수 감독을 전남팀 감독으로 끌어 오셨잖아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내가 강력하게 추천하긴 했었지. 요즘 (전남팀) 성적이 안 좋아 좀 안타까워. 하지만 이 감독이라면 잘 견뎌낼 거야. 두고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