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복희 선수(왼쪽)와 대결하는 기자의 모습. 만만하게 덤볐다가 ‘10초’만에 무너져버렸다고. 이종현 기자 | ||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자 새벽 6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에어로빅과 체력훈련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했던 선수들이 하나 둘씩 체육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도는 남녀 선수들이 함께 훈련을 하는데 현재 선수촌에는 이탈리아와 호주 국가대표선수들도 참가해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오늘 기자와 맞대결을 펼칠 여자대표선수들이 등장했다. 다행히도(?) 기자보다 키가 큰 선수도, 체중이 더 나가는 선수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비록 우세한 경기는 펼치지 못하더라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중계방송을 본 기간만 20년이 넘었기에 머릿속에서는 이미 (오늘 선보이려고 마음먹은) 화려한 기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대등한 경기를 자신했다.
선수들이 가볍게 몸을 푸는 동안 여자대표팀 김도준 감독과 아테네올림픽을 앞둔 훈련 과정과 목표에 대해 들어봤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면서도 모든 신경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은 관절이 상당히 부드럽고 몸 전체가 유연했다. 김 감독은 “여자종목 7개 체급 가운데 6개 체급의 진출이 확정됐다”며 “시드니올림픽 이후 선수들이 대폭 물갈이되었기 때문에 메달 가능성을 3명 정도로 점치고 있다”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 김도준 감독 | ||
시합 직전, 이복희가 “살살 할까요?”라며 진지하게 물어왔다. “무슨 소리! 제대로 합시다!”라고 대꾸할 때가 어쩌면 행복한 순간이었다. 결국 이런 여유는 10초를 넘기지 못했다. 공격을 위해 가장 선행조건이라는 잡기에서부터 힘의 불균형이 몸속을 파고들었다. 서로 도복을 잡는 순간 기자는 선수의 움직임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기술은커녕 완전히 속수무책이었다. 의지와는 별개로 몸이 춤을 추는 바람에 당황스러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복희는 “잡는 기술은 상대방의 소매 끝이나 가슴이나 목 뒤편의 상의를 잡는데 자신이 공격하기 좋게끔 상대방의 중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요령”이라며 한 수 가르쳐줬다.
곧이어 연결되는 업어치기. 준비할 것도 없이 기자의 몸은 360도 포물선을 그리며 매트로 꼬꾸라졌다. ‘기습적인 공격에 허를 찔렸다’고 애써 자위하며 일어섰지만 주변의 시선에 조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잡기와 메치기가 서너 번 반복되면서 식은땀이 좌악 흘렀다. 이복희는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헉헉’거리는 기자에게 “(몸이) 떨어질 때 팔을 짚지 말라”며 주의를 줬다. 심하면 팔이 부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옆에서 흥미롭게 쳐다보던 96애틀란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전기영 남자대표팀 트레이너가 낙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줬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낙법에 대해서 배웠던 터라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매트에 떨어지기 바빴다.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전 트레이너가 이복희를 보며 한 소리했다. “아니, 그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해” 드디어 우군이 생겼다고 좋아하는 순간,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네가 그렇게 대충 대충 하니깐 자꾸 덤비려고 일어나잖아. 아예 눕혀버려야지! -.-;;”
상대가 조금 봐주는 틈을 타 다시 덤벼들었다. 선제공격(?)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잡히는 순간 맞잡기로 응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엉덩이가 저 뒤로 빠져있는 상태에서 기술이 나오기란 불가능한 자세였다. TV중계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안뒤축 후리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바로 되치기로 제압당하며 이번에는 조르기와 누르기 등 굳히기 기술의 매운 맛을 혹독하게 봐야만 했다.
눈물이 쏙 나왔다. 팔로서 목 부위를 누르는데 ‘그만’이라는 소리도 안 나올 정도로 인정사정 봐주질 않았다. 다리만 바둥바둥 거리다 결국 손으로 매트를 3번 내리치는 걸로 산소를 들이마실 수 있었다. 정상급 선수의 굳히기 동작에서는 말 그대로 팔 하나 떼어 내기가 벅찰 정도였다. 꺾기 기술까지 연결시키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했다고나 할까.
이복희는 “선수들은 잡고 잡히는 순간 상대방의 눈빛을 보며 승패를 예감할 수 있어요”라며 힘겨루기 이면에 감춰진 심리전도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고 설명했다. 담력을 키우기 위해 공동묘지에서 훈련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것이다.
대결을 마치고 힘들어하는 기자에게 이복희가 시원한 물 한 컵을 건넸다. “힘이 장난이 아니다”는 말에 이복희는 “여자선수들이 움직임이 터프해서 그렇지 마음은 더 여리다”며 “남자선수들에 비해 예민하고 질투가 많지만 그래도 천상 여자는 여자”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비록 상대가 느꼈겠지만 반동을 통해 전해온 그 짜릿한 손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테네올림픽에서 여자유도대표팀의 월척을 기대해 본다. 하지만 지금 기자의 목과 허리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여져 있다. 6월 말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의 꼴이 말이 아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