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치 학습력 갖춘 기계가 인간 넘을까
구글이 바둑에 도전장을 던졌다. 서울 역삼동 구글코리아에서 열린 이세돌(왼쪽) vs 알파고 브리핑에는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구글의 인공지능 분야를 이끌고 있는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는 누가 이길 것 같냐는 질문에 “50 대 50이 아닐까 한다.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물론 자신 있지만 이세돌 9단도 자신이 있을 것 같다”며 은근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대국은 3월 8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과연 구글이 들고 나온 ‘알파고’의 정체는 무엇인지, 또 이세돌과 컴퓨터의 승부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구글이 이번 대결을 통해 노리는 것은 무엇인지를 질의응답 식으로 풀이해봤다.
# 구글 ‘알파고’의 정체는?
딥마인드는 구글의 인공지능 자회사다. 2010년 영국에서 설립되었고 2014년 구글에 인수됐다. 바둑이 인공지능 연구에 최적화된 게임으로 보고 그간 연구해왔으며 이번에 프로에게 도전장을 낼 정도로 성과를 냈다.
‘알파고’는 이전 바둑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구글에 따르면 기존의 프로그램이 빅데이터 속에서 결과를 찾는 몬테카를로 알고리즘만으로 구성됐다면 ‘알파고’는 몬테카를로에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더한 것이라고 한다. 이 ‘머신러닝’이 중요한데 핵심은 기계가 사람처럼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 기존의 빅 데이터 안에서 최선의 수단을 찾는 것에서 벗어나 컴퓨터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알파고’에 ‘머신러닝’을 장착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구글은 알파고의 바둑대결이 끝나면 앞으로 기후변화, 의료연구 등의 사회난제 해결에 적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양측 각오는?
‘알파고’의 실무 책임자인 데이비드 실버는 한국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50 대 50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는 인간의 1000년에 해당하는 학습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을 것이며 만일 패배할 경우 재도전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승리할 경우의 가정도 잊지 않았다. “당연히 ‘알파고’가 이길 수도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세계바둑협회나 후원사들도 ‘알파고’의 세계바둑대회 출전을 허용해야 할 것”이라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알파고’의 도전을 받은 이세돌 9단은 “12월말에 제의를 받았다. 바둑 역사에서 중요한 경기라고 판단해 도전을 받아들였고, 당연히 승리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쨌든 인간과 컴퓨터의 첫 대결이다.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중국, 일본에 프로기사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내게 제의가 왔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면서 “이제 시작인데 내가 지면 인간이 너무 무력해 보일 것 같다. 이번에 반드시 이기겠다”고 컴퓨터와의 대결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 대국, 어떤 방식으로 열리나?
이세돌 vs 알파고의 대결은 이미 보도된 대로 3월 8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열린다. 상금은 100만 달러. 총 5국이 두어지며 5판 3선승제가 아닌 5국을 모두 대국하는 조건이다. 이는 이세돌 9단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것이며 확정된 것은 여기까지다. 제한시간이나 대국장소 등 세부 사항은 아직 정해되지 않았다. 일부 언론에서 승자가 상금을 독식한다고 보도했지만 이 역시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구글코리아 측은 “상금의 분배나 제한시간 등 대국조건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세돌 9단과 협의 중에 있으며 오는 2월 중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구글, 급작스러운 추진 배경은?
구글의 바둑 도전장은 워낙 급작스러워서 바둑계는 물론 주요 언론에서도 메인 뉴스로 크게 다룰 정도였다. 자가학습을 한다는 알파고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강해진다. 따라서 굳이 서둘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구글이 <네이처> 발표와 함께 이세돌과의 대국을 추진한 것은 업계 라이벌 회사들과의 경쟁구도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재)한국기원의 한 관계자는 “대국일정 발표나 브리핑 등 그간의 협의 과정에서 구글이 서둔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상금 100만 달러나 5국만 둔다는 것은 비밀사항이었다. 기자회견 때 발표하려 했는데 구글 내부적으로 문단속에 실패하면서 먼저 발표됐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사와 페이스북에서도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연구 중인 것으로 아는데, 아마 그래서 구글이 먼저 치고나간 것이 아닌가 한다”고 그간의 느낌을 전했다.
# 전문가들의 예상은?
누가 이길까.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세돌 9단이 쉽게 이길 것으로 예측했다. 최철한 9단은 “알파고와 판후이의 기보를 봤는데 판후이가 초반부터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알파고의 기력 파악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2점 정도의 칫수로 보인다. 3점을 접긴 어려울 것 같다”고 이세돌의 우세를 점쳤다. 최규병 9단 역시 “알파고가 프로 기사들과 상대하려면 2~3점을 먼저 깔고 두는 접바둑이 적당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영삼 9단은 한술 더 떠 “구글의 의도를 알 수 없다. 너무 쉽다. 이세돌은 지금 아마 로또를 맞은 심정일 것”이라며 “난 3만 달러만 줘도 응하겠다. 신체 일부를 걸라고 해도 그럴 수 있다”고 농담 섞어 이세돌의 낙승을 예견했다.
중국의 일인자 커제도 이세돌의 승리를 예측했다. 커제는 “처음에 기보를 보고 놀랐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컴퓨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알파고가 입단 직전의 실력은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번엔 이세돌 9단이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스스로 진화한다고 들었다. 판후이와의 대결은 지난해 10월이었으니까 그동안 또 얼마나 늘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 점이 변수가 될 것이다”고 예측했다.
바둑계는 그간 서양에서 바둑붐이 일어나기를 기원해왔다. 세계 최대시장 미국에서 바둑이 뜬다면 바둑의 위상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구글이 제 발로 한국바둑에 도전장을 던져왔으니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밖에. 그렇지만 체스가 컴퓨터에 정복된 이후 하향세에 접어들었음을 감안하면 마냥 좋아하기에는 이르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쨌든 바둑계는 들떠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만일 이번에 이세돌이 구글에 승리하면 다음엔 마이크로소프트나 페이스북 등에서 더 큰 돈을 걸고 도전할지 모른다. 이세돌 9단, 이번에 정말 제대로 대박날 것 같다”고 최근 바둑계 분위기를 전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