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반 부진을 씻고 후반기를 기대해 달라는 서재응. | ||
서재응의 야구 인생 중 ‘결코 잊을 수 없는 경기’로 남을 플로리다와의 원정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서재응은 12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상 밖의(?) 씩씩하고 기운 찬 목소리로 기자의 우려를 일시에 불식시켰다. 최희섭한테 홈런을 맞은 건 다른 메이저리그 타자들한테 덜미 잡힌 사례와 별반 차이점이 없다는 것, 그 상대가 한국 선수라서 느낌이 남다르진 않다는 게 서재응의 이유 있는 변명이었다.
지난 5일 양키스전의 눈부신 호투로 뉴욕 현지 언론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역시 서재응’이란 반응을 이끌어냈던 서재응은 유독 부침이 심했던 시즌 초를 상기하는 대목에선 잠시 감정을 쏟아내기도 했다.
방송출연 후회는 없다
지난해 서재응은 기자와의 ‘취중 토크’에서 이런 걱정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내년 성적이 좋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이번에 귀국해서 이런저런 행사와 방송출연, 인터뷰 등을 하느라 훈련을 소홀히 했다고 지적받을 것 같아 걱정을 넘어 두렵다”는 내용이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평소 체중을 오버한 상태로 출국해 팀 훈련에 합류했던 서재응은 시범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제4선발을 보장해줄 것 같던 아트 하우 감독도 서재응에 대한 실망감을 나타내며 등을 돌리고 말았던 것.
이에 대해 서재응은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해선 후회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걱정한 대로 됐지만 훈련량이 부족했던 건 아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살이 좀 찌긴 했어도 우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방송 출연했던 것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아니라 소속팀의 피칭 코치가 바뀌는 바람에 새로운 투구폼을 익히는 과정에서 밸런스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서재응은 자신이 마이너리그에서 생활했더라면 사람들이 자신을 찾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각종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것이고 나름대로 선별해서 응했다며 올시즌 좋은 성적을 갖고 귀국했을 때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들의 요청에 응할 것이라고 다부진 생각을 밝혔다.
새로운 투구폼 적응중
릭 피터슨 피칭 코치로 인해 새 투구폼을 익히는 동안엔 서재응은 무조건 코치가 원하는 대로 공을 던졌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가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자 최근에는 지난해 던진 투구폼과 피터슨이 요구하는 투구폼을 7:3의 비율로 섞어서 사용한다고 밝혔다.
“아무리 유명한 코치의 조언이라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좋은 투구 내용을 선보이기 힘들다. 그래서 당분간은 내 마음대로 던져보려고 한다. 지난 5일 양키스전이 바로 그랬다. 유난히 컨디션이 좋기도 했지만 왠지 지난해 했던 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년에 사용했던 헌 글러브를 꺼내 들었고 아침에 여자 친구(약혼자 이주현씨)와 식사를 하면서 ‘오늘은 대박 날 거 같다’는 농담을 하는 등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서재응은 자신을 큰 무대에 강한 선수라고 표현했다. 5만명이 넘는 관중들 앞에서 자신만의 ‘쇼’를 펼치며 선수들을 제대로 ‘요리’해나가는 과정은 그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이 안될 만큼 짜릿한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투수경쟁은 언론 허풍
그동안 들쭉날쭉한 투구로 ‘제4선발’ 자리를 위협받았던 서재응은 양키스전 이후 팀 내 경쟁 상대였던 매트 긴터와의 자리 다툼에서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팀 내 경쟁 투수들과 줄기차게 선발 자리를 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치열한 양상을 보이던 것이 양키스전의 쾌투로 서재응한테 ‘행운의 여신’이 쏠리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서재응은 다른 투수들과의 경쟁 의식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경쟁은 언론에서 붙이기 좋아하는 단어다. 난 시즌 초 잠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서 어느 정도는 마음을 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내가 작년처럼 좋은 모습을 보였다면 경쟁 운운하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선발 자리를 놓고 탈락과 복귀를 오락가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게 내 탓이다. 요즘 깨달은 건데 야구는 흐르는 물과 같다. 자연의 순리대로 야구도 흘러가는 것이다.”
▲ 지난 연말 귀국해 어린이 야구캠프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 | ||
서재응은 시범경기 부진으로 아트 하우감독으로부터 마이너리그행을 통보 받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감독의 결정에 반발하는 멘트를 토해내 한때 트레이드설이 나돌 만큼 감독과는 심각한 ‘위기 국면’에 처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국내 특파원들조차 서재응이 너무 앞서간 거 아니냐며 우려 섞인 걱정을 할 정도였다. 서재응은 그 당시 자신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여전히 당당한 어투로 심경을 토로했다.
“그때는 그 이상의 심한 말도 하고 싶을 만큼 마음이 엉망진창이었다. 한 마디로 × 같았다. 내 통역을 맡고 있는 대니얼 김한테 진지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100% 진심이었다. 물론 욱 하는 심정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 곳에선 더 이상 야구할 마음이 없었다. 성공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언론에서 날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기아의 포수 김상훈과 통화하면서 ‘네가 다리 좀 놔서 물밑작업 좀 해달라’는 부탁까지 했었고 기아에서도 내 의사를 전달받은 뒤 구체적인 움직임을 벌인 걸로 알고 있다.”
결국 서재응의 국내 복귀설은 한 차례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서재응은 ‘100% 진심’이라고 말할 만큼 마이너리그행으로 인해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서재응은 ‘카리스마의 대가’ 하우 감독을 상대로 ‘맞장’뜬 배경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 전에는 기분 나빠도 안 그런 척 하며 감독 눈치를 봤지만 그때만큼은 계속 참다가는 계속 당할 것 같았다. 나도 성질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총 맞을 각오로 하우 감독을 공격한 것이다. 그런데 감독은 내 말에 꿈쩍도 안하는 것 같더라.”
‘5회짜리선발’ 비난
올시즌 5회나 6회를 넘기지 못하는 서재응의 선발 이닝 수를 놓고 뉴욕 메츠 홈페이지에서도 논란이 일었을 만큼 서재응의 위기 관리 능력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재응의 아버지 서병관씨도 “선발이라면 7회까지는 던져줘야 한다”고 말할 정도.
이에 대해 서재응은 “나도 더 많이 던지고 싶다. 하지만 감독한테 신뢰를 주지 못하는 들쭉날쭉한 피칭으로 인해 조기에 강판 당하는 부분은 전적으로 감독이 결정할 몫이고 내가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하면서 “솔직히 전반기 때 5∼6회를 넘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오다 보니 심리적으로 위축된 면도 있다. 체력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배고픈 2년차
31만3천5백달러는 지난해 9승을 거둔 메이저리거 2년차, 서재응의 연봉이다. 세금을 제하면 서재응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한화로 약 3억원 정도. 수당 등 인센티브가 전무한 상태에서 연봉으로 생활하는 서재응한테 그 돈은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니다.
서재응은 “3년차까진 구단의 정한 연봉의 가이드 라인에 따라 몸값이 정해지기 때문에 섭섭해 할 수 없다. 메이저리그 진출하면 ‘대박’날 거라고 생각하는 한국 팬들, 특히 내 주변의 지인들은 내 연봉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줬으면 좋겠다”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민원’들로 인해 속앓이하고 있는 아버지의 고충을 의식한 듯한 내용이기 때문.
서재응은 현재 뉴욕에서 공부중인 약혼자 이주현씨와의 결혼 일정에 대해선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지만 어른들이 날짜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올시즌 마치고 결혼할지 못할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면서 “내가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주현이의 존재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고 있는 사이라 결혼 시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투수들이 유독 수난을 겪고 있는 올시즌, 서재응은 그 가운데서도 ‘제대로’ 살아남은 유일한 코리언 빅리거다. 전반기를 마치고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하는 서재응은 겉으론 휴가 운운하지만 마음속으론 후반기를 대비하기 위해 모종의 ‘꿍꿍이’를 벌일 모양이다.
탄탄대로보다는 비포장 도로를 운전하며 굽이굽이 돌아온 서재응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최희섭한테 왜 정면승부를 걸었어요?”
“이 기자님, 그거 정면승부 아니에요. 실투한 거라니까. 공을 빼려고 했는데 잘못 들어간 거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