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그동안 올림픽 때문에 제 일기가 몇 주 걸러졌죠? <일요신문>에 ‘쪼까’ 섭섭함을 전합니다.
마이너리그에 떨어졌다고, 애리조나 비치에 있는 노포크에서 마이너리그로 처절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전한 지가 불과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전 메이저리그로 올라와 벌써 두 게임을 치러냈습니다.
지난 3일(한국시간)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 5실점을 하고 5회에 강판돼 내려온 걸 두고 걱정들이 많으시더라구요. 그런데 전 여러분들의 걱정과는 달리 기분이 한층 ‘업’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했고 상대 타자들은 열심히 쳐냈고 그래서 실점한 것이고, 뭐 이런 상황이라 아쉽거나 미련이 있거나 그렇지는 않았어요. 4승에서 5승의 문턱을 넘지 못한 데 대해선 저 또한 통탄할 노릇입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생활하며 1승1패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을 했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너무 멀기 때문이죠.
참, 제가 머리를 통째로 노랗게 물을 들였어요. 노포크로 가기 전 뉴욕에 있는 단골 미용실에 들렀더니 원장님께서 머리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며 요 모양 요 꼴을 만들었지 뭡니까. 가끔 부분 염색(이걸 ‘브릿지’라고 하나요?)은 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전체를 파격적인 색상으로 염색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 다소 어색했는데 지금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 색깔을 하고 태어난 것처럼 편하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노포크에 있는 동안 ‘내가 어떻게 해야 다시 이곳으로 오지 않고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에서 장수할 수 있을까?’ 라는 내용의 고민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해답을 구했냐구요? 편하게 야구하는 게 ‘장땡’이라고 결론 내렸죠. 내가 편해야지만 내가 던지고 싶은 볼을 마음대로 휙휙 던질 수 있는 거잖아요.
요즘 저를 둘러싼 상황들이 기상 상태로 표현한다면 ‘계속 흐리다 반짝 해 떴다가 마침내 비 옴’ 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구단의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제 미래는 ‘트레이드’가 아닐까 싶네요. 시기는 11월이나 12월쯤이 될 듯 하구요. 물론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느낌상 그렇다는 거죠.
솔직히 말해서 전 요즘 등판할 때마다 메츠가 아닌 제 자신을 위해 공을 던지고 있어요. 다른 팀으로 가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을 선보여야 하기 때문에 제가 ‘잘 팔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재응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설령 내년 시즌에 다른 팀 유니폼을 입는다고 해도 그동안 마이너리그에서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적응하고 잘 살아갈 자신이 있거든요. 메츠에서 8년을 보냈는데 따져보니까 메이저 생활은 고작(?) 2년 밖에 안되었더라구요. 그 2년도 마이너와 메이저를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온전한 2년은 안되지만 말이죠.
그 과정에서 보고 겪고 느낀 것들 하나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기억은 제가 야구하는 동안 큰 에너지를 선사할 겁니다. 전 지금 필라델피아로 뜹니다. 원정 경기가 있거든요.
9월4일 뉴욕에서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