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딩크의 외면을 약으로 삼아 본프레레호의 황태자로 등극한 이동국(왼쪽). 그는 확실히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 ||
축구 전문가들은 이동국의 실력이 향상된 이유도 있지만 히딩크 감독에 비해 본프레레 감독과 이동국의 궁합이 잘맞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과연 감독과 선수 사이에 궁합이란 존재하는가? 대표팀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전남의 김도근은 한양대를 졸업하고 정병탁 감독이 이끌던 전남에 입단할 당시만 해도 중앙수비수로 뛰었다. 그러나 1996년 전남의 지휘봉을 잡은 허정무 감독에 의해 미드필더로 변신하며 대표팀에까지 합류하게 된다. 차범근 감독 밑에 있던 김도근은 1997년 8월 브라질과의 친선전에서 골을 터트리며 스타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김도근이 만약 중앙수비수로만 머물렀다면 과연 대표팀과 J리그 진출이란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을까. 허 감독과 차 감독은 김도근에게 궁합이 맞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과 쿠엘류 감독 하에서 김도근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의 부임 전 김남일은 투지는 좋지만 개인기가 떨어지는 선수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김남일의 근성과 성실성을 한눈에 알아봤다. 김남일은 2002월드컵 뒤 최고의 스타로 거듭나면서 최고의 축구스타자리를 2년째 이어오고 있다.
▲ (왼쪽부터)김도근, 김남일, 고종수 | ||
궁합이 일종의 정(情)이라면 실력은 냉혹한 현실을 대변한다. 축구인들은 감독이 한 선수의 재능을 알아보는 것이 좋은 궁합의 전제조건이라면 선수가 감독의 의도대로 성장해 주는 것은 마치 좋은 궁합의 남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이동국은 2002월드컵 기간 중 술로 날을 지샜고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19세의 나이로 출전한 98월드컵 때는 스타가 됐다가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에는 오히려 사람을 피하는 신세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광주상무 입대 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1년6개월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본프레레 감독이 등장했고 이동국은 사연 많은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
이동국은 “마냥 스타로만 살아왔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며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동국이 변했기 때문에 본프레레 감독이라는 계기가 찾아온 것이다. 물론 이동국이 변할 수 있었던 건 히딩크 감독의 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감독과 선수들 간의 궁합은 변화와 계기의 연속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겉궁합만 맞고 속궁합은 맞지 않는 관계도 종종 눈에 띄었다. 감독보다는 선수들이 속궁합까지 맞추도록 실력 다지기에 힘을 쏟아야 한다. 궁합의 전제 조건은 뭐니뭐니해도 실력인 것이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